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火)를 화(花)로 바꾸는 아이

가만히 다음을 생각하기.

by 지혜

<언제 화가 나?>

한동안 화에 시달렸다. 내가 화가 나는 이유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내가 찾은 첫 번째 이유는 불편감이었다. ‘일이 너무 고되다, 이건 참 재미없다.’와 같이 단순히 나의 내부에서 시작되는 불편감이 있었다. 또 ‘이 일을 왜 내가 해야 하는가?, 전가하는 것 아닌가?, 상황이 왜 이렇게 되어버렸지? 그 사람은 정말 무례한데?’ 등과 같이 외부에서 시작되는 불편감도 있었다. 시작점이 어디가 되었든 모든 해결되지 못한 불편감은 내 속을 달달 볶으며 마음을 점점 쪼글아 들게 했다.


두 번째 이유는 불안감이었다. ‘처음 접하는 일에 대한 두려움, 나의 능력보다 커 보이는 일에 대한 무력감, 위협당하는 개인 시간, 경쟁하에 순조롭지 못한 일의 진행 등’과 같은 상황은 모두 불안감으로 귀결되었다. 특히 주류에서 소외되고 싶지 않은 욕망이 강한 나에게 다가온 일종의 FOMO(Fear of Missingout)는 성과를 내야 한다는 조급한 불안으로 이어지며 역시나 내 속을 달달 볶아댔다.


딸에게 언제 화가 나는지 물었다. 그 대답이 참 아이다웠다. ‘자고 있는데 엄마가 기침을 해서 갑자기 잠을 깰 때, 배가 고플 때, 현장체험학습이 취소되었을 때, 교장선생님 훈화 말씀이 너무 길 때, 친구가 놀릴 때 등’이었다. 딸이 화가 나는 상황에서 느낄 불편감과 불안감이 충분히 공감되었다.


<어떻게 화를 삭이니?>

나는 화가 나면 우선 혼자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 혼자만의 공간에서 외부의 방해를 받지 않는 정적이 필요하다. 어느 정도 회복이 되면 샤워를 하거나,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려 본다. 때로는 동네를 걷기도 한다. 그러다 보면 가슴속에 답답하게 고여있던 거친 숨이 조금씩 밖으로 쓸려 나간다.


딸에게 ‘화가 날 땐 일기를 써봐.’라는 지극히 엄마 취향의 처방을 권한적이 있다. 딸의 대답은 ‘그럼 분노가 더 커져요.’였다. ‘그럼 넌 어떻게 화를 삭이니?’라고 물었다. 그 대답은 참 아이답기도, 참 어른스럽기도 했다.


가만히 있으면 가라앉아요.
가만히 있으면서 그다음을 생각하는 거죠.


딸의 대답은 “가만히 있으면 가라앉아요.”- 스님들의 책에서 많이 본듯한 멋진 대답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다음 대답이 더 좋았다. “가만히 있으면서 그다음을 생각하는 거죠. 교장선생님 말씀이 끝난 후 애들이랑 놀 생각, 어차피 잠에서 깬 거 할 일 해두고 뭐 재밌게 할 일 없나 찾아보기 뭐 그런 거요.” 상황을 긍정적으로 이용하는 모습이 기특했다.


그러고 보니 딸이 1학년 때 급식실에서 있었던 일이 떠올랐다. 수백 명이 동시에 식사를 하는 큰 학교에 입학했던 딸은 줄을 서서 식판에 담길 음식을 기다리고 있었다. 딸의 조금 앞 순서에 있던 친구 차례에 반찬이 동나 조리사님께서 아이들에게 기다리라는 말씀을 남기시고 잠시 주방으로 들어가셨다. 그 사이 딸반 친구들은 왜 내 차례에 반찬이 없어지냐고, 배고프다고, 반찬이 없으면 어떻게 해야 하냐며 화를 냈다고 한다. 그때 딸이 “기다리면 다음 판(반찬 트레이)이 나와.”라고 이야기했다. 그 모습을 보신 담임선생님은 딸에게 ‘초연함의 미덕을 갖추었구나!’라고 말씀해 주셨다.


<화(火)가 화(花)가 될 수 있을까?>

아이와 함께 거친 말, 거친 몸짓이 아니더라도 화를 긍정적으로 풀어 나갈 수 있음을 경험해 보는 건 어떨까?


지금의 불편함이 지나면 다가올, 혹은 만들 수 있는 즐거운 상황을 생각해보기.

그 즐거운 상황을 실천함으로써 쌓아가는 신뢰.

지금 느껴지는 불안감에 대해 앞 일을 이야기하며 찾아가는 안정.

불편과 불안이 영원하지 않음을, 우리는 충분히 쉬고 숨 쉬고, 즐길 수 있음을 인식하는 것에서 싹트는 여유로운 마음.


경쟁 혹은 공존 속에서 불편하고 불안한 우리. 왜 화가 나는지, 어떻게 해볼 수 있을지 생각해 보는 것만으로도 화(火)를 화(花)로 바꿀 수 있는 단서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우리 함께 웃으며 성장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