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이 너무 차서, 체력이 떨어져서, 그냥 힘들어서. 달리다 보면 궁금해진다.
'내가 얼마나 달렸지? 이때쯤이면 시간이 얼마큼 지났지?'
'나는 스마트폰 중독이 아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 이나 될까. 스마트폰을 보지 않기란 아주 큰 인내심을 필요로 했다. 달리면서 애플뮤직에 만들어 놓은 플레이리스트 음악을 들었는데, 보통 한 곡은 3~4분이니까 두 곡을 들으면 7분 페이스로 1km를 달리는 셈이다. 그런데 음악으로 시간과 거리를 계산하기 시작하니까 노래 두 곡이 끝나갈 때쯤에도 '운동을 종료합니다'라는 멘트가 나오지 않으면 그때부터 멘털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노래를 이만큼 들었으면 1km가 끝나야 하는데 대체 왜?' 요즘 노래는 전주와 간주가 매우 짧고 갑자기 노래가 뚝 끝나버린다, 겨우 3분을 채운 음악도 허다하다. 계속 짧아지는 플레이타임에 내 달리기 훈련도 위기였다.
줄 이어폰을 타고 에픽하이의 '우산'이 흐른다. 20대 때, 첫째 딸을 임신하기 전에 들으며 달리기 하던 바로 그 노래다. 내 다리는 그때만큼 가볍지는 않아도 그때가 떠올랐다. 건강해야 엄마가 될 수 있지, 달리기 해야지, 예쁜 가정을 만들어야지, 다짐을 하던 그때. 달리지 않았다면 떠올릴 일 없이 잊었을 그때. 에세이를 한 편 읽는 듯한 가사를 쓰는 타블로를 좋아한다, '블로노트'와 'Pieces of You'를 읽고, 그를 힘들게 했던 시절의 서사를 다룬 'Authentic'이라는 팟캐스트 전 에피소드를 듣고 난 후에는 더더욱 그의 팬이 되었다.
달리는 순간에도 그의 팬질을 하기 위해 수를 낸 것은, 음악으로 달리기 훈련에 위기를 마주하고 '우산' 대신 아무 말 대잔치로 한 시간을 떠들어주는 '타블로 팟캐스트(하루 버전: 타블로 팟클래스)'를 듣는 것이었다. 투컷의 계정으로 넷플릭스를 몰래 본다는 얘기라든가 투컷에게 DM을 보내 넷플릭스 계정을 알려달라고 하면 알려줄 거라는 둥, 고등학교 때 부모님의 반 강요로 참석하게 된 종교캠프에서 삭발을 당하고 이상한 경험을 했는데 광신적 종교 집단이 아니었는지 갑자기 확인을 해야겠다며 같이 갔던 뉴욕 마이클에게 전화를 하는 등 뮤직코멘터리 주제와 관련 없는 그의 창의적인 떠들어댐이 러닝에 제격이었다. 광고나 음악 없이 한 시간을 계속 말해주는 타블로 덕분에 피식피식 웃다 보면 어느새 목표한 거리에 도달해 있었다.
그래봤자 아직 1km.
일주일 동안 매일 1km를 달린다고 했더니 사무실 후배가 코웃음을 쳤다. 이렇게 해서 어떻게 10km를 달리겠냐는 걱정이었겠지만, 나는 누구보다 나 자신을 잘 안다. 대회까지는 9주가 남았으니, 나의 계획은 매주 1km씩을 늘려 달리고 대회 당일에는 실전이니까 10km를 뛸 수밖에 없다는 계산이었다. 과연?
플레이타임이 짧아지는 추세에도 노래 한 곡으로 1km를 달릴 수 있는 페이스 조절용 노래가 있다. '올 마이 라이프' 한 곡이 끝날 때 1km를 통과할 날이 올까.
-Just the two of us(feat. Bill Withers) <Grover Washington, Jr. 7분 20초>
-Freedom! '90 <George Michael, 6분 31초>
-All my life <K-Ci & JoJo, 5분 33초>
반면, 3분이 채 안 되는 플레이타임이지만 박자에 맞춰 발을 옮기면 딱 좋은 케이던스 조절용 노래도 있다. 케이던스는 1분에 발이 땅에 닿는 횟수를 말하는데 보통 150~180 정도의 수치가 적당하다고 한다.
-Older <Alec Benjamin>
-Liz <Remi Wolf>
-Blinding Lights <The Week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