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 다른 이유 없이, 특별한 슬픔 없이
모든 것을 끝내고픈 생각이 고개를 쳐든다.
고저를 치닫는 괴로움 때문에
전부를 끝내고팠던 어떤 때가 있었다면
지금은 고요히 가라앉고 싶은 마음이다.
그저 피로하다.
반복되는 일상도,
밤중에 수차례 잠에서 깨어 마주하는 검은 집구석도,
나를 궁금해해줄 사람이 없는 것도,
나아질 것 하나 없는 앞날도,
조각난 채로 머무는 나 자신도,
모두, 그냥, 다.
무수히 혼자라는 것은
혼자이고 싶지 않아서 노력하려 하여도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것.
노력하더라도, 결국은 뭔가를 하더라도
혼자서 하는 수밖에는 없다는 것.
혼자라는 것은 지독히도 혼자라는 것.
깊어가는 밤에 혼자 남아 어둠에 스며들고
떠오는 아침 해의 빛 앞에 초라해지는 것.
매 순간 그렇게 혼자라는 것을 인식하고
받아들이고 깨닫고 그 앞에 처절해지는 것.
술을 왕창 먹고 해가 뜬 후 귀가하던 어느 날,
비틀거리며 집으로 향하는 동안 나직이 속삭였다.
사실은 혼자이고 싶지 않았다고.
홀로 견디며 지내온 많은 날들 중에
혼자이고 싶었던 날은 단 하루도 없었다고.
언젠간 나아지겠지.
언젠간 좋아지겠지.
그런 기약 없는 희망도 한두 해여야 말이지.
더 이상은 안 속지.
내 삶은 그냥 싸구려 고무튜브수영장 같은 것.
그 안에 담긴 수돗물 같은 것.
안간힘을 쓰며 발길질을 해봐도
채워져 있던 물만 밖으로 튀겨져 나가고
앞으로 나아갈 수는 없다.
찰랑이던 물마저도 이젠 바닥에 맞닿아서
참방참방은 커녕 챱챱거리는 소리밖엔 내지 못한다.
이러다 닳고 닳아 구멍 나 버리겠지.
담긴 것 아무것도 없으니 이러다 바람에 날아가 버리겠지.
세차게 헤엄치면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건,
꿈같은 거야.
어쩐지 나만 홀로 이 자리에 멈춰 있는 것만 같고
멈춰 있는 이곳에 나 홀로인 것만 같다.
그리고 앞으로도 그럴 것만 같은.
겪어본 적 없는 이 나이는 빛이 다 바래버린 나이 같아서,
앞으로 다시는 빛날 일도 반짝일 일도 없을 것만 같아서.
내가 가진 장점들이 더는 장점으로 보이지 않고
그냥 나이 들어버린 평범한 어느 한 사람이 된 것 같아서.
난 늘 유일하고 특별하고 반짝이고 빛나길 원했는데.
그래서 더욱 곤두박질.
그래서 더욱 시궁창.
그래서 나는 더욱더 엉망진창.
조각난 나를 더 조각내는 일.
그저 눈 감고 잠만 자고 싶고
그 뒤에 따라붙는 생각은 당연히
감은 이 눈이 떠지지 않았으면.
그러나 모순적이게도
숨을 거둔 후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발견되었으면 하는 것.
그나마 온전한 채로 수습 되는 것.
휘황찬란한 미래를 그렸던 날은 예전이고
지금은 그저 고독사 후 발견될 시점을 고민하는 사람이 되다니.
한 일 없이, 이룬 일 없이 나이만 먹어버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