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마저도 소란한밤 I 10화 오랜 친구에게 외전
우리는 오랜 시절을 등 뒤로 한 채 이별을 하고,
마침내 서로가 아니게 된 날들을
기꺼운 마음으로 맞이한다.
다른 이에게 자리를 내어주며
함께할 수 있었을지도 모를 시간을 양보한 채
울컥이는 마음을 진정시킨다.
떨어지지 않는 발을 떼어낸다.
사랑을 갈구하며 살았던 지난 모든 날들에 당신이 있었음을.
뒤늦게 깨닫게 된 그 사랑을 붙들고 섧게 울어보고 후회해보았자 아무런 소용이 없다.
돌이켜 본 모든 날에 당신은 언제나 날 향해 있었다는 것만큼 날 울게 하는 것 역시 없다.
당신은 나의 어느 한 때.
나도 모르는 어느 한 시절을 살뜰히 기억해주는 이.
반 이상을 나누고 전부를 주었던 사이.
사랑으로 살았던 사이.
함께한 때를 그리워하며 살게 될 것이 분명한 사이.
당신으로 지어 올려지고 당신의 파편으로 이루어진 내가 깨어진다면
그 조각을 다시 맞춰 보았을 때 당신이 될 수도 있는 것.
나는 하필이면 물에 닿으면 지워지는 수성펜으로 글을 쓰는 사람이었고
당신은 눌러 쓰며 새기는 힘을 가진 사람이었다.
내가 내 슬픔에 갇혀 허우적대는 동안
당신은 나쁜 것들이 내게 오지 못하도록
굳건히 뒷짐을 진 채 내 주위를 지키고 서있었다.
하루씩 흐려지고 흩어지느라
매일을 고개 숙인 채 바닥을 바라보며 우느라
곧고 높은 당신을 내가 미처 보지 못했을 뿐.
그쪽 별은 빛나고 있는지 물어오던 당신은
내가 잘못 살지 않았다는 것의 증거.
삶의 바탕으로 삼아 믿고 나아가는 종교 같은 존재.
자꾸만 숨어들어가는 나의 덜미를 잡아
밖으로 이끌어내 기어이 볕을 쬐게 하는 당신은
이 세상 밝고 환한 모든 것들의 상징.
우리는 사랑이었고, 사려 깊었다.
그런 생애를 나눠 가졌다.
그러나 이제, 물기 없는 목소리로 담담히 이별을 말한다.
얼굴이 엉망이 될 정도로 울며 다른 길로 걷기 시작한다.
마침내 그래야 할 때를 마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