선진국 대한민국의 지속가능성은?

쉽게 얻은 것은 쉽게 사라진다

by 우주사슴

대한민국은 스스로를 반만년 역사라 부른다. 그러나 이 긴 시간 속에서 오늘날의 대한민국이 국제적으로 ‘선진국’이라 불리기 시작한 것은 불과 15년 남짓이다. 국가 수립 80여 년, 민주정부 30여 년의 역사와 비교해도 이 시기는 짧다. 압축 성장으로 단숨에 올라섰지만, 선진국의 지위를 ‘정착’시키는 데에는 세대를 뛰어넘는 시간이 필요하다. 쉽게 얻은 것은 쉽게 사라진다는 직관은 이 지점을 찌른다.


선진 수준이 정착될 것인가라는 물음에 대해 ‘서울 집중’과 국가의 장기 지속가능성이라는 틀에서 바라봤다. 그 결과는 크게 세 가지 시나리오로 나뉜다.


첫째, 개혁과 분권의 길.

수도권 과밀을 완화하고, 제도 신뢰를 회복하며, 혁신 투자와 인구구조 대응이 병행될 경우 선진국 지위는 안정적으로 유지된다. 충격이 닥쳐도 흡수력이 생기며, 세대가 바뀔수록 제도가 뿌리내린다.


둘째, 현 상태의 유지.

눈앞의 위기는 없지만 장기적으로는 서서히 미끄러진다. 성장률과 신뢰는 제자리걸음을 하고, 수도권 부담은 쌓인다. 15년쯤 지나면 국가는 ‘선진국-중진국 경계선’에 걸쳐 흔들리게 된다. 겉으로는 유지되는 듯하지만, 내부에서는 고착화된 피로가 누적된다.


셋째, 제도와 신뢰의 후퇴.

정치적 갈등이 격화하고, 수도권 과밀이 심화하며, 개방과 혁신이 닫히면 충격은 증폭된다. 이 경우 후퇴는 단순한 경제 지표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 존속의 위기로 번진다. 제도와 신뢰가 무너지면 회복 탄력성도 사라진다.


지속가능성의 5가지 중간관리지표와 한국의 현주소


생산성

OECD에 따르면 한국의 시간당 노동생산성은 OECD 평균의 약 80% 수준에 머문다. 1990년대 이후 빠르게 상승했으나 최근 10년은 정체 상태다.


신뢰

OECD ‘정부 신뢰도’ 조사에서 한국은 30%대 수준으로, 북유럽 선진국의 70% 이상에 비해 절반에 불과하다. 사회적 자본의 기초 체력이 약하다는 신호다.


주거비 부담

서울의 중위 주택가격 대비 가구 소득 비율(PIR)*은 11배 수준으로, 뉴욕이나 런던보다 높다. 수도권 집중이 만들어내는 비용이 세계 최상위권이라는 뜻이다.


*서울의 중위 소득 가구가 서울의 중간 가격대 주택 한 채를 구매하기 위해 모든 소득을 모아야 하는 기간이 약 11년이 필요하다.


통근시간

서울 시민의 평균 통근시간은 약 58분으로 OECD 상위권이다. 이는 단순한 불편이 아니라 생산성과 삶의 질을 동시에 잠식하는 구조적 요인이다.


노동참여율

전체 노동참여율은 OECD 평균과 유사하지만 여성·고령층 참여율은 여전히 낮다. 특히 합계출산율 0.7대는 인구구조 충격을 예고한다.


세대 경험의 균열과 사회통합의 어려움


대한민국은 세대별 경험이 극단적으로 다르다.

노년층은 한국전쟁을 겪었다. 생존이 유일한 가치였던 세대다.

장년층은 군사독재와 민주화 과정을 경험했다. 권위와 저항이 공존하는 세대다.

중년층은 고속 성장과 산업화를 목격했다. 성취와 희생을 동시에 체화한 세대다.

청년층은 선진국의 일상 속에서 자라났다. 그러나 그들은 저성장, 고용 불안, 주거난이라는 ‘터널’을 체험 중이다.


이 네 세대의 경험은 국가 기억을 갈라놓는다. 같은 현실을 두고도 인식의 틀이 다르다. 따라서 사회적 합의 형성은 경제·제도적 지표보다 훨씬 더 큰 난제로 남는다. 지속가능성은 단지 수치의 문제가 아니라, 과거 경험을 조율해 공동의 미래를 설계하는 ‘통합의 기술’에 달려 있다.


후퇴의 힘은 왜 더 큰가


열역학의 제2법칙, 즉 엔트로피 증가 법칙은 “고립된 계에서는 질서가 무질서로 자연스럽게 흘러간다”는 원리다. 사회와 국가도 다르지 않다. 개혁이 없을 때 제도는 마모되고, 신뢰는 서서히 침식되며, 수도권 과밀은 자연스럽게 심화된다. 질서를 유지하거나 더 높은 질서를 창출하는 데는 지속적인 에너지 투입이 필요하다. 반대로 무질서로 향하는 데는 아무런 추가 비용이 들지 않는다.


따라서 선진국 지위를 유지하는 일은 단순한 정체가 아니라 끊임없는 개혁이라는 ‘에너지 투입’을 전제로 한다. 방치하면 엔트로피가 늘듯 후퇴 압력이 자동적으로 작동한다. 즉, 개혁의 정지 자체가 곧 퇴보를 의미한다.


지속가능을 위해서는 에너지가 필요하다


대한민국의 선진국 시절은 아직 너무 짧다. 정착의 시간은 저절로 주어지지 않는다. 다섯 가지 관리지표는 우리가 선진국의 문턱을 ‘넘은’ 나라가 아니라 ‘머무를’ 수 있는 나라인지를 판별하는 경보기다. 여기에 세대 간 경험의 단절이라는 심리·사회적 장벽까지 고려하면, 지속가능성은 더욱 복합적 과제가 된다.


질서의 유지에는 에너지가 필요하다. 세대를 넘어선 합의와 개혁이 없다면, 한국 사회는 무질서로 기울어가는 엔트로피 법칙을 피할 수 없다. 문제는 단순하다. 우리는 이 지위를 단지 ‘경험’으로 소비할 것인가, 아니면 제도와 구조를 개혁해 ‘정착’시킬 것인가.


시간은 우리 편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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