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누비 Apr 19. 2022

햄최몇 그리고 행최몇

햄버거 좀 먹겠다는데 그게 뭐 어때서

 다음Daum.net의 뿜게시판에서 '햄최몇'이라는 단어를 봤다. 줄임말을 하도 많이 봐서 그런지 어렵지 않게 원래 무슨 뜻인지 짐작할 수 있었다. '햄버거 최대 몇 개'라는 짐작은 빗나가지 않았다. 왜 굳이 이런 뜻을 줄임말까지 만들어 쓰는 걸까? 검색해보니 이 말이 뚱뚱한 사람을 혐오하는 표현이란다. 다른 사람을 멸시, 비하, 조롱하는 표현을 줄임말 속에 숨겨 밈으로 변질시키는 경우를 종종 보는데 이 '햄최몇'도 다르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햄버거를 두 개 이상 먹는 사람들이 그리도 추하게 보였을까? 뚱뚱하고 못생긴 사람은 햄버거를 최대 몇 개까지 먹어야 조롱의 대상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나의 소울 푸드인 햄버거가 혐오와 멸시의 상징처럼 쓰이고 있는 것을 보고 있자니 마음이 아프다. '햄최몇'은 나에게 가장 소박하고도 소중한 위로를 건네주는 햄버거를 한 순간에 부끄럽고 초라하게 만들어 버렸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학교에서는 중3을 가르치는 국어선생님으로 집에서는 유치원 다니는 외동아이의 엄마로 쉴틈없는 일상을 달린다. 드디어 주말을 앞둔 금요일 밤. 퇴근이 늦는 남편 식사는 따로 남겨두고 아이와 함께 먼저 먹던 저녁 식사를 건너뛴다. 아이가 남편과 함께 자러 들어가는 9시가 되면 거실은 온전히 내 차지가 된다. 주저하지 않고 배달 앱을 켜 햄버거 세트를 주문한다. 콜라는 나중에 먹을 수 있는 오렌지 주스(대개 병이나 캔으로 배달된다)로 교환하고 감자튀김을 라지 사이즈로 바꾼 후 볼륨이 조금 작은 불고기 버거나 치즈스틱이나 치킨텐더 따위를 추가한다. 며칠 전부터 냉장고에서 차갑게 식혀 둔 맥주를 꺼내 곁들여 즐기고 나면 1% 정도 허전하다. 짠맛을 실컷 즐겼으니 사소한 단맛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아이스크림이나 초콜릿, 젤리 따위를 먹으며 한 주 내내 차곡 차곡 쌓아둔 스트레스를 사르르 녹인다. 바쁘기만 했던 한 주를 마무리하는 소박하고도 거나한 만찬은 이렇게 끝난다. 예상치 못한 스트레스가 임계점까지 치솟게 되면 금요일이 아니더라도 퇴근길에 패스트푸드점 드라이브쓰루를 들러 차 안에서 감자튀김이나 치즈스틱, 햄버거를 우물거리며 곧 닥쳐올 것만 같은 심신의 병을 예방한다.

 

아이를 낳기 전만 해도 일이나 사람에 치여 스트레스를 받는 날이면 퇴근길에 햄버거 세트를 사들고 와 집에서 야구를 시청하며 맥주와 함께 우물거리는, 퇴폐적이긴 하지만 저녁이 있는 삶을 살아 왔다. 햄버거는커녕 밥 한 숟갈도 사람답게 들지 못하는 신생아 육아 시절을 지나고 나는 실컷 먹어도 되지만 아이에게는 감자튀김 하나도 주기 싫은 모순된 삶을 매일 살아내야 하는 어린이 육아 시기를 보내며 햄버거와의 만남은 자연히 혼자만의 야심한 시간으로 밀려났다. 그렇게 10년 이상을 함께 하고 있으니 아끼고 정붙는 것이 당연한데 그것 좀 많이 먹는다고 혐오의 표현이 되는 것도 그렇지만 단지 뚱뚱해서 못생겨 보인다고 조롱하기 위해 하고 많은 음식 중에 굳이 '햄버거'를 가지고 와서 쓰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속상하다.


햄버거는 사실 (내 기준에서는) 양질의 고기, 싱싱한 양배추나 토마토 따위의 야채, 빵, 풍미 넘치는 치즈와 소스까지, 그야말로 탄,단,지에 섬유질까지 갖춘 완벽한 음식이다. 최근 유명 수제 브랜드 버거들이 들어오면서 격식을 차린 스테이크 못지않은 비싼 가격의 햄버거도 나오는 등 외식 문화의 유행을 선도하고 있다. 그러나 내가 오매불망 금요일 밤만 되기를 기다려 즐기는 햄버거는 그런 것이 아니다. 완벽에 가까운 비싼 햄버거에서는 내가 원하는 그런 맛이 나지 않는다. 


피로와 스트레스를 사르르 녹아 버리는 나의 햄버거는 한 세트에 7천원이 넘으면 사기 망설여지고, 싸구려 패스트푸드점에서 녹초가 된 아르바이트생이 대충 쌓아 올려 양상추가 튀어 나오고 마요네즈가 쏠려 있는 햄버거다. 드라이브쓰루로 구입해 5분만 차에 두어도 차 안 가득 기름내가 퍼져 한 3일은 냄새가 빠지지 않는 것이다. 한 입 베어 물기만 해도 온 몸에 기름이 좌악 퍼질 정도로 독한 기름으로 대충 튀겨낸 것이다. 짠맛과 마요네즈 맛에 고기나 야채의 식감만 대충 느껴지는 것이다. 이 모든 불량한 행복을 맥주 한 잔과 섞으면 대폭발을 일으켜 시원하게 스트레스를 녹일 수 있는 것이다. 그런 유독한 것이다. 품격이라고는 조금도 찾아볼 수 없는 천박하고 지독한 그 햄버거를 최대 몇 개까지 먹을 수 있냐는 멸시는, 나에게는 숨돌릴 틈 없이 치열하기만 한 삶에서 잠시 벗어나 온전히 누릴 수 있는 작은 일탈이고 원초적인 쾌락이며 소탈한 시간이었다.


나는 매사에 5분, 10분 단위로 계획을 세워 그 틀에 딱딱 맞춰 일을 굴리고 남들보다 5분, 10분 일을 빨리 끝내야 직성이 풀린다. 자유 시간을 가지려고 할 때에도 언제 자유 시간을 가지고 어떻게 활용해야 가장 효율적일지를 먼저 생각한다. 밥상을 차릴 때에도 고기, 생선, 계란, 야채, 곡물 따위가 항상 골고루 섞이도록 매일매일 조금씩 식단을 바꾸어 만든다. 그러다 몸과 마음의 체력이 별난 기질을 배겨내지 못해 와르르 무너질 것 같을 때에는 맛있는 것을 실컷 먹으며 계획을 세우기 이전의 나로 돌아왔다. 햄버거는 때로 치킨이나 피자가 되기도 하고 초밥이나 족발이 되기도 했으며 마카롱이나 퐁당쇼콜라가 된 적도 있었다. 그렇다고 언제나 말초적인 음식들만이 나를 행복하게 했던 건 아니다. 내가 차린 정성스런 음식이나 나를 위한 정성스런 음식은 때로 오래된 추억이자 내 삶을 더 풍요롭게 만드는 원천이 되기도 했다.


나를 행복하게 하는 것들은 최대 몇 접시나 되었을까. 나는 그동안 내가 먹었던 햄버거 개수를 헤아리며 분노와 자괴감을 느끼는 대신, 나를 행복하게 했었던 음식들을 호명하듯 하나 둘 떠올려 보기로 했다. 

 '행최몇'.

 당신의 행복은 최대 몇 접시인가요? 

 제 글과 함께 맛있는 것들을 떠올리며 행복의 추억을 불러 보는 건, 어떤가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