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세계에 온 걸 두 팔 벌려 환영해
온 가족이 코로나 확진으로 격리된 지 3일째였다. 원래 아이 몰래 초콜릿이나 스낵 등 불량 간식을 먹곤 하는데 하루 종일 함께 있어야 하니 눈치가 보인다. 이마트몰에 먹을거리를 주문하는 김에 요즘 제일 좋아하는 초콜릿인 밀카 웨하스와 비스킷을 담았다. 나만 먹기가 좀 그래서 남편에게도 비스킷을 하나 건네며 아이에게도 하나 주고 나는 두 개를 먹었다. 밀카 비스킷은 다이제 초코 비스킷과 비슷하다. 빡빡한 밀가루 쿠키 한 면에 초콜릿이 발려 있다. 아직은 자기 좋아하는 부분만 호로록 벗겨 먹는 버릇을 고치지 못한 아이는 입술과 혓바닥을 총동원하여 초콜릿 발린 부분만 핥아 먹기에 여념이 없다. 민둥산처럼 초콜릿이 벗겨진 축축한 비스킷을 들고 아쉬운 얼굴로 깨작거리는 아이의 얼굴을 보다 그만 웃음이 터졌다. 통통한 양 볼이며 두 손에 온통 초콜릿 자국이 남아 있었던 것이다.
젤리나 사탕, 과자 같은 다른 음식들을 하나 둘 아이에게 개방하기 시작했으나 최후의 보루처럼 남겨둔 것이 바로 초콜릿이었다. 카페인이 들어 있기도 하지만 끊기 어려운 중독성 때문에 굳이 주고 싶지 않았다. 최후의 보루가 무너진 것은 작년 봄에 당일치기 캠핑을 가서 제 친구에게 빼빼로를 하나 얻어먹으면서였다. 그때만 해도 초콜릿에 큰 관심을 보이지 않더니, 본격적으로 기관 생활을 하면서 여기저기서 초콜릿 묻은 군것질거리들을 접하고는 초콜릿이 안내하는 신세계에 눈을 떴다. 케이크도, 아이스크림도 온통 초콜릿 맛만 찾는다. 내 이럴 줄 알고(?) 초콜릿만은 개방하고 싶지 않았건만... 이쯤에서 드디어 날 닮은 구석을 - 아이는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차분하고 유순한 내면조차 남편을 쏙 빼닮았다. - 한 군데 발견했나 싶어 조금 반갑기도 하다.
나는 어린 시절부터 가나초콜릿과 크런키초콜릿을 사랑했다. 가나초콜릿의 다크한 맛과 크런키초콜릿의 오돌토돌한 맛을 사랑했다. 고3 수험생 시절에는 야자를 마치고 새벼 1시까지 독서실을 홀로 지키며 미니 스니커즈 초콜릿 한 다스(12개) 또는 ABC 초콜릿 한 봉지(30개 내외)를 까먹는 재미로 1년을 버티었다. 대학 시절에는 카카오 고함량 초콜릿이 히트를 쳤다. 나는 그 유행에도 편승해 56%, 72%, 99% 카카오 초콜릿까지 섭렵하고 나서 킷캣이나 허쉬 아몬드 초콜릿 등 해외 초콜릿에 눈을 돌렸다. 임용에 합격하고 사회 초년생, 신규교사로 좌충우돌하며 상처받은 내 마음을 달래준 건 바로 페레로로쉐 초콜릿이었다. 참새가 방앗간을 지나치지 못하는 것처럼 퇴근 때마다 편의점에 들러 스트레스의 크기나 허기에 따라 3구, 5구, 9구, 16구짜리를 집어 와서 저녁을 먹기 전 허겁지겁 초콜릿을 먹어치웠다. 완전한 내돈내산이 가능해지면서 고르는 초콜릿에 사치를 부렸던 것이다.
페레로로쉐에 빠져 들었던 신규 교사 시절은 같이 근무하던 동료 교사들과 퇴근 후 카페를 다니며 맛있는 것을 먹고 수다를 떨던 시기이기도 했다. 모르는 것이 없었던 선배 교사 A의 소개로 학교 근처의 괜찮은 동네 카페에 갔었다. 거기서 처음 맛봤던 퐁당쇼콜라의 진하고 부드러운 맛은 아직도 잊지 못한다. 우유와 시럽을 넣지 않은 커피의 길만 걷는 나에게 퐁당쇼콜라는 완벽한 짝꿍이었다. 소스볼만한 작은 그릇 아래 막 부풀어오른 퐁당 쇼콜라를 티스푼으로 한 입 깨뜨리면 쫀득하게 올라오는 그 초콜릿의 풍미란! 그 동네 카페는 정식 이름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내 기억 속에선 '퐁당 쇼콜라 카페'였고, 나는 학교를 옮기고 결혼을 할 때까지 10년 가까이 단골 살이를 했다. 그때 퐁당 쇼콜라를 함께 나누었던 동료들과 31일동안 다녀온 유럽 여행에서 내가 가장 많이 사들인 기념품이자 선물보따리도 바로 초콜릿이었다. 민트초콜릿, 밀카초콜릿, 에프스레소 초콜릿, 위스키 초콜릿까지 참 다양한 초콜릿들을 많이도 사들였고 아껴아껴 가면서 보따리를 풀었지만 그 초콜릿들은 채 반년도 지나지 않아 모두 내 혓바닥 속에서 녹아 사라졌다.
초콜릿은 커피와 함께 나의 양대 기호품이지만 결국 최후의 승자가 되었다. 아이를 임신한 기간동안 카페인 섭취를 자제해야 했기에 커피와 초콜릿 모두 즐기기는 어려웠다. 나는 커피를 포기하고 초콜릿을 택했다. 만삭 직전까지 학교에서 근무를 하면서 몸과 마음이 힘들 때 기댄 구석이 바로 초콜릿이었다. 매번 조심하면서 조금씩 먹자고 다짐했건만 좀처럼 절제가 되지 않았다. 나는 아주 어렸던 유년 시절처럼 네모난 가나초콜릿 하나, 크런키초콜릿을 하나 사이좋게 매일 매일 씹으며 심신의 피로를 풀곤 했다. 그래서 딸아이의 피부가 그렇게 새카만 것이 아니냐고 - 아닌게 아니라 우리 딸은 독보적으로 새까맸다. 다른 건 다 남편을 닮았는데 까무잡잡한 피부만은 나를 닮았고, 심지어 나보다 더 피부가 까맣다. - 친정어머니로부터 결국 한 소리를 들었다. 한 달 남짓이긴 했지만 수유를 하면서도 가장 걱정스러웠던 부분이 초콜릿 속의 카페인이었다. 결국 나는 초콜릿에 눈 뜬 그 순간부터 단 한 순간도 초콜릿 중독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아이의 얼룩덜룩한 볼을 닦아 주며, 엄마의 세계에 함께 들어오게 된 것을 두 팔 벌려 환영한다. 침 냄새와 초콜릿 냄새가 섞인 아이 볼 냄새를 맡으며 쪽쪽 뽀뽀를 한다. 사랑스럽고 달콤하며 매혹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