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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천천히 흘러가게 하는 법

by 김혜정

시간은 누구에게나 동일한 것일까?


여기 열 살 아이가 있다. 놀이터에서 친구들과 소꿉장난을 하며 놀고 있다. 소녀 시절의 소피마르소를 닮은 아주 예쁜 여자아이다. 쌍꺼풀진 새까만 눈이 약간 처져서 순진해 보이고 고무신 코처럼 매끈하게 올라간 콧망울은 옆에서 보나 앞에서 보나 밑에서 보나 어느 각도로 보든지 간에 너무나 사랑스러워서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뽀뽀를 해주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한다. 보송보송 솜털 같은 하얀 피부는 본디 너무 곱디고와서 파리 새끼 한 마리라도 앉을라치면 녹아버린 아이스크림을 밟고 주르륵 미끄러지듯 땅으로 곤두박질이라도 치게 할 것만 같다. 그럼 입술은? 고 앵두 같은 입술은 지 어미의 허락을 받고 빨간 립스틱을 톡톡 두드리고 나온 것마냥 장미처럼 붉고 화사하다. 열 살이라고 보기엔 너무나 이쁘고 조숙해서 누구든 감탄해 마지않는 이 아이. 삐쩍 마르지도 않았고 적당히 통통해서 귀여운 아주 사랑스러운 여자아이다. 아이는 온갖 장비를 이용해 모래성을 7개나 쌓았다. 이 놀이가 끝나도 아이는 할 일이 수백 가지가 넘고 무엇무엇을 할지 생각만 해도 기분이 좋다. 에너자이저다.


그 옆에는 칠순의 할머니가 앉아 있다. 여자 아이의 할머니인 것 같다. 할머니는 곱게곱게 늙으시긴 했지만 어디로 보나 ‘난 할미’라고 써 있다. 머리는 반백이요, 은빛 물고기가 바다에서 춤을 추는 듯하다. 아이처럼 할머니도 하이얀 피부를 갖고 있지만 얼굴 오른쪽의 정 가운데 포인트와 팔뚝 여기저기, 그리고 손등에까지 번져 무늬처럼 도드라진 검버섯과 주름들은 지나온 세월의 흔적이다. 눈이 많이 처진 걸 보면 할머니도 젊었던 시절엔 소피마르소처럼 약간 눈이 처져서 사슴처럼 예뻤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피부에 탄력이 사라져 자꾸만 불독처럼 볼따구가 흘러내리는 것 같아 신경이 쓰이고 양치질을 너무 심하게 했는지 아니면 부드러운 미세모를 쓰지 않았는지 잇몸이 주저앉아 치과에 가야 한다. 할머니는 어떤 세월을 살았을까. 손주의 노는 모습을 노곤한 눈으로 지켜보는 할머니의 입가에는 손주가 먹다 남긴 과자 부스러기가 날 좀 보소하고 붙었다가 이내 흔들리며 떨어진다. 할머니에게 하루는 눈 몇 번 깜짝하면 사라지는 마법 같은 시간이다. 모처럼 놀러 나온 오늘은 시간이 길게 머물러 주면 좋겠는데.


아이의 시간과 할머니는 같은 시간에 살고 있다. 가끔씩 눈빛을 주고받으며 함박웃음을 짓고 “할머니, 이거 봐봐!!”하고 소리치면 할머니는 “오냐!! 내 새끼”하고 동시간대에 대화를 나눌 수 있으니까. 하지만 다시 한번 생각해 보면 시간은 다른 속도로 흘러간다.




생각을 생각하는 뇌과학자 김대식 교수의 말을 참고해 보겠다.

- <삶은 의미 있어야 하는가>를 주제로 한 [GMC 강연] 中 9분~29분 사이 / 총 48분


자연이 우리에게 준 숙제


본질적으로 ‘젊다’와 ‘늙었다’의 차이는 무엇일까? 이를 진화적인 관점에서 생각해 보면, 젊다는 것은 자연이 준 숙제를 아직 수행하지 않았다는 것이고 늙었다는 것은 자연이 준 숙제를 이미 수행했다는 말이다. 여기서 자연이 준 숙제란? 그것은 번식을 통하여 유전자를 다음 세대에 물려주는 것을 의미한다.


자연은 우리에게 숙제를 주었고 그 숙제를 할 젊은 세대를 위해 모든 좋은 방법과 좋은 메커니즘을 만들어 놓았다. 고로 자연은 아직 숙제를 하지 못한 젊은 세대에게만 관심을 준다. 반면 늙은 사람들은 높은 확률로 그들의 의무를 다했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결국 자연의 관심 대상이 아니게 된다.

젊은 사람들은 자연이 내준 숙제를 해야 하기 때문에 인생이 무겁고 괴로울 수밖에 없다. 번식을 하고 좋은 유전자를 다음 세대에게 전하기 위해 무진장 노력을 해야 하니까.


늙은 사람들은 자연의 관심에서 벗어나 어쩌면 무기력해지고 소외되고 버림받은 느낌을 받을지 모른다. 하지만 다시 해석해 보면 그것은 자연의 속박에서 벗어나 오히려 삶의 자유를 누릴 수 있는 시기에 도달했다고 볼 수 있다. 다시 말해 ‘내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될까’에 대해 마음대로 생각하고 마음대로 정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젊은 사람, 늙은 사람으로 이분화하는 것은 지나치게 단순하지만 여기서는 자연이 준 숙제를 해결했느냐의 여부로 판단하면 좋겠다. 그리고 이 글을 쓰며 생각하건대, 젊은 사람이란 자식을 독립된 개체(개인)로 분리시킬 때까지로 보는 것이 합당할 것 같다. 자녀를 출가시킨 이후에 비로소 100% 자유를 얻을 수 있을 테니까.



시간을 길게 사용하는 법


어렸을 때는 시간이 더 길게 느껴지고 나이가 먹었을 때는 더 짧게 느껴지는가? 그렇다. 뇌과학적으로 맞는 말이다.

연구 결과, 뇌 안에 있는 신경 세포들의 정보처리 속도가 어렸을 때 훨씬 더 빠르다는 것이 밝혀졌다. 정보처리 속도가 빠르기 때문에 나이 든 사람보다 세상을 더 자주 볼 수 있다. 이 말은 같은 장면을 보더라도 어린아이는 그것을 슬로모션으로 볼 수 있다는 뜻이다. (장면을 1초에 30번이 아닌 300번을 찍으면 슬로모션이 되는 것.) 어렸을 때는 기억에 들어가는 정보가 더 많기 때문에 세상이 슬로모션으로 보이고 나이가 먹으면 듬성듬성 샘플링되기 때문에 시간이 훨씬 빨리 지나간다고 보는 것이다.


이 글 초반에 지어놓은 이야기에서 여자 아이는 세부적인 장면들을 사진찍듯 머릿속에 저장할 테고 (물론 무수한 기억들은 시간의 흐름 속에 사라지겠지만) 할머니는 여자 아이보다 훨씬 적은 장면을 기억하게 될 것이다.


오래 살고 싶은가? 오래오래 살면서 많은 것들을 기억하고 싶은가?

물론 육체적인 건강을 유지해야겠지만 인지적으로도 오래 살고 싶으면 세상을 좀 더 자주 샘플링해야 한다. 인지적 건강을 말하는 이유는 우리 인간은 100% 치매에 걸리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건 학계의 정설이다. 우리는 치매를 피해 가고 싶어도 그럴 수 없다. 이미 치매를 앓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치매는 이미 20대부터 진행되고 있다. 우리의 뇌세포는 20대 중후반 경부터? 사멸하기 시작하니 이미 치매라 해도 그리 놀랄 일은 아니다.

아무튼 당신이 오래 살고 싶다면!! 방법은 다음의 두 가지!!

하나는 커피 속에 들어있는 카페인을 섭취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집중을 하는 것이다.

하지만 카페인의 효과는 단 5분밖에 지속이 안 되고 집중은 하루종일 할 수가 없다는 것이 맹점. 그렇다면 다른 방법은?

지금 이 순간만 보지 말고 10년, 20년 후의 나를 상상해 본 다음에 20년 후의 내가 지금의 나를 기억하는 것이다. 그러면 ‘현재의 나’가 나를 생각하는 것보다 ‘미래의 나’가 ‘현재의 나’를 생각할 때 더 애틋하고 소중해질 것이다. 왜냐. 우리는 ‘현재의 나’가 바로 나 자신이라고 여길 수밖에 없고 나는 ‘현재의 나’를 객관화하기 어렵지만 ‘미래의 나’는 이미 수많은 세월을 겪은 후인지라 ‘현재의 나’를 객관화할 수가 있고 과거의 나(‘현재의 나’)의 모습은 언제나 그리움과 동경의 대상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10년 혹은 20년 후의 내가 보는 관점에서 ‘현재의 나’에게 집중하는 시간을 늘리면 뇌는 지금의 순간을 어떻게 한다? 슬로모션으로 입력하는 것이다. 이게 곧 시간을 길게 만드는 비법이다. 슬로모션으로 ‘현재의 나’를 기억하는 것.

이와 관련하여 또 하나의 팁이 있다. 우리의 삶을 의미 있게 만드는 법!! 띠리링~

그건 영화나 드라마의 감독처럼 자기 스스로가 자기 인생의 감독이 되는 것이다. 나의 소중한 순간은 기억에 남도록 슬로모션으로 편집하고 괴로운 시간은 통편집을 해서 날려버리거나 압축해 버리는 것이다. 이것도 김대식 교수가 한 말이지만 정말 통쾌하고 신박한 아이디어다.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또 불가능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전편에 쓴 것처럼 나는 생각하는 대로 사는 사람이지, 사는 대로 생각하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확실친 않지만 이런 엇비슷한 생각을 나도 한 적이 있다!!! 후훗




시간을 늘 아까워하면서도 쓸데없이 허비하거나 송두리째 날려 버려서 속상한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시간이 많은 줄 알고 느긋하게 쓰다가도 불현듯 아!! 시간이 없어!! 아~ 이거 했어야 하는데~ 저거 했어야 하는데~ 아!! 책이라도 읽을 걸!! 아, 5분만 더 있었더라면!! 아~ 난 왜 이렇게 시간 관리를 못하지!! 하고 스스로를 꾸짖는 나. 하지만 가만히 앉아 필름을 미래로 돌려보면 그려진다. ‘현재의 나’를 언제나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는 20년 후 미래의 내 모습이. 아마 67세의 나는 늘 허둥대고 바삐 종종거리고 아들들 뒤치다꺼리하느라 힘들다 하면서도 자기 하고 싶은 거 다 하면서 살고 있는 47세의 나를, 미래를 위해서 진로를 설계하고 재정립해야 해야 하는데 산 넘어 산이라고 투정부리고 있는 47세의 나를 어미 강아지가 새끼 강아지 바라보는 듯한 시선으로 그렇게 바라보며 토닥여주고 있을 것 같다. 67세의 시선으로 47세의 나를 바라본다. 그래 애쓴다, 고생 많다 토닥여 주면서 그렇게 나는 현재의 시간을 기억하고 사랑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시간은 누구에게나 동일하게 주어진다. 똑같은 시간, 절대적인 시간 안에서 살아간다. 하지만 우리가 간과하는 건 상대적인 시간이다. 나는 뇌를 속여서 시간을 더 잘게 쪼갤 수 있고 더 길게 사용할 수 있다. 노화에 따른 치매 현상은 아직은 막을 수 없지만 기억을 조립하고 편집하고 저장하는 것은 내 노력 여하에 따라 얼마든지 가능하다. 그러려면 어린아이처럼 조금 더 부지런해지긴 해야 한다. 읽고 쓰고 저장하고 기록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이런 일련의 과정에 내가 의미를 부여하면 시간은 고무줄처럼 늘어날 수 있는 것이다. 치매가 올 것을 두려워하기보다는 현재의 시간을 더 귀히 여기고 아끼는 삶, 그 삶의 자세가 더 중요하지 않을까.


카페꼼마 여의도점, 너무 좋다!! 앞으로 자주 갈 예정^^
카페꼼마 합정점, 생각보다는 많이 협소하지만 집중은 잘 됨!!
정약용이 설계한 거중기
어린이날 처음 가본 수원화성♡
파티용 사이즈 피짜♡
작은 아들이 만들어 준 입체카드♡♡
스승의 날 받은 케이크와 지난 일요일에 방문한 잠실 야구장!!
최근 나의 소중한 순간들 촬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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