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캐나다 이민을 결심하게 된 계기들에 대해 공유드리고자 합니다. 사실 이민에 대한 생각은 결혼했을 때부터 갖고 있었지만 오랜 기간 망설여 왔어요.
하지만 결국 부모님과 친구들, 익숙한 한국 문화와 직장을 놔두고 용기를 내어 캐나다로 떠나기로 마음먹은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와이프와 저는 삶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관이 맞아 결혼하게 됐습니다. '가족과의 시간을 우선적으로 생각한다'는 것이었어요.
직장 생활을 하며, 저는 이 부분을 최대한 지키려고 노력했어요. 설령 눈치가 보이더라도, 제가 맡은 일에 지장이 생기지 않는 선에서 회사에서 주어진 복지 제도는 최대한 활용했습니다.
시차 출퇴근제를 이용해 첫째를 유치원에 등원시키고 늦게 출근을 하고, 아버지가 편찮으실 때는 내년도 연차를 앞당겨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다만, 업무상 제가 맡아야 하는 책임이 중요할 때는 당연히 야근도 하고 휴일 근무도 하면서 맡은 바 소임을 다했어요. 하지만 그러다 보니 집에서 아이들을 홀로 보고 있는 와이프의 불만이 쌓이더라고요.
"캐나다에서는 6시에 퇴근인데 5시 30분에 미팅을 시작하지? 6시가 되면 미팅이 끝나지 않았어도 아이를 픽업하러 가버려!"
와이프의 말을 듣고 저는 꽤나 충격을 받았어요. 물론 회사마다 조직문화가 다르겠지만, 기본적으로 '가족'과 관련한 일에 대해서는 회사가 직원 개인에게 유연하게 배려해주는 문화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이는 캐나다 사회가 저녁이 되면 모두 가정으로 돌아가서 가족과 시간을 보내는 것이 당연시되는 곳이기 때문인 것 같아요. 한국처럼 저녁에 나가서 맛있는 것을 먹고 음주가무를 즐기는 문화가 활성화되지 않은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죠.
그래서 저는 캐나다에 가서 '가족과의 시간'이 중심이 되도록 제 삶을 리모델링하려고 합니다. 아이들이 자라는 것을 보고, 많은 대화를 나누고, 와이프와 둘만의 시간도 갖고자 해요. 가급적 새로운 수입원을 얻는 방법도 가족과의 시간을 침해받지 않는 방향으로 재택 근무를 하는 직업이나 1인 창업 등을 추구해보고자 합니다.
저는 어렸을 때부터 기관지가 약했어요. 제 딸들도 저를 닮아 기관지가 약하죠. 일주일에 두 번은 기본으로 소아과 진료를 받고 있고, 연말정산할 때 병원비 내역을 보면 충격을 받곤 합니다. 건당 1만 원 미만이라서 실비 청구가 불가능한 병원비가 모이니 어마어마해지더라고요.
황사가 오고 미세먼지가 심해지면 이 문제는 더 심각해집니다. 뿌연 하늘과 길거리를 걷다 보면 피부에 먼지가 쌓이는 촉감은 이런 환경에서 더 이상 살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 만듭니다.
저는 종종 '우리 아이들도 맑은 공기를 마시며 살면 좀 덜 아프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합니다.
생각해보면 제가 20대 때 미국 샌디에고에서 맑은 하늘과 푸른 바다를 즐기며 교환학생 생활을 할 때는 기관지가 참 편하고 감기에 걸리는 일이 극히 드물었어요. 또, 공기 맑은 하와이나 후쿠오카로 가족 여행을 갔을 때도 가족 모두가 기침 한 번 하지 않고 기관지가 편했던 기억이 있어요.
캐나다에서도 맑은 공기를 마시며 생활하면, 콧물을 덜 흘리고 기침을 덜 하고 가래가 덜 생기는 삶을 살 수 있을 것이고, 그것만으로도 삶의 질이 많이 개선될거라 기대합니다.
저는 강남에서 나고 자랐고 지금도 강남에서 살고 있습니다. 사교육을 매우 많이 받으며 살았어요. 초등학교 4학년 때 전 교과목뿐 아니라 서예, 컴퓨터, 체육, 단소 등 총 10종류의 수업을 받고 있었던 것이 기억납니다. 그래서 이 과정에 얼마나 많은 비용이 드는지, 그리고 아이가 이를 제대로 받아들이지 않으면 얼마나 많은 비용과 시간이 낭비되는지를 알고 있어요. 저는 다행히 모르는 것을 알아가는 과정을 즐겼지만, 많은 친구들은 마지못해 자리만 차지하고 시간을 헛되이 보내기 마련이었거든요.
요즘은 사교육이 더 심해졌습니다. 부모들 사이에서는 '학원을 가지 않으면 친구를 사귈 수 없다'는 말이 나오기까지 합니다. 대기업 임원이 되어 억대 연봉을 받아도 아이들 사교육 때문에 돈을 모을 수 없다는 말도 나오고 있어요. 주변 학부모들의 압박도 심합니다. '지금 이것을 배우지 않으면 이미 늦었어!'라는 식으로 학부모가 마치 영업사원이 된 것 처럼 다른 학부모의 불안감을 조장합니다.
와이프가 학원과 학교에서 초중고 학생들에게 모두 영어를 가르쳐 보았기에 실력 향상과는 무관한 사교육을 강요하는 문제를 잘 알고 있어요. 따라서 이런 환경에서는 두 아이를 키우는 것이 경제적으로, 정신적으로 감당하기 어렵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캐나다에서는 '지금 이것을 미리 준비하지 않으면 늦는다'는 사교육을 권장하는 말을 듣지 않고, 지금 아이의 관심사가 무엇인지 관심을 갖고, 그것을 어떻게 장려하고 키워줄지에 대해 고민하며 살고 싶습니다.
제가 현재 속한 회사는 신문 기사나 주가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코로나 이후부터 쭉 산업 전망이 좋지 않았습니다. 회사는 업의 본질과는 벗어나더라도 당장 생존할 수 있는 일을 중심으로 업무가 재편되었습니다. 미래를 생각하며 전략을 수립하기보다는 당장의 생존만을 생각하는 조직에 있다 보니 많은 조직이 비전을 제시하지 못해 좋은 직원이 떠나갔습니다. 좋은 인력이 빠진 빈자리는 채워지지 않고, 조직의 업무는 계속 비효율적이고 비생산적으로 진행되며, 직원들이 이탈하는 악순환이 반복됐습니다.
저는 다행히 좋은 그룹장님과 뜻이 맞는 동료가 있었습니다. 함께 업무를 하며 많은 문제를 해결했고, 리더와 동료의 신뢰와 지지를 바탕으로 업무적으로 새로운 시도도 해볼 기회가 있었어요. 하지만 제가 속한 부서만 괜찮더라도 회사 전체가 악순환의 굴레에 빠져 있다 보니 만족할 만한 성과가 나오지 않았어요. 전사적으로 다른 부서의 협조를 받아 개선하고 싶은 점들이 있어도, 의욕이 있는 사람들이 없으니 저만 의욕이 있는 것만으로는 한계가 있었어요. 또한, 생존을 위해 방어적으로 문제 해결에 집중하지, 보다 발전하기 위해 문제점을 찾고 개선해 나가는 업무를 하지 못하는 점이 많이 아쉬웠어요.
이제 캐나다로 떠나 새로운 커리어를 시작하려는 만큼, 이번에는 성장하는 회사에서 진취적인 동료들과 함께 일을 해보고 싶습니다.
이전부터 미국이 경제의 중심에 있었으나, 앞으로 그 추세는 더욱 심해질 것 같습니다. 한국에서 원화를 아무리 벌어서 자산을 모아도 원화 가치가 떨어질 가능성이 크게 느껴졌어요.
캐나다에서 일을 하게 되면 캐나다 달러를 벌게 됩니다. 한국보다 임금 수준도 높아서 동일한 일을 하더라도 더 많이 벌게 되고, 동일하게 5%를 모으더라도 한국에서보다 많은 돈을 모으게 됩니다.
또한, 캐나다 달러는 미국 달러보다 가치가 낮기는 하지만 미국과 인접해 있기 때문에 미국 달러 가치와 흐름을 유사하게 유지합니다. 원화를 보유하는 것보다는 리스크 헤징이 가능하다고 판단했습니다.
이렇게 다섯 가지 이유로 저는 한국을 떠나 캐나다로 갈 마음을 먹게 됐습니다.
물론 캐나다에 가서 경험하게 될 불편한 점들도 분명히 많을 것입니다.
하지만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제가 이민을 결심하게 된 이 다섯 가지 계기들을 상기하면, 마음을 다시 가다듬어보고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