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2~3년 안에 창고형 커피 전문점이 많이 생겼다. 코로나로 인해 많은 자영업자들이 위기나 몰락을 겪는 동안에도 아이러니하게 이런 대형 카페는 승승장구했다. 갇혀 있던 일상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날 수 있는 일탈의 공간이자 보고 싶었던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공간, 삶의 여유를 다시 회복할 수 있는 공간으로 그 역할을 톡톡히 해냈기 때문이다.
사람들의 답답한 마음이 뻥 뚫릴 수 있게 엄청나게 큰 규모로 건물을 올렸고 창문도 통창으로 해서 시야를 시원하게 했다. 아이들과 동반할 것을 고려해 마루형 좌식 테이블도 마련해 주고 어른들의 자리도 각양각색으로, 다양한 형태의 테이블과 소파 의자를 배치해 놓아 앉고 싶은 자리를 선택하는 기쁨도 선사해 주었다. 오밀조밀 수제 장식품이나 목공소에서 제작해 온 듯한 소품들, 대형 미술품과 조각들.. 전문가의 손길을 느낄 수 있는 근사하고 훌륭한 작품들을 구경하느라 발길이 느려졌다 빨라졌다 한다. 화장실마저도 ''와!!" 하고 감탄할 요소가 있을 정도로 카페는 이제 단순한 만남의 장소라기보다는 지친 영혼을 쉬게 하고 힐링하는 장소로 거듭나고 있다.
지난주에 지인들과 함께 찾아간 곳도 그중 하나다. 집에서 11분 거리에 이렇게 좋은 카페가 있었다니 우물 안 개구리가 따로 없다. 여럿이 가는 것도 좋지만 혼자 오는 것도 충분히 좋을 거라는 생각이 드는 곳이었다. 조만간 꼭 혼자 오리라 그 즉시 다짐했고 나는 지금 바로 그곳에서 이 글을 쓰고 있다.
모르는 팝송이 쾅쾅거리며 스피커를 타고 흘러나온다. 발을 까딱까딱하고 어깨춤으로 그루브를 타도 아무것도 신경 쓰이지 않을 것 같다. 행복한 오후다. 3층엔 대형 식물들이 사람들을 숨겨줄 정도로길게 늘어져 있고, 2층 여긴 웅장한 음악과 어우러지는 휘황찬란한 작품들과 오색빛깔 테이블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다. 창가 원목 테이블은 이렇게 가벼운 글을 쓰기에 딱 좋은 자리다. 미세먼지 때문에 창문은 조금 희뿌얘졌지만 햇볕이 따사로워서 창가 이 자리가 마음에 든다.
저쪽 멀리 대각선 자리에는 타이핑을 하는 청년 한 명이, 그 뒤로는 남녀 한 쌍이 옆으로 나란히 앉아 있다. 회사일을 진지하게 논의하고 있는 것 같은 두 명의 남자는 카페의 한가운데를 차지했다. 이렇게 200평도 넘을 것 같은 대지를 소수인원 여섯이 누리고 있다는 사실이 놀랍다. 7,000원짜리 바닐라 라떼를 한 잔 시켜 놓고 하루종일 있어도 누구 하나 눈치를 주지 않을 자유로운 공간이 있다는 게 행복하다. 지난번 마포에 있는 북카페 《채그로》에 갔을 때 느꼈던 것처럼.
김포에 있는 카페 '55 gallon'. 책읽고 글쓰기하기엔 2층이 좋다.
봄이 왔고 나들이가 시작됐다. 봄ㆍ여름ㆍ가을ㆍ겨울을 지나 다시 봄이 움트는 것은 자연이 선보이는 신비한 교향곡 같다. 따뜻한 햇볕에 샤워하고 싶어 가벼운 옷을 입고 밖으로 나간다. 그러면 나를 오라 하는 카페가 여기저기서 손짓한다.
이 글을 쓰다 보니, 내 인생의 카페에도 계절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
20대 나의 카페는 영락없는 봄이었다.
설레는 마음이 주체를 못 했던 곳. 난 대학을 가자마자 연애질을 적극적으로 시작했기 때문에 (고1 때도 4:4 미팅에서 만났던 남친이 있었지만) 그만큼 자주 갔던 곳이 카페였다. (아마 다른 이들도 그랬겠지만^^.)
공부도 하고 알바도 하고 술도 마시러 다니고 정신없이 바빴지만 20대에 연애를 빼면 앙버터 없는 앙버터빵이라고나 할까?온갖 감정들, 사랑과 질투와 번민과 우수와 분노와 집착과 걱정과 기다림과 그리움과 애증과 또 다른 사랑이 무질서하게 뒤섞였던 곳. 이성에 대한 사랑이 조팝꽃 터지듯 만개하고 열렬한 사랑에 행복했던 곳.그곳이 청춘이 녹아든 봄 같았던 카페.
30대 중반~40대 초반의 나의 카페는 그야말로 뜨거운 여름.
열렬한 사랑은 뜨겁다 못해 데일 것 같은 자식에 대한 사랑으로 전이되고, 긴 공백기를 거쳐 큰아들이 초등학교에 들어간 후에나 다시 찾은 카페는 아이 엄마들의 수다로 점철된 아수라장이었다. 걱정과 분노와 자랑과 비교와 시기와 질투가 난무하던 곳! 어린 자식들을 위한 걱정과 희망을 태운 배는 분노와 열등감이라는 암석에 좌초되고 소속감이 주는 편안함과 외부로 뻗은 인정욕구라는 방향키는 어느새 갈 곳을 잃고 허공에서 나뒹굴고 있었다. 뜨거운 태양 밑 망망대해 위에서 갈 곳 잃은 방향키를 부여잡고 난파 직전의 배를 수습하려는 선장의 모습. 이게 우리 엄마들의 모습이 아니었을까. 학창 시절 이후 오랜만에 느껴보는 동지애와 불붙는 열정, 자식에 대한 사랑은 여름철 태양의 온도와 똑 닮아 있었지만, 이제 뒤돌아 보면 그리움의 화석이 되어 있는 곳. 실패가 많아 힘도 많이 들었던 곳. 내 맘대로 되지 않았던 긴긴 날의 여름. 그래도 그 여름을 시원한 공기로 바꿔주었던 곳. 엄마들과 옹기종기 모여 앉았던 그 카페.
40대 후반의 나의 카페는 나를 만나는 가을.
카페를 내가 즐기리라고는 전혀 생각지 못했지만 사람의 생각이란 이다지도 가변성이 큰 것이던가!!
최근 한 계절도 채 지나지 않아서 나에게 카페는 신선한 공간이 되었다. 이렇게 다양한 카페가 있을 줄 몰랐던 까닭이다.
사람에게 고유의 인격과 개성이 있듯이, 카페에도 저마다의 독특한 분위기와 쓰임새가 있었다. 《채그로》의 6층과 8층엔 책 넘기는 소리와 키보드 소리 이외엔 아무런 소음조차 나지 않는 고요함이 있고 《채그로》 7층과 여기 《55 gallon》 1층, 3층엔 공간을 울리는 두런두런 말소리 소음이 떠다닌다. 그리고 여기 2층에선 말소리보다 음악이 5배 이상 크게 들린다. 다른 카페에서 은은하게 배경 음악으로 깔아주는 노랫소리와는 사뭇 다르다. 음악을 듣고 싶은 날은 여기로!! 커피값이 사치라고 생각했던 내가 공간의 특색을 하나하나 알아가고 그날에 취하고 싶은 사소한 행복을 카페에서 누릴 생각을 한다는 게 신기하다고나 할까. 집에서 가만히 앉아 폰으로 음악을 틀어놓고 책을 읽고 글을 쓰면 될 것을 굳이 밖으로 나가려고 하는 것은, 아마도 롤러코스터 같은 계절을 타고 싶어서인 듯.
다양한 공간에서 다양한 나를 만난다. 소음 없는 조용한 카페에선 학구적이고 진지한 나를, 시끌시끌한 카페에선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을 공감력 뛰어난 나를, 가슴을 쿵쿵 울려주는 노래를 들려주는 카페에선 장난스럽고 까불대는 나를 만날 수 있다. 오곡백과 무르익는 가을의 과일처럼 나도 여러 가지 맛이 난다. 달고 시고 쓰고 떫다. ㅋㅋ. 이제 중요한 건 숙성도와 수분을 더하는 일이다.
나의 미래 50대의 카페는 겨울이 될 것이다.
얼마 전 창작 동화 공모전이 있어서 글을 써냈다. 한 달 전에 스토리 구상은 했지만 예상대로 마감일 이틀 전부터 본격적으로 썼다. 임박해야 시동을 거는 성격상 기어이 마감일에 가까스로 마쳤다. 준비가 부족했기에 뭐 아무런 소득이 없어도 괜찮지만, 얻은 것도 없지는 않으니 바로 성취감이라는 작자다. 계획과 다르게 중편을 썼고 마침표가 무려 32,233자에 찍혔다. 내용은 그저 그렇더라도 이틀 만에 썼다는 게 어디냐. 그것도 3만 자를.
50대의 나의 카페는 그런 곳이 될 것이다. 아무런 성과가 보이지 않더라도 가끔씩 글을 쓰고 스스로 뿌듯해하는 곳. 끝없이 성찰하고 인생을 고찰하는 곳. 진정한 나를 만나 진지한 대화를 나눠보는 곳, 힐링하는 곳이 될 것이다. 혹시 가능하다면 글 쓰는 분들을 더러 만나기도 했으면 좋겠다. 그러면 내 영혼이 더 맑아질 것 같아서. 더 성숙해지고 싶어서.^^
겨울은 차갑고 춥지만 새로 움틀 싹에게 줄 자양분을 머금고 있는 계절이듯이, 나의 50대도 그렇게 깊어가는 계절이 되리라.
봄이 오고 꽃이 피고 있다. 많은 이들의 마음에도 봄을 맞을 꽃봉오리가 가득할 테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계절 봄에, 나는 카페를 더 많이 사랑할 것 같다. 비록 오래가지는 못할지라도 지금 이렇게 혼자 고독을 씹으며 행복해하는 시간을 사랑한다. 그리고 가끔씩은 좋은 이들과도 함께 카페에서 50대를 준비하는 시간을 보낼 것이다. 지금 40대 나의 카페는 황금처럼 빛나는 가을 들판이다. 바깥 풍경처럼 끝도 없이 펼쳐진 지평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