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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꾸는 달 Aug 18. 2022

여름날의 집터뷰

"언니, 우리 마당에 나가서 먹을래요?"


그녀가 포장해 온 규동으로 점심을 먹고 풋사과와 복숭아, 아이스커피를 내오던 참이었다. 오후 3시였지만 더우면 바로 들어오자 깔깔대며 과일과 커피를 쟁반에 옮겨 담았다. 아무 데나 턱턱 걸터앉는 걸 좋아하는 우리는 익숙하게 데크에 나란히 앉아 약속이나 한 듯 먼산을 응시했다.


"집 안에서 보는 산은 이런 느낌이구나. 너무 좋아요."


"그렇지? 대문 열고 나가도 보이는 산이지만 담장 위에 걸린 산, 창문 속에 가둔 산, 머무는 공간마다 다른 산의 모습을 보는 재미가 있어."



어느새 반으로 줄어든 음료를 들이키며 그녀가 말했다.


"마당의 공간이 나뉘어 있으니까 좋은 것 같아요. 이렇게 앉을 수도 있고."


" 예상투시도에서  공간을 처음 보았을  아이가 물놀이하는 동안 돗자리 깔고 수박도 썰어 먹고 삼겹살도 구워 먹어야지 생각했었는데, 살아보니  오는   멍하며 막걸리 마시기 좋은 곳이었어. 하하."



그러고 보니 참 신기하다. 이전에 살던 아파트에서는 거실 창 앞 식탁 자리가 나의 고정석이었다. 주로 그곳에서 책을 보고 밥을 먹고  커피를 마시고 쉬었던 것 같다. 침실은 잠자는 곳, 주방은 요리하는 곳, 나머지는 청소해야 하는 곳이었다. 그런데 주택에 오고 나니 머무는 공간마다 음미하게 되고 스토리가 담기고 애정이 생긴다.


"와! 저는 보통 여행 가면 그런 느낌인데. 집에서 그런 감정을 느낀다니 정말 신기해요."


나 역시 그랬다. 여행지에 가면 침구의 느낌, 창 밖의 풍경, 욕실에서 나는 향기 등 그 공간의 풍경과 냄새, 촉감 모든 것들을 하나라도 더 담으려고 애썼다. 그런데 얘기를 나누다 보니 지금 집에서의 삶은 하나라도 더 기억하고 음미하고자 했던 여행지에서의 태도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얼마 전 여름휴가를 다녀올 때도 그랬다. 휴가지에서 잊지 못할 즐거운 시간을 보낸 뒤였지만 집으로 가는 시간 또한 설레고 즐거웠다. 그렇게 대문을 열고 들어서며 우리는 또 다른 여행을 시작했다. 매일 밤 잠을 청하러 오는 벚나무의 제비를 바라보고, 늦은 밤 욕조에서 목욕을 하며 들려오는 아이의 노랫소리에 웃음 짓고, 짐 정리를 마친 후 식탁에 앉아 마시는 맥주 한 모금의 목 넘김을 기억했다.



"언니는 집을 살아있는 존재처럼 느끼는 것 같아요."


그녀의 말이 맞다. 이전엔 느끼지 못했던 감정이다. 집은 나에게 건축물 이상이며 살아있는 유기체다. 실제로 나는 집이 완성되어가는 과정을 보며 마치 아이의 성장을 지켜보는 것 같은 뿌듯함을 느꼈다. 아빠와 엄마의 성격과 취향을 반씩 닮은 집은 늘 그 자리에 서서 우리의 시간을 지켜보고 기억해줄 것이다.


“날로 늘어가는 나의 흰머리와 주름처럼 집 역시 나이가 들겠지? 집도 나도 있는 그대로의 서로를 보듬으며 자연스럽게 늙어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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