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사람이나 장소,
사물도 나를 지배하지 못한다.
나는 내 마음속의 유일한
사상가이기 때문이다.
어릴 때는
권위 있는 인물들을 신처럼 여겼지만,
이제는 내 힘을 되찾고
스스로 권위자가 되는 법을 배우고 있다.
이제는 나를 강하고
책임감 있는 존재로 인정한다.
-루이스헤이
<환영받는 사람?>
나는 어렸을 때 둘째 아이의 숙명대로 심부름을 잘하거나, 주변 상황을 빠르게 눈치채며 예쁨 받으려 노력했던 것 같다. 그러다 한번 투덜거리면 “대접받는 사람보다 환영받는 사람이 좋지.”라는 말을 듣곤 했다. 그래서 내 취향과 기준은 타인의 시선을 의식한 경우가 대부분이었고, 현실과는 다른 나의 내면의 목소리에 그저 짜증과 우울감으로 대답하곤 했다. 아이를 낳고 키우며, 나름대로 삶의 고비를 넘기며 ‘내가 나를 지켜야 하는구나.’하는 자각이 가슴을 치곤 했다.
<내면의 목소리를 따르는 사람!>
서너 살 무렵 딸은 자기 주도성이 왕성해지며 “내가 시시요(스스로)!”를 자주 외쳤다. 또 행복감을 느낄 땐 “내가 나를 좋아해.”라는 말도 했다. 그 혀 짧은 발음과 조그마한 모습이 귀여워 웃다가도 문득문득 ‘저 마음을 지켜줘야겠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이제 갓 자신을 소중하게 여기는 일에 눈을 뜬 나에게 아이의 말들은 눈부신 햇살처럼 환하게 느껴졌다.
그런 딸이 어린 시절과 같이 원형의 마음을 보존하며 내면의 목소리를 귀 기울여 들을 줄 아는 아이가 되길 바랐다. 내면의 목소리에 솔직하게 반응하는 아이가 되길 소망했다. 그래서 딸에 관한 것은 최대한 딸에게 물어가며 ‘내면의 목소리를 따르는 연습의 기회’를 주려고 노력했다.
아이들이 자라는 과정에서 흔히들 겪는 패션 테러 시기–어른의 관점에서는 가슴 아픈 컬러 매칭 등에도 딸의 취향을 존중했고, 저녁 식사 메뉴, 여행지 또는 그곳에서 하고 싶은 일, 딸의 방 꾸미기, 쉬고 싶은지 놀고 싶은지 등 사소한 것들에 딸의 의견을 반영했다. 엄마의 편의 속에 딸의 생각과 마음을 덮어두고 싶진 않았다.
어쩌다 딸이 자신의 의견을 반영했음에도 결과에 대해 불만을 이야기할 때면, “우린 그때 최선이라고 생각했어. 다음엔 오늘 생각한 부분도 포함시키자.”라고 이야기했다. 자연스럽게 선택도 책임도 나의 몫이라는 사실을 깨닫길 바랐다.
특히 나와 다른 의견을 이야기할 경우, 나와 뜻이 다르다고 해서 버릇없다거나, 엄마가 얼마나 고생했는데 등의 감정 섞인 비난을 하지 않으려 애썼다. 그냥 딸의 마음은 그렇겠구나 하고 읽어보려 했다. 예의라는 이름 아래 어른들과 다른 생각을 표현하지 못했던 내 모습을 반복하고 싶진 않았다. 딸은 예의 바르게, 건강하게 자기 생각을 표현하며 자라길 바랐다.
나도 가끔은 사람인지라 답을 정해두는 질문을 던지는 때가 있다. 그런 경우, “미안해. 그냥 네가 판단하면 될 것 같아.”라고 사과하고 질문을 정정한다. 하지만 남해에서 살게 된 일은 딸의 의견을 전혀 존중하지 못한 경우이자 말로 하는 사과로는 해결하지 못할 경우였다.
그간 자리 잡은 많은 것들을 ‘다시 선택' 해야 했다. 피아노 학원, 스쿨버스 이용, 좁은 남해 집에서 책상 위치, 하교 후 하고 싶은 일들 등등. 그 ‘다시 선택’의 과정은 때로는 귀찮고 힘들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딸의 의견을 최대한 반영시킨 결정들을 했고, 그 속에서 딸은 자기 의견이 힘을 발휘한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또 힘듦을 건전하게 해소하는 방법 역시 딸과 함께 찾아갔다. 부정적 마음이 오래 머무르지 않도록 "어떻게 하면 좋을까?"라는 쉬운 질문으로 해법을 찾아갔다. 이동 중 음악 듣기, 바닷가를 산책하며 노래 부르기, 들판을 걷다 대형 마시멜로 위에 올라가 만세 외치기 등 그때그때 몸과 마음을 보살피는 방법 역시 내면의 목소리를 통해 알아차릴 수 있었다.
<자기 & 타인 존중>
자신의 목소리에 귀 기울일 줄 알고, 눈치와 비난이 아닌 존중받는 경험 속에서 자라난 아이는 자신이 귀한 것처럼, 타인도 귀하다는 것을 자연히 알게 된다. 내 감정이 소중하듯이 타인의 감정도 소중하다는 것을 스스로 터득하게 된다. ENTP 아빠, INFJ 엄마, ENFP딸. 달라도 너무 다른 우리 가족이 자주 쓰는 말은 ‘취존’이다. ‘나는 내 모습으로, 너는 너의 모습으로 아름답게. 서로를 존중하며 함께 하자.’가 우리 가족의 모토다.
<자신을 찾아가는 아이 곁에서>
* 진짜 마음에 드는 걸 선택해. 기다릴게.
* 하고 싶은 건 해봐. 도움이 필요할 땐 이야기해.
* 너는 너 하나뿐이야. 네가 원하는 걸 하면 돼.
부모란 여러 가지 정의가 있겠지만, 그중 하나는 ‘기다리는 존재’이다. 아이가 사소한 선택 앞에서 갈팡질팡 마음의 소리를 더듬을 때 성급한 도움과 결론을 주지 않고 기다리는, 강한 인내심을 발휘해야 하는 존재이다.
마트에서 먹고 싶은 과자를 고를 때, 입고 싶은 옷을 고를 때, 여행지에서 가고 싶은 장소를 고를 때, 움직이고 싶은지 쉬고 싶은지를 선택할 때, 아이는 머뭇거리는 것이 아니다. 다만 스스로 열심히 묻고 있는 것이다. ‘난 뭐가 하고 싶은 걸까?’하고.
그때 부모가 할 일은 딱하나, 아이가 자신의 결론을 내릴 수 있도록 가능한 기다려 주는 것. 그뿐이다. 그 기다림 속에서 아이는 내면의 목소리와 소통하며 자기만의 해법을 찾아가는 경험을 쌓아갈 것이다.
‘우리 함께 웃으며 성장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