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무엇이 되어야 할지 모르겠다.
어떻게 되어야 할지도 모르겠다.
나의 나는 하나도 나이 들어지지 않았는데
숫자가 자꾸 바뀌어 간다.
그에 따라 나도 바뀌고 내 노력도 바뀌어야 하는데
몇 년 전의 하루를 데려와 오늘과 비교한다고 해도
서로 꼭 같을 것이다.
어릴 때부터 하고 싶은 일이 있어도 쉽게 포기했다.
스스로 한계까지 밀어붙였다가 깔끔하게 패배를 인정하는 절차는 아니었다.
그저 주눅이 들었을 뿐, 그런 식으로 모든 것을 포기해 가며 살아왔다.
하지만 동경하는 누군가처럼 되고 싶다고 바라는 것만은 멈추지 않았다.
바람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것의 힘으로만 항해를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더 나은 내가 되기 위한 가장 단순한 방법들은 오히려 사람을 초라하게 만들었다.
방법을 제시하는 사람이 내 머리채를 잡고 물속으로 담가버리는 것 같은 느낌을 주었다.
그 쉽고 정확하고 명백한 방법들이 있는데도 실행하지 않고
그저 스스로에게 그쳐있는 것은
'게을러서, 의지박약'이라서 라는 자기 비하의 물꼬를 트곤 했다.
내 상태는 이렇지만 나아지는 노력도 하지 않을 거야.
난 그런 의지가 들지 않으니까.
난 천하제일 의지박약에 게으르고 한심한 사람이니까.
행함과 행하지 않는 것 사이에 얼마나 많은 힘이 드는지,
오히려 그 사이가 뭔가를 행한 이후보다 더 큰 힘이 든다는 걸
다들 알고는 있겠지만
지쳐 쓰러져 있는 사람 앞에서는 가혹하기만 했다.
“운동을 해보는 건 어때?”
“밖을 좀 나가 봐.”
“사람을 만나 봐.”
때론 그렇게 위로를 가장한 채로 던져대는 폭력적인 말에 화가 났다.
마치
‘운동을 하고 밖을 나가고 사람을 만나서 건강한 삶을 유지하는 나는, 너보다 우월해.’
라고 말하는 것만 같았다.
물론 안다. 배배 꼬인 생각이라는 건.
“아니, 나는 그게 안 된다니까?
다 싫고 그냥 불 꺼진 집에서 누워만 있고 싶다고!”
라고 맞받아 칠 순 없었고..
그냥 웃으며 대답했다.
“네, 알겠습니다, 꼭 그래 볼게요!”
내 안의 그 어떤 요소도 중심을 가지고 있지 않아서 쉽게 흔들렸다.
그러니 다른 이들과의 비교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악취미 중 하나였다.
그 비교는 단순히 생김새, 옷차림, 말투, 사소한 행동,
생각하는 방식부터 시작해서 끝내는 불행을 견주기도 했다.
‘아 쟤는 저만큼이네, 나는 이만큼인데.’
‘나는 이만큼인데 쟤는 저만큼이네.’
타인의 불행이 나보다 클 때는 ‘나는 그나마 낫다’는 찌질한 희망이 아닌
‘난 저 정도가 아니니 불행을 느낄 가치가 없다’로 이어졌다.
타인의 불행이 나보다 작으면 ‘역시 내가 제일 힘들어’라는 결론이 나고야 말았다.
꼬장꼬장하고 자기중심적이며 유아적인 생각으로
결국 스스로를 더 갉아먹고 있는 줄도 모르고.
소소한 행복은 당연한 것이고,
견뎌야 할 시련은 어찌 내게 이러냐며 따져 묻고 싶었다.
참으로 오만한 생각이었다.
가진 것에 감사할 줄 모르고
주저앉아서 마음에 돌멩이만 던져댔다.
빈 마음의 크기를 가늠하는 메아리만 듣고 있었다.
저리도 크게 비어 있구나.
저리도 공허하구나.
와.. 이거 메꿀 수가 없겠구나.
그렇게 지속되는 삶에 생각이란 것이 스며들 틈이 없다.
사는 것은 등 떠밀려 가듯 흐르고,
하는 것 없이 바쁘기만 하다.
주변이 소란하고 머릿속도 소란하다.
빈틈없이 콘텐츠를 눈 안에 구겨 넣는다.
마치 어딘 가에라도 몰두하지 않으면 안 되는 사람처럼.
나에게로 중심이 옮겨오면 드디어 무너질 차례라는 걸 직시하게 될 사람처럼.
하지만 어떡하겠어.
어떤 핑계도 먹히지 않을 저 혼자 들어버린 나이.
내면의 나는 내버려둔 채로 저 혼자 흘러가 버린 야속한 시간.
‘더 나이 들어지더라도 나는 여전할 거야.
숨 쉬는 것에 괴로워하고 사는 것에 아파하며 그렇게
어린아이로 남아 있을 거야.’ 하는, 말도 안 되는 떼를 쓰고 싶지만
나의 쓸모를 스스로 만들어가야 한다.
어디로도 도망칠 수 없다.
아무도 봐주지 않는 글을 쓸지라도
누구라도 알아주지 않는 의미 없는 삶을 살지라도
‘나’라는 사람의 의미가 퇴색되지는 않을 것이다.
나는 나로서 존재하므로.
그것만으로도 가치와 의미는 충분하며
나만이 나를 알아주어도 된다.
...라고 마음을 다잡아도 내일이면 다시 무너지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