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와 함께라면, 무엇이라도 기꺼이
7박8일의 제주 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왔다. 일주일만에 햇볕이 쨍쨍한 제주였는데, 서울은 비가 퍼부어 비행기가 1시간이나 연착했고, 결국 하루종일 걸려 집에 온 느낌이었다. 제주 여행갈 때 윤이랑 같이 아침으로 챙겨먹으려고 요거트씨앗과 거기 토핑할 견과류, 곁들일 각종 차를 싸들고 갔는데, 씨앗만 남기고 모두 클리어했다. 요거트씨앗이 과발효하지 않도록 하루에 한번씩 우유 붓기를 잊지 않았고, 편의점 하나 없던 종달리에서 굳이 우유를 사기 위해 편의점을 찾아 걷기도 했다. 짐 부치는 것을 귀찮아하는 내가 이번엔 반려요거트와 동반하느라 기내용 작은 가방을 부치기도 했다.
요거트 씨앗은 김이 동료교사에게서 얻은 것이었다. 어렸을 적엔 엄마가 만든 홈메이드 요거트를 먹었던 적이 있고, 호치민에서도 누군가 나누어준 요거트 씨앗으로 한동안 잘 만들어 먹었는데, 귀국 후에는 처음이었다. '요거트 지옥'이라는 김의 표현대로, 저녁엔 완성된 요거트를 떠서 냉장실에 넣고, 조금 남은 씨앗에 다시 우유를 부어 밤새 발효시키기를 게을리하면 과발효되거나 유청이 분리되어버려 쓸 수 없게 되는 위기가 온다. 끊임없는 관심, 그것이 나의 요거트를 지키는 길이다. 가히 '반려요거트'라 부를 만하다.
여행을 떠나기 전에 혹시나 하는 맘에 씨앗을 두개로 나누어 한녀석은 싱크대 위에 두고 갔다. 냉장고에 들어가지 않는 것이 최대의 과업이라, 잘 버티라고 속삭인 후 그냥 두고 왔는데, 돌아와보니 역시나 과발효 상태. 우유를 조금 부어 일하게 해주고, 다음날 아침 열어보았더니 유청이 분리된 채 발효시키고 있었다. 버릴까 말까 하다가 아까워서, 체에 받쳐 냉장실에 하루 두었다. 몽글몽글한 상태라 면보가 아닌 체에도 잘 걸려졌다. 중간에 분리된 유청을 두번 정도 버렸더니 아침에 이렇게 꾸덕한 맛좋은 요거트가 만들어져 있었다. 아우, 기특한 녀석. 유산균, 너라는 녀석은.
그릭요거트로 뭘할까 행복한 고민을 하다가 전날 나폴레옹빵집에서 사다둔 100퍼센트 통밀깜빠뉴가 있어 얹어 먹었다. 5분컷 단호박 에그슬럿도 만들었고, 어제 도착한 아오리 사과도 함께. 오랜만에 아들과 아침을 먹었다.
로컬 스티치 회현의 '어쩌다농부'에 다녀온 후로, 나물의 향을 담은 음식이 계속 먹고 싶은데(그집 나물 파스타가 너무 맛있었다) 네이버스토어를 보니, 간단히 나물밥을 해먹을 수 있는 세트가 있었다. 참 요즘엔 없는 게 없어. 막상 받고 보니, 밥할 때 위에 얹는 용도인듯. 온갖 잡곡을 섞어 미리 밥을 하고 냉동해두고 먹는 나로서는 애매하다.. 1인용 전자렌지 밥솥이 있길래 주문하기는 했는데, 뭐 굳이 이렇게까지?하고 회의하는 중이었다. 실리콘이나 특수플라스틱, 옹기로 만든 것보다야 나을테지만...
https://smartstore.naver.com/matoritrading/products/11043549916
다양한 주방소품들이 딱 용도에 맞게 나오는 시대이긴 하지만, 이미 30대때 다 소용없고, 기본으로 다양하게 베리에이션하는 게 최선이라는 것을 깨달았기에, 주문을 취소하고 뜨거운 물을 나물 한봉지가 적셔질만큼 붓고 30분 정도 두었다가 밥위에 얹어 밥 해동 하듯 3분을 돌렸다. 그랬더니 역시 성공해서, 맛간장을 조금 뿌려 맛있게 먹었다. 만족도 높은 식사였다.
하루 세끼는 정말 너무 과한 것인가. 여독을 핑계로 집에만 있으면서, 밥먹고 자전거 30분씩만 운동했더니 먹는 것에 비해 운동이 부족하다. 내일은 어디 좀 나다녀야지.
반려요거트 덕분에 내 장도 더 가벼워졌다. 고마워~ 앞으로도 잘 부탁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