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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혜정 May 22. 2024

10화


10화




정인의 내적 갈등은 혼자 깊어져 갔다. 시어머니와의 연결고리를 끊어도 될까, 그래도 남편이 내 옆에 있는 한은 어떻게 해서든 맞추면서 살아야 할까? 시어머니가 비합리적인 생각이나 편집증적인 행동을 할 때마다 정인의 신경은 곤두섰다.


가령 비합리적인 생각과 편집증적인 행동이란 이런 것이다.


시어머니의 90 넘으신 친정어머니를 남편의 외숙모가 모시고 계셨는데, 그러니까 시어머니의 올케가 모셨다는 말이다. 그런데 그 외숙모의 집에 아주 오랜만에 다녀오시더니, 올케를 비난하기 시작하는 거였다. 노인네를 혼자 두고 밖으로 나돈다느니, 밥도 제대로 된 밥을 안 차려주고 그지같이 막 그냥 두고 가서 노인네 혼자서 어떻게 드시라는 것인지 모르겠다느니, 집에서 모시고 있으면 그래도 정 있게 해 드리고 섬겨야지, 어떻게 남편을 목사로 둔 여편네가 시어머니를 그렇게 홀대할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정인은 어머니 말씀을 곧이듣고 어머나, 예전에 뵈었을 때 전혀 그래 보이지 않았는데, 그런 냉정한 면이 있으신가 했다. 하지만, 어머니의 말투를 잘 새겨들어 보면 좀 야릇한 면이 없지 않았고 살짝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도 있었다. 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사람은 외숙모만이 아니라 외숙부도 계신 건데, 목사님이신 외숙이 설마 그러실라고? 외숙모가 정말 그런 행동을 하신다면 외숙이 그대로 둘까 하고.


그리고 정인이, 외숙모가 잠시 외출했다가 들어오신 후에는 어떠셨냐고 물었을 때, 어머니는 외숙모 말투에 송곳이 아주 뾰족하게 솟아있었다고 했다. 그리고 그렇게 자기가 마음에 안 들면, 어머니 모시고 가서 살라고 바락바락 대들었다면서, 어머니는 압정처럼 외숙모짓누를 기세로 분노하고 있었다. 듣고 있던 정인은 물증도 심증도 확인할 바 없으므로 그냥 조용히 듣고만 있었지만, 어머니의 분노그 틈을 뚫고 총알처럼 비난을 쏘아댔다.


그래서 정인은 남편 동욱이 오기를 기다렸다가 어머니의 얘기를 전하고는 이게 무슨 상황 것 같냐고 물었다. 동욱은 당황해하면서 대답할 말을 찾지 못했고 어머니 말이 맞다고도, 외숙모의 항변이 합당하다고도 하지 못했다. 동욱도 물적, 심적 증거가 없어서였을까. 정인은 알 수 없는 미궁 속으로 혼자 빠져 들어갔다. 하지만 동욱이 자기 엄마를 보호하려고 그런지는 모르지만, 사람의 심리를 반언어 비언어적 표현 안에서 거의 꿰뚫어 볼 줄 아는 정인은 어머니의 생각은 비합리적인 사고에서 기인한다고 자체 판단을 내렸다. 왜냐면, 오래전부터 어머니는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지만 손아랫동생 이모와도 데면데면하면서 때때로 정인에게 이모 욕을 했으며, 어머니의 친정어머니를 딱 3개월 모시고 계시는 동안에도 친정어머니를 앞으로 뒤로 구박하고 소리 지르는 장면을 여러 번 목격했기 때문이다. 모녀의 사이가 종잇장처럼 얇았고, 좀 더 붙어있다가는 가루처럼 부스러질 것만 같이 위태로워 보였었다. 동욱의 외할머니가 불쌍해 보일 지경이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그 외할머니도 평범하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무엇은 하지 말어, 그러믄 안 돼야~ 하는 식으로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렸고, 제대로 된 대화는 단 한 번도 해보지 못했다. 동욱은 외할머니가 원래 이상한 분이시니, 신경을 아예 쓰지 말라 했고, 시댁의 모든 사람들이 외할머니를 본체만체했다. 어쩜 자기 외할머닌데도 저렇게 정이 없을까 싶을 정도로 남편 동욱은 인사조차 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네네~ 라고 대답이나 제대로 했을까. 정인은 늙고 연로하시고 치아도 거의 다 빠져서 물렁거리는 음식을 작게 썰어 우물우물거리시는 외할머니가 측은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수상쩍었다. 뭔가 이단에 빠진 분 같기도 했고, 어쩌면 실제로 이단에 빠지셨을지도 몰랐다. 그러니까 '모전녀전'이라는 관점으로만 본다 해도(모든 경우에 그런 건 절대 아니지만, 두 분은 뭔가 수상쩍은 면에서 닮은 도형처럼 보였으므로), 그리고 평소 행동을 보더라도 어머니의 사고방식은 자기 편향을 갖고 있었고 그렇게 자기중심적인 관점에서만 세상을 바라보았으므로 합리적이거나 타인을 배려하는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그러니 외숙모를 못된 며느리로 폄하하고 비하해서 싸우고 온 건 어머니의 잘못된 생각이 빚어낸 결과가 아니었을까.


자그마치 이게 하나의 에피소드다. 여러 가지를 대려면 입이 열 개쯤은 있어야 한다.


시어머니의 이런 행동이 편집증적인 것이라 볼 수 있는 이유는 여러 가지지만 그중 한 가지만 댄다면 먼저, 타인에 대한 불신과 의심이 극도로 높다는 걸 근거로 들 수 있다. 시어머니는 가족들의 말을 잘 믿지 않았다. 가족은 자식들을 말한다. 자식들이 어머니 말에 반응하면 곧이곧대로 듣지 않았다. 이건 비밀이지만, 어머니는 정인에게 정인의 형님이 왜 그런 말을 하고 그런 행동을 하는 거냐고, 모두가 헤어져 돌아간 후에 정인에게 전화를 걸어 물었다. 확인도장을 받고 싶었던 것인데, 그러면서도 반은 믿고 또 받은 믿지 않았다.


게다 의사의 말도 믿지 못했는데, 몸의 어딘가가 아프다 싶으면 같은 증상을 가지고 병원 세 곳을 돌았다. 의사 한 명의 말만 듣고는 수용하지 못하겠다는 거였다. 세 사람의 진료 결과가 완전히 동일해야만 안심을 하려 했고, 그 결과가 동일하지 않은 경우에는 집에서 본인의 방식대로 민간요법에도 해당되지 않는 이상한 행동을 반복했다. 이건 한 번이 아니라 십수 번 본 것인데, 처음에 정인은 너무 깜짝 놀랐다. 어머니 댁을 방문했는데 어머니 목에 시퍼렇고 시뻘건 멍이 500원짜리 동전 만하게 들어있는 것이었다.


"어머! 어머니~ 목이 왜 그러세요~!!??"


두 눈을 똥그랗게 뜨고 물으면 어머니는


"잉~ 내가 손으루다가 잡아 뜯었어야. 여그가 몬가 불편한 거시 몬가가 있는 거 가트서."


"그냥 손으로요?"


"아니, 손으루두 잡아 뜯었다가 안 돼야서 바늘로다가 콕콕 찍었어야."


"네? 바늘로요?"


놀란 토끼 눈으로 정인은 기겁했다.


"아니, 불편하신 곳이 있으시면 병원을 가셔야죠. 왜 집에서 그렇게 몸을 아프게 하세요?" 하고 말하면,


"아녀. 이런 거슨 집에서 해도 돼야. 잡아 뜯어야 돼."


이런 상황을 무어라고 해야 할지, 어머니가 피멍을 정인과 동욱이 보는 앞에서도 자꾸 툭툭 쳤다. 정인은 자기 목이 아닌데도 자기 목에서 상처가 배어 나오는 처럼 물컹거렸. 옆에 있던 동욱은 아무 말도 없었다. 아니, 자기 엄마가 그런 행동을 하고 시퍼렇게 멍이 들어 있는데도 신경을 안 쓰는 거야, 뭐야. 정인은 남편 동욱도 이상하게 보였다. 정인은 집에 오면서 동욱에게 재차 물었다. 왜 어머니의 행동에 대해서는 함구를 하는 거냐고. 아들들이 무어라 해야 어머니가 좀이라도 이상한 행동을 고치시지 않겠냐고 해도 동욱은 아무리 말해봤자 들을 분이 아니라고만 했다. 그런 비겁한 변명 따윈 듣고 싶지 않다고, 진짜 동욱도 아주버님도 고모도 다 왜 어머니와 제대로 된 소통을 하지 않느냐고 따지고 싶었다. 정인의 마음은 담뱃재처럼 안으로 안으로 타들어만 갔다.


그러다 사달이 났다. 아니, 사달이 아니라, 초상이 났다. 시어머니의 친정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부고가 들려왔다. 동욱은 자기 형과 통화를 했고, 정인은 장례식장이 어디냐고 물었다. 몇 마디 못 나눠 본 외할머니지만, 그래도 가시는 길은 기도로 배웅해 드려야지 했다. 그런데 어머니가 말리고 나섰다. 아주버님만 대표로 가고 아무도 가지 말라는 것이었다.


?????????????????   네  ??????????????????


외할머니가 돌아가셨는데 가지 말라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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