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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혜정 May 01. 2024

9화


9화



코로나는 많은 것을 바꾸어 놓았다. 개인의 일상과 삶에 대한 태도를 바꾸었고, 자신의 인생과 세상에 대한 시선을 바꾸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있다면......


그것은 바로 인간관계.


코로나가 퍼질수록 사람들은 집에 처박혀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재택근무가 늘고 야외 활동이 현저히 줄어들었으며 모임이나 집합은 강제적으로 제한되었다. 보이지 않는 투명한 벽이 사회 안에 설치되었고 공동체로 얽혀 있던 사슬이 남몰래 끊어지거나 벽에 부딪혀 튕겨나갔다. 어느 가정에서나 가장 가까운 사람인 가족들이 서로를 의심하고 경계하는 눈초리를 목격하게 했으며, 그러면서 상처를 받은 사람이 또 다른 사람에게 고스란히 그 상처를 되돌려주는 일들을 자행케 했다.


점차 확산되어 가고 있던 개인주의, 이기주의가 때 아닌 철벽을 만나 자기를 방어하는 환경으로 더 공고해지면서 자발적인 고립 혹은 자발적인 고독을 택하는 사람들도 늘게 되었다. 그러한 시대의 흐름을 타고 많은 인문학 도서가 시장에 눈에 띄게 많아지게 된 것은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정인도 그런 시대의 흐름을 타던 군중들 중 한 사람이었다. 코로나는 많은 것을 역행하게 했지만 그 이면에는 순행적인 기능도 많다는 것도 깨닫게 했다.


인간관계.


정인은 어려서부터 인간관계에 대한 집착이 강한 편이었다. 외로움을 쉽게 느꼈고 그 외로움을 타인에게서 충족하려 했으며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원만한 인간관계'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본인이 약간의 손해를 보더라도 타인의 마음에 만족감을 주는 일이라면 기꺼이 양보했고 타인의 의견에 손을 들어주었다. 바깥에서 힘들었던 인간관계를 집에 와서 곱씹어 생각하면서 왜 자신이 이런 대우를 받아야 하는지, 왜 그 순간에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는지를 생각하며 가슴을 쥐어뜯는 일이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런데 디서 굴러들어온 것인지, 고맙게도 코로나 정인에게 그것로부터 해방될 수 있는 자유를 허락해 준 것이다. 아무런 핑계나 이유를 대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불편한 사람들을 만날 수 없도록 해 주었고, 대신 그 시간에 집에서 가만히 쉴 수 있는 여유까지도 내주었다. 정인은 마음이 편안해짐을 느꼈다. 불편했던 사람들을 만나지 않을 수 있는 이 자유, 오직 코로나 기간에만이라도 이 자유 그에게 얼마나 큰 변화를 가져왔는지! 코로나를 만나고 나서야 정인은 비로소 깨달았다. 잡다하고 쓰잘데기 없는 많은 잡념 지푸라기들의 대부분이 불편한 인간관계에서 비롯된 것이었다는 것을. 그리고 그동안 인간관계에 목을 매었던 이유가 인정욕구에 대한 자신의 지나친 기대 때문이었다는 것을. (사실 인정욕구를 가진 사람이 '원만한 인간관계'를 충족한다는 건 애초에 실현 불가능한 일라는 건 그보다 훨씬 후에 깨닫게 된다.) 그리고 타인과의 관계보다 더 중요한 건 자기 자신과의 관계라는 것을.


정인은 그렇게 수동적인 상황이 되고 나서야 자기를 돌아볼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생겼다. 왜 그전에는 그럴 여유도, 용기없었는지 참 알 수 없었다.


코로나가 터진 이후로 정인 주변엔 정인만큼이나 완전한 고립을 원하는 이가 한 명 더 있었다. 정인의 시어머니. 그는 아무도 집에 오지 못하게 했고 본인도 어디든 가지 않았다. 자식들한테 전화를 돌려서 코로나를 절대로 조심해야 한다고 못을 박고 징을 쳤으며 마스크를 두 겹 세 겹 끼고 다니라고 신신당부를 했다. 시어머니의 말에는 늘 '절대로'가 따라붙었다. '절대로' 코로나에 걸려서는 안 되고 어디를 나가게 되더라도 '절대로' 남과 가까이 붙어서는 안 된다고 했다. '절대로' 코로나 때문에 죽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했고, '절대로' 자신의 건강을 스스로가 지켜야 한다고 입이 터지도록 반복해서 말했다. 교회에 다니는 분이었지만 교회에 발길을 뚝 끊었고 하나님이 지켜 주실 거니까 걱정하지 말라는 말은 일언반구도 하지 않았다. 교회에 확진자가 생겼다는 소문은 삽시간에 어머니를 얼어붙게 했다.


정인은 어머니의 반쪽 짜리 신앙에 대해서는 이미 알고 있었으므로 교회에 나가지 않으시는 건 당연스레 이해했다. 교회보다 사람이 먼저고 자기 목숨을 지키는 것 당연히 중요한 거니까. 하지만 자꾸 전화로


"코로나가 시상에서 제일루 무서운 것씨여야. 코로나에 걸리면 안 돼야. 절대로 걸리면 안 돼야. 절대로. 절대로."


를 주제로 40분씩 이야기를 듣다 보면 얼굴의 근육은 마비 환자처럼 굳어져 있었다.


"아니 왜그케 사람들이 지랄하고 돌아댕기다가 코로나를 퍼트리구 그래싼데!"


어머니 입에서 안 쓰던 육두문자가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신혼 초에 썼던 일기장 속에 적혀 있는 어머니의 고상한 이미지는 온데간데 없었다. 고상은 이미 오래전 딴 세상 편이 돼 버린 듯, 이제는 본인의 신상에 대한 걱정과 세상에 대한 험담과 욕설을 내뱉으며 본인의 정체성을 바꾸어 가고 있었다. 정인은 어머니의 정체성이 180도로 바뀌어 가는 걸 곰곰이 생각하면, 그건 세상이 그렇게 만들었다기보다는 어머니는 본디 그런 분이었을 거라는 생각이 좀더 강해짐을 느끼곤 했다.


어머니는 명절이 되자 아무도 오지 못하게 했고 그다음 명절에도 그랬다. 대신 먹을 것만 싸다 달라고 했다. 손주들 보고 싶다는 말도 일절 없었고 누구에게 무슨 일이 있는가, 자식들의 형편이 어떤가는 궁금해하지 않았다. 하지만 아들들이 음식을 들고 어머니를 찾아가면 아들들을 먹이지 못해 옷을 잡아끌었고, 금세 일어나서 간다고 서운하다 서운하다 했다. 전에는 안 그랬는데 자식들이 본인을 들여다보지 않는다고 왜 자식들이 변한 거냐고, 이제는 자식도 대하기가 어렵다고 하소연했다. 정인은 그런 얘길 들으면서 코로나 때문에 얼굴 보기 어려워서 그런 게 아니겠냐고 위로 아닌 위로를 건넸지만 어머니는 정인의 얘기를 무처럼 뚝 자르고는 본인의 억울한 마음만을 털어내었다. 정인은 내색하지 못했던 말을 속으로 꿍꿍 담아두었다. 가족들과의 관계를 먼저 단절한 건 당신이 아니던가. 받을 것만 생각하고 줄 것은 생각하지 못하는 양반.


코로나 3년 차 추석 명절, 정인은 이번에는 음식을 싸갖고 가서 다같이 얼굴을 보는 건 어떨까요 하고 여쭈었다. 이제는 코로나에 익숙해지기도 했고, 다른 집들도 다들 명절에 모여서 밥을 먹으니까 말이다. 정인의 친정도 맨 처음 명절만 형제들이 시간을 달리 해서 갔을 뿐이지, 명절 뿐 아니라 생신이나 어버이날 같은 특별한 날엔 계속 만나고 있었다. 정인은 명절마다 반찬 몇 가지를 하고 과일 세 가지, 그리고 해물탕을 사다 드렸기 때문에 이번에도 해물탕을 사가지고 가겠다고 했다. 그랬더니 어머니는 "그럴래? 그라믄 해물탕 한나 사가지구 와라." 하셨다. 정인은 "네~ 그럴게요. 그럼 이번에는 같이 밥을 먹는 거지요?" 했다. 그랬더니 "밥묵고 갈라구?" 하시는 게 아닌가. "네? 그럼요?" 정인은 순간 이게 무슨 뜻일까 혼란스러웠다. "아니, 그냥 해물탕만 사갖구 오믄 안 될까? 사우가 온다닝께. 그 사우는 해물탕을 좋아혀는 그 같드라. 느그 집 근처에 있는 해물탕집 그 집이께 맛있으닝께. 한나 사가지구 와." "네?" 정인은 어머니의 말을 다 들었는데도 자꾸 질문 같은 대답이 나왔다. 통화를 끝내야 했다. "네. 어머니. 알겠어요."


정인은 온갖 정이 산산이 부서짐을 느끼고 있었다. 어머니한테 며느리는 자식도, 아니 며느리도 아닌 건가. 해물탕을 사들고 온다는 며느리는 막고 해물탕을 먹여야 하는 사위는 받아주어야 하는 것인가? 몇 년 전에 들고 일어났던 며느리들의 항변은 실효가 없음이 밝혀졌다. 어떤 항변도 소용이 없고 어머니의 생각이나 태도를 바꿀 만한 힘은 그 누구에게도 없었다. 정인은 어머니가 아프셔서 머리가 빠질 때에도 손수 머리를 감겨 주었던 장면과, 남편과 동행하지 않아도 어머니가 외로우실까 봐 손주들 데리고 찾아뵈었던 지난 시간들, 구구절절 쏟아지는 하소연과 남의 뒷담화까지도 모조리 들어주었던 시간들을 떠올리며 이제는 그렇게 노력하지는 말자고 주먹을 굳게 다졌다. 자발적 고립이라지만 이건 선택적 수용이 아닌가. 누구는 오라 하고 누구는 말라 하고? 불공평 중에 이렇게 심각한 불공평이 따로 없었다.


그러고 나서 정인은 어머니와의 인연을 끊겠다고 다짐하는 하나의 사건을 겪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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