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 철학을 세우는 아이
-'불편함의 돌'을 피해 심플하게. 나답게.
<가족의 스타일>
나와 딸은 패션에 관심이 많다. 패셔니스타 모녀로 오해할까 봐 미리 이야기하자면 관심만 많다. 남편은 패션의 초성에도 관심이 없는 사람이다. 날씬한 옷걸이가 안타까워 폼나는 옷을 사러 가자고 이야기하면 ‘입을 옷이 있는데 더 필요 없다. 옷이 너무 많이 있으면 골라 입는 귀찮음이 발생한다.’는 반응으로 일관한다.
나는 외출 준비시간이 많이 걸린다. 남편이 말한 대로 마음에 드는 상하의를 매칭 시키는 귀찮은 과정에 많은 시간을 소비하기 때문이다. 딸은 아직 어려 화장도 안 하고, 옷은 한 세트로 묶어두는 경향이 있어 준비시간이 짧다. 남편은 말할 것도 없이 세수하고 썬스틱을 바르는 시간 정도면 어디든 출발 가능하다.
그럼 패션에 연연하는 나와 초연한 남편 중 누가 옷을 더 잘 입을까? 아이러니하게도 고만고만 비슷하다. 나는 팔랑팔랑 가지 수가 많은 편이고 남편은 어쩌다 한번 구입하기 때문에 하나를 갖춰도 제대로 갖추기 때문인 것 같다. 돈도, 시간도, 에너지도 더 많이 소비한 나는 어쩐지 억울하다.
예쁘게 보이고 싶은 욕망은 잘못이 아니다. 그런데 그 욕망을 실현하는 과정에서 그동안 난 기준이 불분명했고, 개인의 욕구만을 생각했고, 쉽게 지루해하며 또 다른 것을 탐닉했다. 딸이 이 스티커를 사고 또 다른 스티커를 사겠다고 할 때, ‘다 쓰지도 못할 예쁜 쓰레기 뭐하러 저렇게 많이 살까?’하고 생각했었는데 그건 나를 닮아서였다.
남해와 본집을 오가며 생활하는 첫 얼마간 난 엄청난 ‘불편함’을 겪었다. 원피스를 차려입고 신발장을 보니 시커먼 운동화뿐이었다거나, 청자켓은 가져왔는데 그 안에 즐겨 입는 하얀 티셔츠를 가져오지 않았다거나 하는 상황은 나에겐 정말 스트레스였다. 물론 비슷한 이유들은 남편에겐 아무 문제가 되지 않았다.
<내 기준은 어디 있었던가?>
물집을 각오하고 힐을 신고, 소화불량을 각오하고 허리가 잘록한 옷을 입는 이유는 예뻐 보이고 싶어서였다. 그런데 예뻐 보이기 위해 몸이 고통을 감수해야 하고, 또 그것을 위해 필요한 수 가지 아이템을 엄청난 에너지를 들여 챙겨야 한다면? 챙긴다고 챙겼는데 하나를 놓쳐 미완성의 찝찝함에 시달린다면?
나는 어느 날부터인가 완성되지 않은 패션이 던지는 ‘불편함의 돌’을 맞으며 ‘소소한 물건에 집착하여 그것들이 나의 정신을 지배하도록 두면 안 되겠구나.’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야말로 취향과 외관을 위해 자유를 희생하는 것이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동안 나의 선택엔 남의 시선이 큰 비중을 차지했음도 깨달았다. 그래서 나만의 기준을 세워보기로 했다. 남의 시선을 걷어낸 내 기준은 이렇다.
‘단정하고 편안하게, 나다움을 지키고 나를 더 생기 있게 할 것.’
그 기준을 정하고부터 일상에서 패션에 너무 많은 에너지를 빼앗기지 않으려 노력하고 있다. 그리고 더 나아가 내가 소비한 것에 대해 책임지기 위해 – 나의 소비가 환경에 미치는 해로움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도 노력하고 있다. 심플한 스타일로 패션에 쏟는 불필요한 에너지를 최소화했던 스티브 잡스, 업싸이클링을 통해 인기를 얻은 브랜드, 미니멀 라이프를 추구하는 사람들이 추구하는 가치에 대해서도 헤아려보고 가능한 것은 실천에 옮기려 한다.
<아이의 소비 철학>
물건을 살 때 나는 거의 전적으로 딸의 필요와 취향을 존중하는 편이다. 엄마가 ‘불편함의 돌’을 맞을 때 그 옆에서 해맑게 하고 싶은 일에 집중하던 아빠를 본 딸은 자신만의 소비 철학을 조금씩 갖춰나가는 듯하다. 아직 유혹을 다 뿌리치진 못해도 즉흥적 구매에서 점차 생각하는 구매 쪽으로 방향을 잡아가는 모습을 보인다.
“랜덤박스가 너무 좋아 보이는데 무게를 보니 그 안에는 제게 꼭 필요한 다이어리가 빠져있는 것 같아요. 꼭 필요한 걸로 할게요.” 얼마 전 문구점에서 딸이 하는 말이 참 기특했다.
물건을 구입할 때 '꼭 필요한 것인지, 가진 것과 중복되지는 않는지, 환경을 생각하는 소비인지' 아이와 함께 이야기 나눠보면 어떨까? 구입한 물건의 효용은 어느 정도 일지, 나의 생활에 '불편한 돌'이 되는 건 아닌지 함께 생각해보면 어떨까?
하루하루의 쌓인 작은 대화와 부모의 모습에서 아이의 소비 철학과 습관은 형성되어 갈 것이다.
‘우리 함께 웃으며 성장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