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꿈꾸는 달 Aug 08. 2022

단독주택에서의 첫여름 나기

밤 10시가 다 되어가는 시간, 2박 3일의 여름휴가를 마치고 집에 돌아왔다. 아이는 욕조에 물을 받아 목욕을 하고 나는 세탁기에 빨래를 돌리고 수영복을 헹구어 마당에 널었다. 당일치기나 1박 캠핑을 제외하면 근 2년 만에 하는 여행이라 주택에 와서 이렇게 빨랫감이 쌓였던 적은 처음인 것 같다.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정리를 마치며 새삼 주택 생활에 감사함을 느낀다. 남편과 맥주 한 캔으로 가볍게 뒤풀이를 하고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 날 나의 아침은 데크 청소로 시작되었다. 며칠 사이에 제비가 남겨 둔 흔적을 지우기 위함이다. 며칠간 목이 말랐을 나무들에게 흠뻑 물을 주고, 그 사이 자란 잡초를 뽑고, 곳곳에 생긴 거미줄도 걷어낸다. 모두 주택에 살지 않았다면 하지 않아도 되었을 일이지만 적당한 마당 크기 덕분에 힘들게 느껴지진 않는다.



카톡 카톡~

잠시 후 연이어 알람이 울려댄다. 여름 그중에서도 방학이 있는 이 시즌은 아이가 있는 지인들의 방문 문의로 분주하다. 당장 연휴가 있는 이번 주엔 8일 중 6일간 손님이 방문할 예정이다. 아마 이곳이 펜션이었다면 오픈과 동시에 꽉 찬 예약에 즐거운 비명을 질렀을 것이다.


힘들고 부담스러웠던 손님맞이도 이제 어느 정도 익숙해졌다. 대부분 방문객이 아주 가까운 사이이기도 하지만, 꼬마 손님들에게 뛰지 말라는 잔소리를 하지 않아도 되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훨씬 가벼워졌다. 식사는 배달 음식으로 대신한다고 공지를 해두었고, 잠자는 공간 또한 층이 분리되어 있어서 좀 더 편안하다.

이 집에 이사 온 후, 외동인 아들은 낯선 사람들에 대한 경계를 조금씩 허물어 갔고, 또래가 방문하는 날을 손꼽아 기다리기도 한다.



아들과 함께 요리한 라볶이로 점심을 먹은 뒤, 마당에 나가 간이 풀장을 설치했다. 첫 설치부터 주도적으로 참여했던 아들은 이제는 설명서를 보지 않고도 척척이다.


문득 처음 마당 수영장을 설치하던 날이 떠오른다. 굳게 닫은 대문 너머로 동네 아이들 목소리가 들려온다. 비슷한 규모의 토지로 이루어진 주택단지라 약속이나 한 듯 집집마다 같은 풀장을 설치했고, 옆집에서도 물놀이가 한창인 것 같았다. 살포시 열어젖힌 대문을 통해 건너편 집과 옆집 동생들이 들어온다. "들어와. 괜찮아."라는 나의 말에 수영장 물에 첨벙 몸을 담갔다가 "으아~~! 여긴 냉탕이다." 소리를 지르며 도망간다. 덩달아 따라나선 아들도 어느새 이 집 저 집을 돌며 온탕과 냉탕을 오간다.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여름의 행복이다.


수영장 설치가 끝나갈 무렵 전기요금 고지서가 도착했다. 주택에서의 첫여름 전기세를 확인하는 순간이라 얼마나 나올지 매우 궁금했다. 93,000원이었다. 24시간 내내 1층과 2층을 번갈아가며 에어컨을 틀고 주택에 와서 새로 들인 가전도 많은데, 봄에 설치한 태양광 덕분에 이 정도면 선방한 것 같다.



물은 나중에 채우기로 하고 집안으로 들어왔다. 아들은 요구르트를, 나는 아이스커피를 한 잔 내려 마신다. 나른한 오후 거실 평상에 벌렁 드러누워 낮잠이라도 자고 싶지만, 마당에 놀러 온 제비 가족을 바라보며 잠깐 쉬어가기로 한다. “엄마, 우리 보드 게임 해요.” 이제 놀 준비를 마친 아들 곁으로 갈 시간이다.


잔잔하고도 요란한 주택에서의 여름날이 깊어간다.

이전 02화 집 짓는 데 얼마나 드냐고요?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