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제형 엄마의 비애

공부가 다는 아니잖아

by 김혜정


“엄마, 근데 예전에 상담하러 갔을 때 엄마 그때 뭐했어? 난 50분 동안 아무것도 안 하고 그냥 가만~히 앉아만 있었는데. 어후 진짜 아무것도 안 했어. 그냥 멍하니 앞만 보고 있었다니깐~. 그때 엄만 누구랑 무슨 얘기 한 거야?”

아직은 완벽히 변성되지 않은 걸쭉한 목소리로 아들이 어린애같이 물었다.

“엄마? 그때 상담하고 있었지. 거기 선생님이랑~”

나이는 아들보다 서른 살이나 많은데 목소리는 또랑또랑 애기같은 내가 가볍게 툭툭 대답을 던졌다.

“그때 거긴 왜 간 거였어?”
“너 상담하러 갔지. 근데 넌 어리다고 딴 방에다
놓고는 어떤 쌤이 이것저것 질문하더라구. 애가 혼자 있어도 되겠냐고 걱정했더니 다른 선생님이 옆에 있을 거라고 괜찮을 거라고 하더라. 혼자 있는 거 힘들었어? 옆에 아무도 없었던가?"
“아니~ 누가 옆에 있긴 했는데 한 마디도 안 하고 둘 다 가만~~히 앉아만 있었다니까?선생님이 뭐라고 했는데?”
“너 마음이 힘들어서 그런 거였대. 화가 나는데 어떻게 할 줄을 모르니까 주먹으로 벽도 치고 침대도 뻥뻥 차고. 상담하고 나서 엄마가 생각한 게 너가 안아달라고 하기 전에 엄마가 먼저 안아줘야겠다는 거였어. 그때 엄마가 너무 일에 치여서 잘 못 안아줬거든. 근데 너 갑자기 그게 왜 생각났어?"
"몰라~ 그냥 생각났어."


우리 뇌는 어딘가에 콕 박혀 있던 기억을 가끔씩 꺼내더라. 주인 허락도 안 받고. 그런데 왜 아들의 뇌는 갑자기 그 기억을 끄집어 낸 것일까.




큰아들이 초2학년 때였다. 기초가 중요한 과목은 뭐니뭐니해도 수학이니 수학 문제집을 사서 조금씩 풀기로 하고 곱셈 나눗셈을 들어갔다. 어려워했다. 그래 처음엔 어려울 수 있지. 한두 페이지는 풀지만 살짝 꼬아놓은 문제 앞에선 정신이 놀아났다. 아이를 붙잡고 조금이라도 이해시키려 설명을 들입다 부어댔지만 나의 노력이 무색하게도 아이는 관심이 없었다. 알려고 하기보다 그냥 안 하는 걸 택했다. 어쩜 이렇게 일말의 호기심도 없을까 답답한 맘속에서는 부글부글 마그마가 끓어 올랐다.


그 후 어떤 날도 수학을 가르치던 중이었다. 공부에 임하는 아이의 태도가 불량했다. 금방 배운 것도 나 몰라라 하고 모른다치미를 뗐다. 기어코 가르치려는 나와, 빠져나가려고 점점 난동을 부리는 아이 사이에 신경전이 벌어졌다. 한두 번 있는 일이 아니었다. 더이상 봐 주면 공부 습관을 못 잡겠다 싶었다. 아이랑 실랑이 하느니 군기를 잡아야겠다고 생각했다. 후다닥 30cm 자를 가져와 아이한테 손바닥을 위로 향하되 판판히 펴지 않으면 손가락이 부러질 수도 있다고 협박하면서 왼손으로 아이의 두손 끝을 잡고 오른손으로는 자를 꼭 붙잡고는 거세게 후려쳤다. 30cm 자는 정직하게 두 동강이 나버렸고 아들은 안 아픈 척 바닥을 꾹꾹 누르다 참다못해 울음보를 터트렸다.


그 일은 꺼내고 싶지 않은 나쁜 기억이 되어 측두엽의 해마에 고스란히 남아있을 터였다. 공부 실력에 대해 인정을 받지 못한 아들은 집에서 스스로가 답답해질 때면 폭력을 휘둘렀다. 아직 연약하고 어린 아이에게는 아무런 반응 없는 침대와 벽만이 분풀이 대상이었지만 말이다. 는 아들이 분노조절 장애가 되거나 아니면 내가 더 심하게 억압하는 엄마가 될까 봐 조마조마했다. 그래서 아이의 마음을 알아보기 위해, 한 발짝도 들이고 싶지 않은 상담 센터에 내돈을 주고 찾아가게 된 것이다. 그땐 아이의 행동을 어떻게 해해야 하는지도 몰랐으니까.


그날 단 하루, 50분이었지만 상담을 하고 와서는 반성을 많이 했다. 아들에게 미안했다. 엄마의 관심을 받고 싶어서 시키는 대로 따라는 했지만 아이에게 수학은 너무 어려운 공부였다는 걸 나는 잘 몰랐다. 잘 하게 해 주려고 한 채찍질이 아이의 마음에 상처를 내게 할 줄 몰랐다. 의도치 않게 나는 아들의 자존감을 짓밟고 말았다.




1년 반이 흐른 뒤, 공부 실력과 자존감은 크게 상관이 없다는 초4학년 담임 선생님의 말을 첫 개인 면담 자리에서 들었을 때 나는 속으로 유레카를 외치고 싶었다. 니 겉으로 큰 목소리로 외쳤다.

"공부를 잘해야 자존감이 높은 게 아니라구요?그래도 어느 정도는 잘해야 학교 생활도 즐겁고 인정도 받는 기쁨이 있는 거 아닐까요?"

그 젊은 남자 선생님은 그렇지 않다고 했다. 본인은 공부는 문제가 없었지만 자존감이 낮아서 힘들었다고. 사실은 어렸을 때 왕따를 당했었다고 했다. 그래서 교편을 잡은 후에는 곧 학생들을 위 자존감 관련 모임에 나가서 연구하고 실습하는 활동을 하고 있다고. 작은 성공 경험을 많이 만들어주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학교 선생님한테 처음 듣는 자존감 수업이었다.


초4학년 때의 그 담임 선생님을 만난 후로 나는 진짜로 공부에 대한 욕심을 내려놓았다. 아들을 공부 실력이 아닌 자존감 높은 아이로 성장하도록 만드는 게 내 양육의 목표가 되었다. 아들도 그 선생님 덕분에 꿈같은 1년을 보냈다. 다만 선생님이 공부를 안 시키는 만큼 아이도 정말 안 했다. 선생님 - 학생 - 엄마가 삼위일체가 되었다. 공부에서 해방이 된 2년 간 아이는 무척 행복해 했고 나 역시도 아이와의 관계에서 자유로워졌다.


하지만 중요한 시기에 공부를 놓은 탓에 갑자기 들어선 사춘기는 지옥이 되었다. 내가 다시 공부를 강요했기 때문이다. 확히 말하면 6학년 때 만난 담임 선생님이 공부를 강요했기 때문이다. 새로 우리 학교에 부임하신 그 선생님은 정년퇴임을 앞둔 60대 남자 선생님이었는데 어찌나 유별나고 까다로운 성향을 가졌는지 학부모 총회에 참석한 우리반 학부모는 무려 '빵 명'이었다. 누구 한 명이라도 가겠지 타인에게 일말의 기대를 했건만 모두가 합심이라도 한 듯 아무도 가지 않았다. 그 이유가 뭐였을까. 그 선생님과 엮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반대표를 맡기 싫었기 때문이다. 회장ㆍ부회장 아이의 엄마 중 한 명이 반대표를 맡는 게 관례였는데 유별난 담임 선생님이 껄끄러워 부회장 엄마인 나도 설마 하면서 안 갔다. 총회 전 개인 상담은 그럭저럭 좋은 분위기에서 진행됐지만 선생님의 성향은 그 자리에서 파악이 완료된 탓이었다. 뒤끝 있는 그 선생님은 공개수업에 대거 참석한 학부모를 향해 자신이 얼마나 어이가 없고 황당했었는지에 대해 학부모들을 향한 원망을 쏟아놓았고 그 이후 우리 아들은 선생님의 단골 표적이 되어 너무 자주 화살에 맞고 돌아왔다. 아무 짓도 안 하고 가만히 있었는데 떠든다고 혼내는 일 다반사에 공부 실력이 그게 뭐냐고 비난하기 일쑤였다. 그토록 행복했던 초등 시절의 막은 음침한 골짜기에서 타들어가는 모닥불처럼 그렇게 스러져갔다. 아들이 매일 힘들어하는 걸 보며 나는 막 따지고 싶었지만 소통 안 되는 그런 선생님과 정면 대결했다가는 오히려 아들의 수렁이 더 깊어질까 두려워 아무 행동도 하지 못했다. 차라리 공부를 열심히 시켜서 당찬 아들로 만들어 주겠노라 절치부심으로 이를 갈았다.

그래서 다시 공부를 강요하게 되었고 그 공부 때문에 초6에 들이닥친 험한 토네이도에 우리는 휘청거리기 시작했다.

(사춘기에 대해선 할 말이 많다.)



의도가 좋다고 해서 결과도 모두 좋은 건 아니다


공부를 잘하지 못하는 게 흠이 될까 봐 어떻게든 끌어주려고 하는 엄마가 있다면 그건 좋은 방법이 아니라고 말해 주고 싶다. 공부 뿐 아니라 다른 어떤 것이라도.


엄마가 아이의 성장과 발전을 위한다고 해서 아이의 속도를 무시하고 혼자 앞서 가면 절대 안 된다. 나처럼 궁지에 몰다고 해서 아이를 몰아붙이는 것도 마찬가지고.

그건 흡사 리어카에 아이를 앉혀 놓고 그 리어카를 엄마 혼자 끌고 가는 것과 같다. 처음엔 의욕적으로 끌고 가도 결국 리어카의 무게를 못 이기고 제 풀에 지치고 만다. 만약 아이가 리어카에 무거운 돌덩이라도 안고 앉아 있다면 엄마는 어떻게 될까. 몇 발자국도 못 뗄 것이다.


아이는 엄마를 위하고 사랑하니까 본인이 무거울까 봐 걱정하고 조심한다. 자신을 희생하는 엄마 앞에서 아이는 쪼그라들고 미안해진다. 속으로는 엄마의 고생을 덜어주고 싶지만 스스로 나와 걸어갈 자신은 없다. 억지로 이끌려 가면서 의존적이 아이가 되고 힘들어 하는 엄마의 모습을 보서 죄책감을 갖게 된다.


엄마의 기준이 높으면 아이는 자신에게 실망하고 만다. 엄마의 마음을 충족시키지 못해 아이의 마음은 멍이 든다. 그걸 방치한 채 간을 흘려 보내면 그 멍은 구덩이가 된다.


그럼 리어카를 끄는 사람은 누구여야 할까. 그렇다. 아이여야 한다. 엄마는 아이의 힘과 속도에 맞춰 리어카를 밀어주기만 해야 한다. 서가려다가는 아이가 나동그라질 것이요, 너무 세게 밀어주려다가는 엄마가 넘어질 것이다. 서로의 힘과 의지가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 내가 선생님에게 기준을 맞추려고 했기 때문에 우리 모자는 균형을 잃고 말았다. 아이의 마음을 덜 알아주었던 탓에 관계가 무너질 뻔 했다.


첫째 아이 키우는 과정은 주구장창 시행착오다. 그래서 힘들고 힘들었던 만큼 지나고 보면 더 애처롭다. 파를 까듯이 지난 시간을 까다 보면 저절로 눈이 매워진다. 모든 부모들이 다 힘든 과정을 겪지만 안타까운 건 모보다 아이들 나쁜 기억을 오래 간직한다는 것이다.


지나고 나면 다시 바꿀 수 없는 것이 흘러간 시간이기에 나쁜 억이 최대한 안 남았으면 좋겠다.16살 아들이 9살 때의 기억 조각을 불현듯 꺼냈던 오늘의 일처럼 앞으로 얼마나 많은 나쁜 기억들이 떠오를까 생각하면 벌써부터 걱정이 스며든다.


시행착오 없이 양육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남의 시행착오를 타산지석으로 삼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싶은 마음에 또 이렇게 글이 길어졌다.




오늘 밤에도 우리 큰아들은 엄마 아빠 침대로 와서 강아지처럼 멍멍거린다. "아빠, 안아 줘~" "엄마, 안아 줘~"

둘째 아들도 안 하는 행동인데 태풍 같던 사춘기가 지중3 큰아들은 여전히 애교가 많다. 밌는 튜브 영상도 늘상 보여 준다. 마음 속 어린아이가 혹시나 덜 자라 있나 않을까 아이 눈을 바라보며 오늘도 는 안아준다. 조금이라도 더 자라라고.


사진 출처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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