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이 짧은 것 말고도 겁나는 게 또 하나 생겼다.
인적이 뜸한 밤의 공원에는 부러 개의 목줄을 풀어놓고 산책을 시키는 분이 계셨다. 어릴 때 우리 집에서 키우던 개 '메리'에게 손가락을 제대로 물렸던 나는 유난이다 싶을 정도로 개를 보면 기겁을 한다. 어두운 밤, 목줄 풀린 개는 숨이 차는 것만큼 공포였다. 다행히 목줄 풀린 개를 보고 기겁하는 내 표정은 밤에 가려졌다. '꺅' 소리를 들은 견주가 개를 빨리 안고 길을 터주셨다.
주인 없는 목줄 풀린 개를 만나면 어떻게 할지, 달리기를 계속한다면 나는 대비해야 했다. 몇 분 안 되는 시간 동안 나는 계속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저 운동기구에 올라가면 되겠다.', '벤치를 디디고 정자 지붕 위에 올라갈 수 있겠지?' '저 나무는 가지가 튼튼하네. 저걸 밟고 올라가서 119에 전화해야지.' 이렇게 나름의 계획을 짜고 달리기를 했다.
크지 않은 공원을 반 정도 더 돌았을 때 고양이보다는 확실히 크고 강아지보다는 둔부가 동글동글한 무언가가 낮은 나무 숲에 대가리를 넣고 있었다. 자연스레 달리기를 멈추고 재빨리 방향을 휙 틀어 다른 길로 걸음을 빨리 옮겼다. 산책하던 주민들은 그 동글동글한 것을 사진 찍더니 귀엽다고 한 마디씩을 했다. 너구리란다.
아파트 단지 내 공원에 너구리라니.
산을 깎아 아파트를 만들고, 공원을 예쁘게 가꾸기 위해 숲을 없애면서 서식지를 잃은 너구리가 먹이를 찾아 도심에 나타난다더니 우리 동네에도 있었다. 너구리가 사람에게 달려드는 동물인지는 잘 모르지만, 만약 나를 할퀴더라도 파상풍 주사를 맞았으니까 괜찮겠지?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1km를 설정해 놓고 달리기를 시작할 때 목표는 스마트폰을 보지 않는 것이었다. 얼마를 달렸는지,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체크하지 않기. '1km를 달렸습니다. 운동을 종료합니다.'라는 멘트가 나올 때까지는 참으로 긴 시간이었다. 헉헉거리며 간신히 1km를 마쳤을 때 단 1미터도 더 뛰지 않고 바로 멈췄다, 나는 숨이 너무 찼으니까.
집에 돌아가 호기심 많은 아들에게 너구리를 봤다고 하자 아직 있다면 만나고 싶다고 같이 나가자고 한다, 잠옷에 재킷만 걸친 아들과 다시 공원에 나갔지만 그 사이 고픈 배를 다 채웠는지 너구리는 보이지 않았다. 남편은 본인이 내 옆에 꼭 있어줘야 할 이유가 하나 더 생겼다며 제법 뿌듯해했다. 목줄을 길게 늘인 강아지가 나타나면 내 뒤에서 걷다가도 옆으로 다가와 콩알만 한 멍멍이를 막아주는 모양새, 사실 옆에서 누군가 이 모습을 지켜본다면 꼴불견이라고 할지 모르지만 보호받는 느낌을 싫어할 여자는 없으니까.
러닝 하면서 발견한 그의 섬세한 모습이 또 좋다.
목줄 풀린 개
너구리
이날 밤, 나는 겨우 1km를 달렸을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