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같은 가짜 커피도, 가짜같은 진짜 커피도 모두 좋아
아침 일곱시 반이 조금 넘었다. 엘리베이터가 4층에 멈춘다. 내리자마자 복도에 짙은 커피 향기가 진동한다. 나도 나름대로 일찍 출근했지만, 나보다 더 일찍 오시는 A 선생님이 이미 내려 두신 커피 향기다. 전날 퇴근 전에 씻어둔 머그컵에 커피를 붓는다. 따뜻한 물을 조금 더 붓는다. 머그컵을 왼손에 단단히 쥐고 한 모금 마신다. 눈으로는 부지런히 내부 메시지를 읽고 있다. 마우스를 쥔 오른손은 부지런히 움직인다.
가짜 커피 치고는 과하다 싶을 정도로 매우 훌륭하다. 인터넷 게시물 어딘가에서 봤는데 커피 애호가에게는 진짜 커피와 가짜 커피가 있단다. 주말 오후 한적하고 넓고 예쁜 카페에서 푹신한 소파에 앉아 은은한 음악을 들으며 고급 커피잔에 직접 내린 향과 맛을 음미하는 것이 진짜 커피란다. 일터에서 오로지 카페인 수혈을 위해(=살기 위해) 끼니마다 꼬박꼬박 들이키는 것은 가짜 커피란다.
내가 그동안 하루 두 잔씩 꼬박꼬박 마셔온 것이 가짜 커피라면 내 인생에서 최초로 접한 커피는 바로 가짜 커피이다. 나는 고등학교 2학년에서 3학년으로 올라가며 공부량이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겨울방학 때 처음으로 커피를 마셨다. 당시 우리 학교 앞 문구점에서 대히트를 친 상품은 바로 삼각뿔 모양의 커피우유였다. 모양도 참신했거니와 모서리를 뜯고 빨대를 꽂아 먹는 방법도 신선했으며 달콤했다. 뒤늦게 알았지만 이 삼각 커피우유는 당도만큼이나 카페인 함량도 높았다.
그러나 야자 전 석식을 마치고 학교를 한 바퀴 돌며 다들 삼각 커피우유를 쪽쪽거리고 있을 때 나는 블랙 커피에 눈을 떴다. 아메리카노는 커녕 카누도 나오지 않았던 시절이었다. 나는 노란 커피믹스 봉지를 조심스럽게 털어 커피 알갱이(?)만 종이컵에 붓고 학교 정수기 물을 부어 블랙 커피를 마셨다. 맛이라고는 없었지만 프림 특유의 텁텁한 맛은 더 싫었다. 끈적거리는 단맛도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 친구들은 나의 블랙 커피를 보며 탕약이 아니냐고 웃었고 그건 영 틀린 소리는 아니었지만 나는 생애 처음으로 만난 이 커피가 썩 나쁘지 않았다.
애석하게도 대학을 졸업하고 임용고시를 재수할 때까지 블랙 커피계의 혁신은 일어나지 않았다. 나는 대학교 도서관 지하 로비 앞에서 싸구려 중의 싸구려인 자판기 블랙 커피를 뽑아 마시며 근근히 카페인을 때워야만 했다. 임용 재수생(=백수)에게 카페의 아메리카노는 한낱 사치에 불과했다. 자판기 블랙 커피의 극악스러운 맛이 도저히 견디기 어려울 때면 자판기의 우유를 뽑아 마시며 짧은 낮잠을 청하기도 했다. (나중에 이 자판기 우유도 가루 형태로 시중에 풀리며 히트를 친다.) 임용 수험생 생활은 재수까지만 하고 끝이 나면서 나는 바로 자판기 블랙 커피와는 헤어졌다.
첫 학교에서 나는 한동안 고등학교 시절 만났던 블랙 커피와 재회했다. 조심스럽게 노란 커피믹스 봉지를 털어 가며 종이컵 반 잔의 가짜 커피를 마시다가 드디어 카누라는 혁신적인 발명품(?)이 등장했다. 이후 한층 업그레이드된 가짜 커피를 즐길 수 있었다. 해마다 학년실 구성원이 바뀌는데도 내리 7년간 교무실 막내이자 총무를 도맡았어야 했던 나는 교무실 간식을 살 때 다른 선생님이 드시든 말든 카누를 두둑하게 사는 것만은 잊지 않았다.
교직 년차가 조금씩 쌓이고 사회인의 태가 나기 시작하며 드디어 나는 진짜 커피라는 것과 만나게 되었다. 나를 퐁당쇼콜라의 세계로 이끌었던 선배 교사들은 이번에도 친절하게 나를 진짜 커피의 세계로 이끌었다. (사수의 역할이 이래서 중요하다. 나는 업무 사수 복은 지지리도 없었지만, 감히 사수라고 칭할 만한 동료 교사 복은 터지도록 넘쳤다.) 카페에서 당연히 아메리카노를 고르려는데 프리미엄 메뉴판처럼 제일 윗부분에 희한한 이름들이 보였다. 브라질, 에티오피아, 콜롬비아... 아렴풋이 짐작만 하고 있던 원두의 원산지였다. 아직 이십대 중반이었던 나의 선배들은 이제 막 20대와 30대의 경계를 넘고 있었다. 그녀들은 주로 달콤한 꽃향기와 산미가 넘치는 아프리카 커피를 즐겼다. 그리고 나도 그녀들을 따라 자연스레 이가체프나 AA 같은 커피부터 접하게 되었다. 개인적인 취향보다는 이가체프나 AA가 주는 특유의 산뜻함이 좋았던 것 같다.
몇 번의 시행착오 끝에 알게 된 나만의 진짜 커피는 시중 카페에 썩 흔하지는 않은 코스타리가 따라주와 에티오피아 시다모이다. 앞산에 와플을 맛있게 굽는다는 카페에 낯선 원두가 꽤 있었는데, 거기서 추천을 받은 것이 코스타리카였다. 적당한 묵직함과 적당히 부드러운 향기와 적당한 깊이가 마음에 꼭 들었다. 따뜻하고 폭신하게 굽혀 나온 와플과도 찰떡같이 어울렸다. 에티오피아 시다모는 차갑게 마실 때 오히려 그 산미가 더 잘 살아나는 것 같았다. 산뜻하게 즐기기에 이만한 원두가 없었다.
여자들끼리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내것으로 모자라 남의 것에 대해서도 실컷 수다를 떨다 한 모금씩 목을 축이면 장면이 바뀌는 것처럼 살아나는 풍미와 산미는 말 그대로 진짜 커피였다. 카페 특유의 때로 아담하고 때로 시원하고 때로 푹신하고 때로 예쁜 분위기도 진짜 커피만의 감성을 증폭시켰다. 그때만 해도 진짜 커피는 평범한 주말이라면 평범하게 맛볼 수 있는 평범하지만 특별한 기호였다. 평범한 시공간 속의 진짜 커피가 귀하고 특별한 진짜 커피가 된 것은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은 후였다. 예쁘고 조용하고 시공간에 정성을 들여 커피가 나오는 곳은 쳐다보지도 못할 노키즈존 카페들 뿐이었다. 커피를 마시러 카페에 가는데 원두가 아니라 아이와 시간을 잘 보낼 수 있느냐만이 중요했다. 혹시라도 엎었을 때 사고가 나면 안 되니 뜨거운 아메리카노 한 잔을 엄두내기도 어려워졌다.
이 시점에서 진짜 커피와 가짜 커피는 절묘하게 그 자리를 바꾸었다. 때마침 교무실에 드립 커피를 즐기는 사람이 많아 비싼 원두를 함께 구입해 매일 커피를 넉넉히 내려도 괜찮았다. 덕분에 출근을 일부러 조금 일찍 하면서 식상하다면 식상할 모닝 커피를 풍요롭게 즐길 수 있게 되었다. 주말에 남편과 아이와 함께 새로 생긴 교외 카페에 나가서 시키는 메뉴는 언제나 아이스 아메리카노 두 잔과 아이용 음료 한 잔. 이마저도 테이블 위에 던져놓다시피 하고 아이와 카페 주변을 산책하고 뛰어놀다가 목마름과 피로에 지쳐 벌컥벌컥 마시기 바쁘다.
그러나 진짜 커피든 가짜 커피든 마냥 좋다. 시원하게 목구멍을 타고 넘어가며 지친 심신을 쨍하게 일깨우는 차가운 가짜 커피가 좋다. 모니터를 켜고 부재 중 메시지를 메모하며 향부터 삼키고 보는 따뜻한 모닝 커피가 좋다. 카페인이 사르륵 흡수되며 시든 꽃에 물을 주는 것처럼 살아나는 느낌이 드는 것도 좋다. 가끔 편의점에서 2+1로 사서 피크닉을 갈 때 챙겨가는 달달한 커피도 달달해서 좋다. 그 흙내나는 자판기 블랙 커피가 힘들었던 시간을 견뎌내도록 나를 도닥여주는 것도 지나고 나서 보니 참 감사해서 좋았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커피 한 잔을 내려놓고 발행 버튼을 기다리고 있다. 커피를 기다리고 있는 지금도 참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