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내가 소중한 존재라는 느낌
육아 우울증의 원인
아이 낳고 나서 내가 왜 이리도 오랫동안 우울증을 앓게 되는 걸까... 많이 생각해왔다.
처음엔 힘든 것 알아주지 않고, 엄마로서 희생을 당연시하고, 오히려 힘든 티를 낸다고 비난받아서 그런 줄 알았다.
다음엔 나도 소중한 존재가 되고 싶은데 출산 이후 아이만 소중하고 나는 늘 애보고 반찬하고 일하며 희생만 해야 하는 존재로 전락해서 그런 줄 알았다.
오늘은 '소중한 존재'가 되지 못함에 대해 유독 우울해하는 것에는 어린 시절 상처가 연결되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부모님은 4번의 이혼 과정 속에서 70세가 넘은 지금까지도 부부간의 회복될 수 없는 깊은 갈등으로 인해 자식에게 갈 사랑이 남겨지지 못했다. 본인들 마음과 상황이 지옥이라서 엄마는 10년이 넘도록 할머니 손에서 자라고 있는 어린 나를 한 번도 찾아오지 않았다. '난 엄마에게 소중한 존재가 아닌가?' 이런 느낌을 받았던 것 같다. 단 한 번도 밖에서 힘들었던 일들을 집에서 말해본 적이 없었다. 어차피 난 관심 밖이라는 걸 어린 마음에도 느꼈을 것이다.
1년이 넘게 근무한 대안 학교에서 과묵하신 사회 선생님과 말을 섞은 적이 거의 없었는데, 애랑 자면 잠을 못 자서 졸음운전으로 벽에 부딪혀 차 문짝이 다 긁히고, 너무 졸려서 수업하기 힘들어서 커피를 찾았는데 안 보이고... 쉬는 시간에 내게 믹스 커피 한 봉지를 말없이 갖다 주신 사회선생님! 순간 너무 고마웠고 그 믹스 커피 한 봉지를 아직도 간직하고 있다. 나를 생각해 주는 작은 배려가 고마웠고, 그런 배려가 많이 그리웠던 것 같다.
아이의 탄생으로 시부모님, 신랑, 그리고 나는 타인을 배려할 마음의 여유가 부족해졌다. 모두 바쁜 와중에 육아를 분담하고 있기에 다 힘든 상황이다. 시어머니는 일하시면서 쉬는 날 못 쉬시고 애를 봐주시는 거고, 시아버지는 작년에 암수술을 하셔서 몸이 좋지 않으시고, 신랑은 육아 때문에 시댁 근처로 이사 와서 출퇴근 시간이 매일 왕복 5시간이라 새벽에 나가서 밤늦게 들어온다.
나도 밤새고 다음날 커피 마시며 일하느라 몸 상하고, 일의 실수가 많아지고 능률도 떨어지고... 예전 같으면 하고 싶고, 할 수 있는 일들을 아이로 인해 포기하는 일이 잦아졌다.
4년간 온 가족은 육아로 많이 지쳐있는 상태라 서로를 위로하고 배려하지 못했다.
다들 예민하고 힘든 상태이고... 이런 가족들 안에서 내가 위로가 되어주지는 못할망정 위로를 받는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밖에서 받는 따스한 배려가 '난 소중한 존재'라고 느껴지고 눈물이 나도록 고마웠다. 그만큼 어린 시절의 나는 얼마나 절실히 누군가에게 소중한 존재가 되고 싶었을까...
어린 시절의 내가 새삼 안쓰럽고 미안하다. 나도 나를 소중하게 대해주지 못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