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6월. 드디어 기다리던 내 첫 책이 발간되었다. 오랜 기간 상상으로만 존재하던 '내 책'이 진짜로 세상에 나오게 된 것이다. 감개가 무량한 만큼 축하해 주는 사람들도 많았다. 하지만 나의 첫 책은 시작부터 거창하거나 대단하지도 못했고, 결과적으로 보아도 좋은 성적을 거둔 책이라고는 말하지 못한다.
첫 책을 쓰기 시작한 것은 대략 2016년 경이다. 입사 N 년 차였던 당시는 책을 자주 읽지 못한다는 죄책감을 조금이라도 지워보고자 막무가내식 글쓰기를 시작한 지 1년쯤이 지난 시점이라 어떤 주제로 무슨 글을 써야 할지 고민하던 때였다. 글감을 찾는 하이에나처럼 다른 사람이 써 놓은 글 여기저기를 헤매다 어느 글쟁이 선배의 권유에 따라 내가 가장 잘 아는 부분에 대한 글을 써야겠다 마음먹었다. 내가 가장 잘 아는 것은 당연하게도 내가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나의 '일'과 관련된 주제이다. 나는 카페 컨설턴트로 수년째 생업을 이어가고 있었다. 동시에 사내강사로서 카페 창업을 희망하는 사장님들에게 카페의 매출과 손익에 관한 강의를 하고 있었고, 나름 스타강사로 인정받고 있던 인물이라 자부했다. 그래! 내 강의와 관련된 책을 써 보자. 내 방식대로 정리를 해 놓으면 책으로 만들어지지 않더라도 언젠가는 분명 도움이 될 것이다. 이런 생각으로 첫 페이지를 썼던 기억이 어렴풋 남아 있다.
입으로 뱉었던 내용을 글로 정리하는 일은 예상했던 것보다는 난도가 높지 않았다. 강의의 슬라이드 순서대로 목차를 짜고 목차에 따라 강의 중에 했던 말들을 정리하니 분량은 어렵지 않게 뽑아졌다. 하지만 정작 문제는 다른 데 있었다. 바로 꾸준함과 불확실함. 꾸준함을 위협하는 적은 환경의 변화로부터 생겼다. 원치 않는 회사의 조직개편으로 근무지와 생활 리듬이 바뀌면서 매일 아침 시간을 쪼개어 글을 쓰던 습관을 본의 아니게 접을 수밖에 없었다. 일정 기간이 지난 후 생활에 적응이 되자 다시 글 쓸 시간은 확보할 수 있었지만, 이번에는 불확실함이라는 장벽이 나를 가로막았다. 불확실함은 자신감의 결핍에서 생겨났다. 쉽게 말해 책 쓰기를 다 마친다고 해도 과연 누가 내 책을 봐줄지, 깊지 않은 고민으로 써 내려간 글들이 세상에 나올 수나 있을지에 대한 불확실함으로 그동안 머리를 쥐어뜯어가며 적어두었던 글들은 또다시 클라우드 저장소의 깊은 곳에서 긴 잠에 들어야 했다. 2016년에 호기롭게 시작한 글쓰기는 이러한 이유들을 핑계로 오랜 기간 마침표를 찍지 못한 채 배회했다.
첫 책을 세상에 내보일 수 있었던 건 지금은 퇴사한 한 직원 덕분이었다. 나와 친분을 쌓게 된 그녀의 결혼 상대자는 한 대학교의 국문과 교수였는데, 내가 축가를 불러준 계기로 교수님은 나의 책을 감리해 주겠다 제안해왔다. 일반적으로 거액이 들어가는 작업을 무료로 해준다니 마다할 리가 없었다. 가능성이 있는지 확인이나 해보자는 심정으로 인쇄본을 보냈다. 내 글을 누군가에게 보여주는 일이 처음이라 긴장과 함께 아주 미미한 기대도 있었다. 세세하게는 아니었지만, 몇 가지 좋지 않은 습관들을 지적해 준 후, 교수님은 마지막으로 글 전반에 대한 코멘트를 달아주었다. 흥미로운 이야기였고 글을 잘 썼으니 투고를 해보라는 제안이었다. 내가 투고라니!? 투고는 생각도 해본 적이 없건만 그의 응원을 듣고 나니 이유 모를 자신감이 샘솟았다. 인터넷으로 투고하는 방법을 찾아보니 내 책과 유사한 책을 찾아 책 뒤편에 인쇄된 출판사의 이메일로 원고를 송부하라고 조언했다. 나는 조언에 따라 서점으로 향해 내 책과 유사한 주제의 책 수십 권을 뒤졌고, 대략 50 곳의 출판사를 선별해 원고를 보내고 결과를 기다렸다. 원고를 보낸 출판사 중 대부분은 너무도 예측한 대로 부정적인 답변을 수 주 내에 보내왔고(그렇다고 대미지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나머지의 대다수는 응답조차 없었다. 하지만 몇몇 출판사들은 내 책에 관심을 보였고, 그중에는 이름만 들으면 누구나 알만한 대형 출판사도 있었다. 너무 기쁜 나머지 연락받은 그날 해당 출판사에 답변을 보내 미팅을 갖기로 했다.
대형 출판사와의 미팅은 순탄하지 못했다. 출판 업계의 불황 때문에 출판사는 일정 판매 부수를 확보하기 위해 여러 가지 조건을 제시했고, 그로 인해 결정은 차일피일 미루어져, 결국 1년이라는 시간만 허비한 채 내 책은 또다시 길 잃은 미아가 되어버렸다. 이대로 그냥 포기할까 생각도 했지만, 지금껏 쓴 책이 아쉬워 전체 구성을 재조정해 다시 투고에 도전하기로 했다. 책이 세상에 나올 운명이었는지 이번에도 내 책에 관심을 가진 출판사를 만날 수 있었다. 이번 출판사는 곧장 계약하기를 제안했고, 계약과 동시에 본격적인 책 제작 작업이 시작되었다. 출판사는 나와 함께 내 책을 치열하게 고민해 주었고, 함께 노력한 끝에 드디어 내 책이 세상에 빛을 볼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나의 첫 책은 투입된 고생의 강도와 시간의 대가 치고는 충분치 못했다고 자평한다. 처음 책을 출판하다 보니, 어떻게든 책을 만들어내는 데만 너무 집중한 나머지 정작 어떻게 책을 팔아야겠다는 고민은 많이 하지 못했다. 다행히 출판사의 노력에 더해 직장 동료들과 친한 지인들의 구매 덕에 초반 판매량은 나쁘지 않아 보였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판매량은 현저히 떨어져 기대했던 판매 부수를 채우지 못했다. 지금도 꾸준히 조금씩 팔리고는 있지만, 기대 수준에는 한참 못 미치는 게 사실이다. 책을 출간하기만 하면 내 책의 내용을 알아 본 독자들이 개미 떼처럼 달려들어 불티나게 내 책을 팔아줄 것이란 허황된 꿈은 말 그대로 꿈에 지나지 않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낄 수 있었다.
나의 첫 책은 이랬다. 순탄치 않은 과정에 순탄치 않은 결과였다. 책을 출간한 많은 작가들이 비슷한 경험을 이야기할지 모른다. 대부분의 첫 책은 성공하기 어렵고, 책을 내는 경험만으로 나라는 사람을 완전히 다른 인격체로 만들 수는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밑지는 장사는 아니었다. 가장 크게는 책을 썼다는 타이틀이 생겼고, 포털사이트에 이름 석 자도 검색이 된다. 무엇보다도 책을 써 본 경험은 돈 주고도 사지 못하는 값진 경험이었다. 글 쓰는 습관이 생겨 언제든 글감을 찾으면 또다시 책을 쓸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고, 이러한 자신감은 나라는 사람의 자존감을 매우 높여주었다. 그래서 나는 또 책을 쓴다. 자투리 시간을 이용해서 누군가는 운동으로 몸을 만들고, 누군가는 부업으로 돈을 만든다. 하지만 나는 글을 쓰고 책을 만든다. 책을 만드는 일은 그 어떤 운동보다 나를 건강하게 하고, 그 어떤 부업보다 나를 부유하게 할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이러한 믿음과 함께 나의 두 번째 책이 세상에 나오는 과정을 소개해 보려 한다. 처음보다 더 많은 관심과 애정을 받는 책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