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혜정 Apr 17. 2024

8화


8화



정인은 시댁에서 50km 떨어진 하남에 있는 집에 가는 내내 마음이 불편했다. 언제까지 그래야 하는 거냐고, 어머니가 너무 심하신 거 아니냐고 남편 동욱에게 따져 물으면 동욱은 아무 말이 없었다.



"자기야, 이게 문제인 거라고 생각해, 문제가 아닌 거라고 생각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건지 궁금해서 다그쳐 물으면

"글쎄, 모르겠다." 했다.



번번이 동욱은 모르쇠로 일관했다. 일관성 있는 사람이라는 건 애시당초 알고 있었지만, 시댁 문제에 대해서도 이렇게 일관성 있게 함구할 줄이야 정인은 미처 몰랐다.



"자기야, 이건 어머니 얘기잖아. 어머니가 왜 그러시는지, 어떤 생각 때문에 그러시는지, 그런 걸 좀 설명해 주면 내가 어머니 생각이나 흘러가는 상황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 거 아니야. 좀 솔직하게 말해 봐. 내가 답답해서 그래." 라고 해도 떨어지는 대답은 없었다. 아무 말이 없으니 정인은 점점 화가 났다.



"아니, 내가 지금 벽에다 대고 얘기해? 무슨 말을 하면 대답을 해야지, 어쩜 그렇게 아무 말도 안 해! 지금 어머니 편 드는 거야? 내가 어머니 욕 하려고 그러는 게 아니잖아. 난 어머니가 왜 그렇게 사위를 신경쓰는지도 알아야겠고, 나는 어떻게 대처해 나가야 하는지도 생각해 봐야 한다구. 불편한 걸 그냥 덮어두고 있으면 곪아터지는 거야. 그래두 곪아터지기 전에 해결해 보려고 하는 거 아냐. 어? 내 말이 무슨 뜻인지 알아? 알아듣는 거야, 못 알아듣는 거야?"



정인은 열불이 났다. 그러나 동욱은 진짜 알아듣는 건지 못 알아듣는 건지 대꾸가 없었다. 그냥 진짜 모르겠다고만 했다. 정인은 동욱이 어떻게 자기 엄마 생각을 그렇게도 모를 수가 있는지 이해가 안 됐다. 누나는 오래 전에 결혼해서 아들 딸이 벌써 초등학생이고 그러면 장모와 사위의 불편하고 오묘한 관계를 지켜 본 것만 해도 10년이 넘는데, 그 상황을 잘 모르겠다고? 그러면 누구랑 얘기해야 되는 건데? 누구랑 타협을 하고 누구한테 조언을 구해야 하는 거냐고! 답답한 문제가 있으면 해결될 때까지 골머리를 쓰는 정인에게는 이것이 최대의 난제였다. 곤두 서있는 정인의 머리칼은 집에 도착해서 침대에 누울 때까지도 쭈뼛거릴 뿐이었으니.



정인이 할 수 있는 건 한 가지였다. 주어진 상황에서 돌파구를 찾는 것. 스스로 숨쉴 공간을 찾는 거였다. 그래서 그 다다음 해엔 점심 때 친정에 갔다가 저녁에 맞춰서 돌아왔고 그 다다다다다음 해에는 점심에 아예 친정으로 가버렸다. 그리고 정인의 형님도 그렇게 정인을 따라 자기 친정으로 가버렸다. 동욱은 정인이 결정하는 대로 그저 따를 뿐이었고, 어머니가 만류하면 정인은 "저도 친정에 가야죠." 했다. 그러다 보니 동욱은 명절에만 보는 누나 얼굴을 잠깐이라도 볼 수 있는 기회를 박탈당했고, 마음은 허탈했으나 어떤 요구도 부탁도 할 수 없었다. 대쪽같은 정인의 결정을 되돌릴 만큼의 논리와 언변이 부족했기도 했지만, 중요한 건 자기가 생각해도 요로 보나 저리로 보나 합리적인 상황은 아니라는 거였다.



그러다 이런 일이 있었다. 그 다다음 해 일어난 어머니의 '폭탄 선언'. 어머니가 직접 선언한 것이 아니라 정인의 입으로 선언된 거였고, 결과가 폭탄이었다는 뜻이다. 다른 집에서도 다들 그러는지 모르겠지만, 정인의 시댁에서는 늘 명절만 되면 "어머니, 이번에는 어떻게 할까요~?"하고 며느리가 묻는 관례가 있었다. 정인도 처음에는 형님이 시켜서 어머니께 전화를 걸어 그렇게 여쭈었지만, 10년이 넘어가는데도 때마다 같은 질문을 한다는 건 납득이 가지 않았다. 게다 통화 내용도 그닥 신통치 않았으니, 어머니는 "뭐 할 그 있냐~ 나물이랑 부침개랑 쫌씩 하는 그지." 하다가 점점 해가 거듭될수록 찬거리를 사오지도 않으셨고 "이제는 아무것도 하기가 싫으네."하셨다. 그런 대책 없는 통화가 반복되니 정인은 또로록 의문이 차올랐다.



"아니, 어머니는 명절에 아무것도 안 하시겠다고 하고 준비도 안 하시면 어쩌자는 거지? 어머니한테 솔직하게 말씀해 보시라고 할까?" 정인은 동욱에게 재차 물었지만 동욱은 입이 아주 붙어 버렸다. 답답한 남편 같으니라구. 어머니가 그러니 아들도 그런 거지, 어찌 그리 대책들이 없이 나 몰라라 해.



정인은 며칠을 고민하다 어머니께 전화를 걸었다.



"어머니, 최근 들어서 명절 준비 어떻게 할까요 하고 여쭤보면 어머니 아무 말씀 안 하시고 귀찮다고만 하시잖아요. 그럼 아예 안 하고 싶으신 거예요, 아니면 다른 방법을 찾고 싶으신 거예요?"

"다른 방법?뭐~?"

"네, 다른 방법이요. 방법이라는 건 딱 한 가지만 있는 게 아니라 여러가지가 있는 거잖아요."

"글씨.. 근디 무신 방법이 있으까?"

"방법이야 여러가지가 있는 거지요. 근데 어머니, 방법을 얘기하기 전에 어머니 마음을 아는 게 더 중요해요."

".................."

"어머니는 명절에 식구들이 모두 모이는 게 불편하세요?"

"아~니, 무어시 불편해? 불편한 거시 아니라 그냥 힘등께. 나이가 먹구 하니께 힘들어, 시방."

"아~ 어머니, 힘드세요? 모이는 건 괜찮은데 뭐 준비하는 게 힘드신 거예요? 그럼 이제 모든 음식을 저랑 형님이랑 나누어서 해가면 어떨까요?"

"잉. 그것두 그른디, 이자 집이 쪼브니께 쪼븐 집이서 복닥복닥거리능 게 쪼매 그려. 이자 아그들두 크구 했는디 복닥복닥거리니께. 몸두 심들구."

"네~ 어머니, 그러셔요~?어머니, 제가 혼자서 생각을 좀 해봤거든요? 어머니 집이 좁아서 힘드시구 음식 준비도 힘드시고 하니까 그럼 이제 형님이랑 저희 집에서 번갈아가면서 명절을 쇠면 어떨까요?"

"잉? 느그 집이랑 느그 형님네랑 돌아가믄서?"

"네, 저는 그것도 방법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어머니는 표현 안 하다고 생각하시겠지만, 명절 때마다 불편해 하시는 게 저는 느껴져요. 어머니가 진짜 불편하다고 말씀하시면 제가 형님한테 잘 말해 볼게요."

"그랴. 그라믄 그르케 해 볼텨?"

"네, 어머니, 그렇게 해 볼 수는 있어요. 근데 어머니께서 먼저 말씀을 해 주셔야지 할 수 있어요. 제가 제 맘대로 바꿀 수는 없는 거잖아요. 어머니? 그니까 어머니께서 불편하다고 말씀을 해 주셔야 돼요."

"근디, 느그 형님이 옳그니 할까? 싫다 그라믄 어뜩햐."

"아유, 아직 말해 본 게 아니니까 걱정부터 하지 마시고, 일단 제가 잘 말해 볼게요. 만약에 형님이 안 하신다고 하면 제가 전적으로 맡아서 할 테니까요. 어차피 준비는 형님이랑 저랑 같이 할 건데 형님도 첫째로서의 책임감이 강한 사람이니까 저보고 혼자 하라고 하지는 않을 거예요. 단, 어머니가 불편하시다고 말씀을 해 주셔야 시도해 볼 수 있는 거예요."

"그랴. 그라믄 한번 야기해 봐. 내가 쫌 심들고 불편햐."



그리하여 정인은 뚫어뻥의 맛을 알게 되었다. 어머니는 어머니집에서 명절을 준비하고 사위맞이를 혼자 해야 하는 상황이 싫은 거였다. 그걸 속으로 끙끙 앓고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했던 거였다. 정인은 어머니의 끓는 속을 일편 해소해 드린 것 같아 사이다 1톤을 마신 기분이었고 말할 수 없는 통쾌함을 느낄 수 있었다. 뿌듯했다. 속전속결 정인은 형님에게 전화를 걸어 자초지종을 설명했고, 그렇게 형님과 정인은 돌아가면서 명절을 보냈다. 정인은 그렇게 돌아가며 지내는 명절 중 한 번을 시간을 비워 누나네를 초대했고 누나 가족은 정인네는 한 번 왔지만 형님네는 들르지 않았다. 정인네가 그 사이 이사를 한 번 해서 집들이 차 한 번 방문한 것 고는 그 이후 누나네는 종전처럼 어머니댁으로 갔다.   



누나네의 (명절) 친정 나들이는 어머니의 내적 갈등을 1년 만에 물거품으로 만들어 버렸고, 어머니는 다시 앓기 시작했다. 여기서 사건이 두둥~!!



정인네 집에서 명절 준비를 하던 날이었다. 대부분의 음식은 형님의 주도 하에 척척 이루어졌고, 대화도 한창 물이 올랐다. 어머니 행차 전인 시간이라 형님과 정인은 이러쿵저러쿵 쿵짝쿵짝 할 말이 똑똑 맞아떨어졌다. 그런데 어라, 어머니 왜이렇게 안 오시지? 불현듯 궁금해진 정인은 어머니 안부를 물었다. 아주버님이 지금 과일을 사러 가셨고, 오는 길에 어머니를 모시고 오기로 했다고 했다. 아, 그럼 좀 있으면 오시겠네. 둘은 그렇게 알고 수다와 부침개를 맥주에다 부지런히 섞어 먹었다. 얼마 후, 아주버님이 도착하셨다. "어머니는?" 뒤따라 들어오셔야 할 어머니가 없었다. 아주버님은 겸연쩍어 하며 "안 오신대." 했다. 헐~ 안 오신다고? 두 며느리는 놀란 토끼 눈이 되어 그 자리에 선 채 몸이 굳었다. 형님이 말했다.

"아니, 오늘 안 오시면 언제 오신대? 내일 오신대?"

"아니, 내일도 안 오신대. 그냥 음식만 집에 갈 때 조금씩 싸서 갖구 와 달래."

아주버님은 다크써클을 더욱 짙게 드리우며 다시 한 번 겸연쩍어 하셨다.

"그건 말이 안 되지이~! 이게 무슨 그냥 먹으라고 하는 음식이야? 어머니는 무슨 말도 안 되는 말씀을 하셔~! 내가 전화할게."

형님은 순식간에 화가 많이 나 있었다.  

"어머니, 안 오신다고 하셨어요? 아니, 그건 아니죠. 지금 명절 준비 하는 거잖아요. 명절을 우리끼리만 보내요, 어머니? 어머니 없이 그렇게 우리들끼리만 보내는 게 그게 명절이 아니잖아요. 그럼요. 당연히 어머니가 오셔야죠."

술기운이 살짝 든 형님은 어머니를 몰아붙였고 아주버님은 다시 어머니를 모시러 갔다. 그 사이에 동욱이 퇴근을 했고 맨날 명절 전날에 일하느라 상황 파악이 느린데다 천성이 어리벙벙한 동욱은 이게 무슨 사태인지 미처 파악하지 못했다.



어머니를 모시러 간 사이, 형님은 병나발을 불기 시작했다. 얼굴이 벌개졌다. 정인의 집과 어머니집이 편도 30분 정도 거리였으므로 한 시간이 지나자 어머니가 김치를 들고 도착했다. 형님과 정인은 보고 싶지 않은 사람을 만난 듯, "오셨어요." 한 마디만 남기고 흩어졌다. 아이들도 나와서 쑥스럽게 인사만 하고 얼른 들어갔다. 어머니는 쇼파에 앉아 눈동자를 굴렸고 아주버님과 동욱이가 거실 바닥에 앉아 무겁고 텁텁해진 공기만 마시고 있었다. 돌아가는 상황을 모를 리 없는 정인은 그래도 싹싹하게 부침개와 과일을 테이블에 올렸고 형님은 정인의 안방에서 꼼짝하지 않았다. 아주버님은 안방에 들어가 형님에게 말했다. 할 얘기 있으면 지금 하라고, 벼르고 있는 형님을 재촉했다. 10분 후 형님이 목까지 벌개진 얼굴로 나와서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어머니, 그러시는 거 아니죠. 명절에는 가족들이 모이는 날이잖아요. 우리가 음식하는 것도 우리가 서로 얼굴 보고 같이 먹을려고 하는 거지, 그러지 않을 거면 음식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어요. 아무리 어머니가 힘들다고 하셔도 여기 오셔서 같이 있는 게 그렇게 힘든 건 아니잖아요. 그리고 우리가 무슨 고모부 드릴려고 음식하는 거예요? 그건 아니잖아요!"

"워매? 그게 뭔 말이여. 무신 고모부를 드린다그랴? 아~니, 기냥 음식 하다봉께 사우도 오고 하니 쬐끔 더 해서 먹으라고 주는 것이지, 뭣이 고모부를 드린다 어쩐댜 혀?"

"아니, 어머니 우리 항상 그래 왔잖아요. 고모부 드릴 건 따로 하고. 어머니 안 그러셨어요? 그리구, 지금 음식만 갖다 달라고 하시는 것도 다 고모부 드릴려고 그러시는 거잖아요. 아니에요?"

"아니! 아니! 아니여. 고모부 드릴 거는 따로 해 놨시야!!"



헉. 벽에 부딪힌 어머니의 목구멍에서 툭 불거져나온 저 말씀. 안 들으니만 못한 말씀. 며느리들이 준비하는 명절 음식은 갖다만 달라시더니만, 고모부 드릴 거는 따로 준비하셨다? 코가 막히고 귀가 막힐 노릇이었다. 정인도 어처구니가 없었지만, 형님은 더욱 더 흥분해서 목에 핏줄을 세웠다. 그리고 고성이 오갔다. 어머니도 지지 않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아주버님은 다들 그만 하라고 목청을 높였다. 잠시 흐르던 적막뚫고 정인이 나섰다. 오고 간 내용을 정리했고 며느리의 변을 조근조근하면서도 분명한 말투로 전했다.



어머니는 그럼 어떻게 하는 게 좋겠냐고 물으셨다. 일단 앞으로는 이런 사태는 일으키지 마시라고 당부했고, 며느리와 사위를 차별하지 말아달라고 읍소했다. 그리고 내일 아침에는 어머니댁으로 가서 아침을 같이 먹기로 했고, 그동안 어머니를 배려해서 형님과 정인의 집을 오가며 명절을 쇴던 일을 제자리로 돌리기로 했다. 이제 명절에는 아침만 어머니댁으로 가서 함께 보내되, 오후에는 각자 친정으로 가기로 했고, 음식은 두 며느리가 나눠서 해가지고 가로 결정했다. 어머니는 당신이 한 행동이 이렇게 일파만파 커질지는 예상치 못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을 도로 담을 수는 없었다.



그리고 코로나가 터졌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