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살이 조용히 땅을 구워내는 오후였다.
햇살은 뜨거운데 바람은 선선했다.
나의 긴 머리카락을 스쳐 지나가는 바람 냄새가 좋았다.
뜨거운 햇살과 선선한 바람이 기분을 간지럽히는 느낌도 좋았다.
나는 종이컵 커피를 홀짝거렸고
남편은 내 곁에서 나무처럼 나를 지키며 서 있었다.
나를 그늘처럼 지켜주는 내 남편의 냄새도 좋았다.
모든 것이 완벽한 것 같은 화창한 오후였다.
집에 가기가 아쉬워 남편을 향해 말했다.
예전에 딱 이런 날씨에 공원 그늘에 같이 누웠던 날이 참 좋았다고.
오늘도 공원 그늘이 날 부른다고.
남편은 말이 없었다.
저녁 약속이 있다는 건 나도 알고 있었지만
공원 그늘은 남편을 부르지 않았다.
나는 둘째 아들과 찜질방에 가기로 했다.
찜질방 가는 길에 있는 호수공원에도 들르고 싶었지만
둘째 아들도 공원에는 가고 싶어 하지 않았다. 지 아비와 꼭 닮았다.
찜질방에 엎드려 <나쁜 마음은 없다>라는 책을 읽었다.
갑자기 전화 진동벨이 울렸다. my husband라고 쓰여 있었다.
my husband는 격앙된 목소리로 말했다.
"오늘 우리 가족 피서야. 피서! 첫째 아들도 꼬셨어!"
저녁 약속이 취소되었고
사실은 자기도 찜질방에 가고 싶었다고 했다.
남편과 큰아들이 왔고 우리는 완전체가 되었다.
떡볶이와 돈까스와 라면과 냉면을 먹으면서
우린 옛날 아들들이 어렸을 적 얘기를 두런두런 나누며 폭소했다.
내가 바란 오늘 오후는 바람 부는 숲 속에 누워있는 거였다.
하늘을 바라보며 나뭇잎의 숨결을 느끼고
뜨겁고 선선한 바람을 폐 속 깊이 들이마시는 것.
하지만 나의 바람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 대신 든든한 버팀목처럼 둘째 아들은 나를 먼저 지켜줬고
우리 네 명 가족은 완전체로 여기에 함께였다.
글을 쓰러 온 구석 이 자리에도
둘째 아들이 먼저 찾아와 내 옆에 누웠고
남편과 큰아들이 졸레졸레 따라왔다.
한 자리를 갈라 두 자리로 나눠진 걸 남편은 싫어했다.
남편이 깎아온 복숭아도 나눠 먹어야 했고
살붙이고 누워 온정도 나눠야 했다.
나의 휴식처 이곳에서
시간이 바람처럼 지나갔다.
햇살보다 더 뜨거운 소금방에 누우니 내 모습이 보였다.
요즘 너무 많은 계획을 세웠던 나.
현재보다 너무 큰 미래를 그렸던 나.
그래서 소용돌이쳤던 불안에 압도당했던 나.
내가 이룰 수 있는 것보다 너무 큰 그림을 그릴 때
불안이 온다는 걸 이제는 확실히 알았다.
지금 여기에 만족해야 진정한 자유와 평안을 누릴 수 있다는 것도.
자상한 남편이 있고
착하고 듬직한 두 아들이 있고
이 우주에 생명으로 태어나 이렇게 아름다운 여행을 하고 있는 내가 얼마나 큰 축복을 받은 건지
그걸 다시금 깨달으려고 나는 오늘 간절했나 보다.
양 옆구리가 시리지 않으려고,
더 뜨겁게 더 달달하게 이 밤을 보내려고 그랬나 보다.
한 점의 휴식과 두 점의 평안과 세 점의 온기를 선물해 준,
그리고 불안이란 내 마음에서 비롯됨을 깨닫게 해 준
나의 찜질방에게 오늘도 고마움을 느낀다. 쌩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