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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심을 쏟아 넣은 봉준호 감독

<미키 17>

by 김혜정


맨 첫 장면에서 다시 그 첫 장면으로 되돌아오기까지의 서사에 한껏 몰입이 되어, 이 영화가 봉준호 감독의 영화라는 걸 깜박 잊었다. 이 영화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감독의 영화라는 걸 새까맣게 잊고 있었다. 아니 나는 이 영화가 SF 블록버스터 급 미국영화라는 착각에 순식간에 빠져 있었다. 아뿔싸 그런데.


마샬(마크 러팔로)과 일파 마샬(토니 콜렛)의 개콘 뺨치는 티키타카와 인사불성 애정행각, 좌중 앞에서 인형처럼 조종하는 일파 마샬에게 거침없이 가스라이팅 당하면서 자신의 얼굴이 카메라 앵글에 어떻게 잡히는지에만 정신이 팔려 있는 마샬을 보고 있노라니, 아 이런, 이게 과연 어느 나라의 누구인가 하는 자각에 찬물이 끼얹어지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때부터 이 영화는 단순한 블록버스터 급 영화가 아니고, 단순한 복제인간 이야기와 외계행성 외계생명체 이야기가 아니고, 블록 아니 블랙코미디 영화가 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나서부터 나는 의도치 않게 가슴이 뜨거워지기 시작했고, 봉준호 감독의 마음이 영화 속에 살아있음을 느끼기 시작했다. 급기야는 마샬의 폭력성에 항거하여 마마 크리퍼가 온몸의 촉수를 들어올려 괴성을 지르자 새끼 크리퍼들을 포함한 모든 크리퍼들이 똑같이 광분하는 장면은 대통령을 탄핵하기 위해 모인 우리 국민들의 촛불집회를 연상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 순간 나는 영화의 장면을 본다기보다는 봉준호 감독의 마음을 보고 있는 것 같았다. 뜨거운 눈물이 차올랐다. 오묘했다. 외국 배우들이 외국어로 하는 연기는 언제나 딴 나라 영화인 것 같았는데, <미키 17>은 외국 배우들이 외국어로 연기하는 토종 한국 영화였으니.


영화는 여러 가지 메시지를 다루고 있었지만, 나에게 다가온 핵심 메시지는 무능한 권력자에게 끝까지 대항하는 국민들의 살아있는 정신이 적폐를 물리치고야 만다는 거였다. 안타까운 것은 이 영화가 우리의 현실을 액면 그대로 시사한 것으로 보였다는 것. 무능한 사람으로 인해 무능한 정부가 되고 무능한 국방부가 되고 무능한 재판부가 되어가는 이 나라의 현실을 말이다.


내가 오늘 흘린 눈물이 단순한 감상의 눈물이 아니게 되길, 내가 오늘 흘린 눈물을 나 자신이 기억하게 되길 두 눈을 감고 다시금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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