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NTP의 Ne와 Ti
외부로 향하는 직관(Ne)은 언제나 내 삶의 원동력이다. 늘 호기심이 많고, 미래가 어떻게 될 것인지 예측하는 것을 즐긴다. 다양한 분야에 지적 호기심이 많아서 회계, 영어, 심리 분야 학사 학위가 있고, MBTI와 영어교육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는 아이가 4살이라 유아교육과에 재학 중이다. 1999년 대학에 입학한 이후로 지금까지 줄곧 나는 학생 신분이다. 나이가 들고 아이가 어려도 배우고 싶은 욕구는 무척 왕성하여 무엇으로 박사 학위를 또 할까 고민이 깊다.
내부로 향하는 사고(Ti)는 사춘기와 맞물려 구부러지지 못하고 부러졌다. 중학교 3학년 때는 학교를 1달 넘게 가지 않았고, 기말고사도 치르지 않았다. 결국엔 고등학교에 진학하지 못하고 가출을 했다. 부산역에서 노숙자 생활을 하면서 지냈는데, 갈등의 늪에 빠진 가족 안에 있는 것보단 구걸하며 거리에서 자유롭게 사는 게 마음이 편했다. 부산으로 관광 오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구걸하여 받은 돈으로 슈퍼에서 먹을 것을 사 먹고, 부산역 공중 화장실에서 씻고, 신문지 깔고 아파트 지하에서 잤다. 그러다가 돈을 벌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일자리를 찾아보니 중졸의 학력으로 17살의 나이에 할 수 있는 일들이 있었다. 새벽에는 오토바이를 타고 신문을 돌렸고, 주유소에서 10시간을 서서 주유원으로 일했으며 밤에는 노점상을 했다. 17살부터 21살까지 각종 아르바이트 다 하다가 깨달음이 왔다. 계속 이렇게 살면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평생 이렇게 비바람 맞으며 고된 삶을 살겠구나! 그래서 검정고시를 보고 대학에 갔다.
NT 기질인 나는 남들보다 늦게 대학에 갔지만 학구열이 높았기에 수석으로 졸업할 수 있었다. 늦게나마 공부에 맛을 들인 나는 직장 생활을 하면서도 새벽에는 영어학원, 퇴근 후에는 일본어 학원을 다녔다. 그렇게 2년을 지내다 보니 이렇게 학원비 내고 공부할 바에는 차라리 학교에 가서 학위를 받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영문학과로 편입학한 것을 계기로 쉬지 않고 석사와 박사 과정을 이어 나갔다.
ENTP에게 제 때 배우지 못했다는 것은 아픔을 넘어 한이 된다. 33살에 결혼했지만 40살이 넘도록 나와 가족들에게 주변 사람들이 가장 자주 물었던 질문은 “언제 애를 가질 거야?”가 아니라 “언제 박사 졸업하니?”였다. 지도 교수님은 7년 동안이나 박사 논문을 쓰고 있는 나를 걱정하면서 “나 때문에 애 못 낳았다는 소리 듣기 싫으니 빨리 졸업하고 애를 갖아야지”라며 나보다도 더 졸업을 재촉하셨다. 사람들이 “애는 어떻게 할 거야?”라고 물으면 나는 항상 “전 애보다 박사 학위가 더 중요해요. 박사가 안 되면 애도 없어요!”라고 단호하게 대답하곤 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7년이나 연구해서 겨우 박사학위 논문을 완성하고 제본하여 심사위원 교수님들께 보내드리고 심사를 앞두고 있는데 심사위원장님께서 논문 주제를 바꿔서 다시 쓰라고 하셨다. 내가 쓴 논문으로는 도저히 학위를 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론적 배경부터 시작해서 실험도 다시 하고 7개월 만에 논문을 완성하여 졸업했다. 이젠 박사 논문을 세 번째 쓰게 된다면 3개월이면 쓸 것 같다.
2017년 MBTI와 영어교육을 주제로 박사 학위를 받고 나서야 오랫동안 마음 깊이 자리 잡았던 학력에 대한 콤플렉스가 비로소 해소됨을 느꼈다. NT의 이상적이고 높은 기준에서는 박사 학위를 받아야만 검정고시 출신인 나의 학력 콤플렉스가 해소된다고 여겼던 것 같다.
2018년에 임신해서 2019년 아이를 낳고 나니 너무 다른 세상이 펼쳐졌다. 처음에는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일을 몸소 경험하니 호기심이 가득하여 신기하고 즐거웠다. 심지어 제왕절개 수술도 수술 후의 아픔보다는 내가 몰랐던 것을 경험하여 알게 된 기쁨이 더 컸다. 생명이 탄생하는 것도 신기하고 작은 아기를 바라보는 모든 것이 새롭고 놀라웠다.
나는 출산 후에도 출산 전처럼 변함없이 왕성하게 활동할 수 있다고 믿었다. 직관이 주기능인 나는 늘 가능성에 가장 큰 가치를 두기 때문에 무엇이든 내가 마음만 먹으면 다 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출산 후 애를 보면서도 심리상담학과를 다녀서 2021년 3월에 총장상까지 받으며 졸업했다.
도전을 워낙 좋아해서 애 돌 때는 한국연구재단에 연구 과제를 신청했는데 선정되어 연구비를 받았고, 작년부터는 명리심리분석사와 도형심리분석사 민간 자격증을 직업능력개발원에 등록하여 강의하고 있고, 올해도 공동 저자로 책 두 권을 출판했고 그중 내가 대표저자로 쓴 한 권은 네이버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다 할 수 있다’고 믿었던 나는 육아로 인해 번아웃의 절정으로 치달았다. 과도하게 주기능 Ne를 사용하다 열등 기능에 빠져 버린 것이다. 출산 전에 했던 일을 그만두지 않고 그대로 하면서도, 도전으로 인해 오히려 일은 점점 더 늘어나기만 했다. 18개월까지 모유를 먹이며 어린이집도 안 보내고 애를 키우니 육아 우울증이 심각하게 찾아왔다. 출산과 육아와 일과 공부까지, 네 마리 토끼를 다 잡으려다 보니 일주일에 하루 정도 잠을 잘 수 있었다. 나를 돌보지 못하게 되자 마음의 병이 찾아왔다. 우울증 약을 먹었고, 20kg 넘게 살이 쪘으며, 도저히 애를 볼 수 없는 심각한 상태가 되어 4개월 동안 애를 시댁에 보내야만 했다. 지금까지 인생을 살면서 가장 큰 위기가 찾아온 것 같았다. 정신과 치료, 부부 상담, 개인 상담 등을 적극적으로 받았고 어떻게든 Ti의 도움을 받아 합리적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했다. 나는 공부와 일을 포기할 수 없었고, 애가 엄마 없이 할머니와 할아버지랑 사는 것은 안쓰러웠다. 결국은 시댁 근처로 이사했고 많은 문제들이 해결되었다.
지금은 살도 10kg 넘게 뺐고, 도보 10분 거리에 있는 시댁의 적극적인 도움으로 일과 육아를 병행하고 있다. 여전히 10여 가지 일을 하며 바쁘지만 밤에는 되도록 잠을 자려고 노력하고, 하루에 잠시라도 산책하며 나만의 시간을 갖고 있다. 아이가 클수록 나는 점점 더 자유롭고 나답게 살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도 있다.
중년기 이후의 삶은 외부보다는 내면으로 들어가 삶의 균형을 찾고 싶다. 3차 기능인 Fe는 30대가 되면서 가까운 사람들에게 나타나기 시작하더니 40대 중반이 된 지금은 사회생활 하면서도 자연스럽게 사용되고 있다. 20대의 나를 모르는 사람들은 내가 F인 줄 안다. Si 열등 기능은 건강염려증으로 이미 자리를 잡았다. 늘 유기농으로 먹고, 각종 영양제에 한약까지 내 몸을 챙기는 것이 과하다. 60대 이후의 삶에서는 외부 인격인 ENTP와 내부 인격인 ISFJ가 통합되어 중용의 미덕을 갖춘 자가 되고 싶다. 노인이 된 ‘나’를 ‘설렘’으로 기다리면서 이 글을 마친다.
출처 : 이 글은 제가 한국MBTI연구소 뉴스레터(2022년 5월 15일 발행)에 기고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