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감을 찾아 방황해 본 적이 있는가? 누군가 시키지 않은 글을 쓰기 시작한 후부터는 계속해서 글감에 대해 고민해 왔다. 아마 취미로든 직업으로든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의례 글을 쓸 그 무언가를 항시 찾아 헤맬 것이라 믿는다. 글을 써보기로 마음먹은 후 첫 글은 유학 생활에 관한 것이었다. 조금이라도 기억이 남아있는 부분을 정리해서 후에 내가 유학이라는 과업을 이렇게 달성했구나 하는 기록만 남아도 좋으리라는 생각에서였다. 그 글은 정말 그렇게 기록으로만 남았다. 나름대로 정리한 글로 브런치 작가로 데뷔(?) 할 수 있었고 글을 좋아한다는 사람도 더러 있었지만, 아마 그 글을 가장 신나게 읽은 사람은 와이프일 테다. 집사람은 내 글을 읽으면서 나라는 사람의 힘든 지난날을 볼 수 있었다고 말하며 수고했노라 어깨를 토닥여주었다. 집사람이 그런 행동을 할 때마다 과하게 미화된 내 글이 조금은 부끄러워지기도 했다.
운 좋게도 두 번째 글은 첫 책으로 세상에 나왔다. 내 지식 전부를 갈아 넣은 것 같은 첫 책. 그런데 그다음은? 보통은 한 권의 책으로 만족하지 않는다는 소리를 들었다. 나 또한 계속해서 글을 쓰고자 하는 의지가 있었기에 두 번째 책은 뭐가 좋을지 계속해서 글감을 찾아 고민했다. 첫 책이 출간의 과정에서 방황하는 동안 자전적 소설을 써서 투고도 돌려 보았지만 별다른 수확을 거두지는 못했다. 경험 없는 소설가의 글을 열광하며 읽어주기엔 이미 시장에 나와있는 재미있는 글이 너무도 많았다. 첫 책을 내고 나면 자연스레 다음엔 어떤 내용을 써야 할지 알 수 있을 거라는 기대와는 달리 첫 책이 마지막 책이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함이 조금씩 나를 엄습해 왔다.
그러던 중 책이 발간되었고 많은 지인들로부터 축하를 받았다. 현재 카페를 운영하는 나를 아는 많은 사장님들이 책을 구매하고 응원과 함께 축하한다는 메시지를 보내주었다. 어찌 보면 현업 카페 종사자인 사장님들이니 카페 관련 책을 구매하는 게 당연해 보이지만, 프랜차이즈 카페를 운영하는 사람이 책까지 구매해가며 관심분야에 대한 정보를 얻는 경우가 많지 않다는 점을 생각해 보면, 나에게는 보내주는 응원 하나하나가 너무도 소중하고 감사할 따름이었다. 회사 동료들에게서도 출간을 축하한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내가 소속한 팀원들 전원과 같은 사무실을 사용하는 직원들, 그리고 나와 십수 년을 함께 일해 온 나와 친분이 두터운 직원들이 사비를 털어 책을 사 주어 초기 판매 부수를 올리는데 상당한 도움이 됐다. 책을 구매한 직원들 중에 내 책을 전부 읽은 사람이 얼마나 되는지는 모르겠다. 아마 대다수는 예의상 책을 구매해 주었을 뿐 정작 읽지는 않고 어딘가 고이 모셔두었는지도 모른다는 합리적 의심이 든 이유는 그들로부터 긍정이나 부정의 피드백이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모두가 그렇다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의외로 부정적이면서 나를 자극하는 피드백은 정말 나를 위해주는 가족들에게서 나왔다. 그중에서도 장모님은 연세가 있으심에도 불구하고 내 책을 정독하며 책에 대한 아쉬움을 숨김없이 나에게 털어놓아 주셨다. 집사람의 피드백도 장모님의 것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여러 번의 기회로 카페 사업을 몸소 체험할 수 있었던 반 전문가인 집사람은 내 책이 창업을 준비하는 사람들에게 차고 넘칠 정도로 좋다고 이야기하면서도 그에 비해 너무 딱딱한 이론 위주의 책이라는 점 때문에 읽을수록 지루해진다는 사실을 가감 없이 털어놓았다. 사실 책이 너무 좋다는 이야기는 나에게 큰 도움이 되지 못했다. 내 책에 대한 솔직한 의견을 내가 알아야 같은 실수를 하지 않고 다음 책에 도전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장모님과 집사람의 솔직한 피드백을 들은 후 책을 읽어보니 정말 그렇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처음 초고를 완성했을 때와는 상당히 다르게 전개된 부분이 없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출판사에서 책을 기획하는 과정에서 타깃 독자를 바리스타나 카페 창업을 꿈꾸는 어린 학생들로 설정하다 보니 책의 형식 또한 그에 맞게 참고서의 형식이 되어버렸다. 몇몇 사례들이 삽입되어 있었지만 대부분은 이론적 정보 전달에 페이지를 할애하고 있었다. 아쉬웠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미 세상에 나와버린 책을 도로 집어넣을 수는 없는 법이었다.
오랜만에 생긴 가족행사로 장모님 댁에 방문하는 어느 주말이었다. 첫 책이 나온 지 채 5개월도 되지 않은 시점이라 내 머릿속은 온통 글쓰기와 책으로 가득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어떤 글감으로 다음 책을 써야 할지에 대한 고민들로 가득했다. 차를 타고 가던 중 집사람과 나눈 대화의 주제도 온통 그러했다. 내가 어떤 주제로 다음 책을 쓰면 좋을지, 어떤 주제로 글을 써야 사람들이 내 글을 많이 읽어줄지 도통 감이 잡히지 않는 듯했다. 그렇게 대화를 이어가던 때 한 통의 전화가 왔다. 카페 사장님이었다. 블루투스 스피커에 연결된 사장님은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하고 함께 일하던 어린 딸아이의 무단결근에 대해 하소연을 토해냈다. 차분히 사장님을 진정시킨 나는 취할 수 있는 대응 방법을 알려 준 후 전화를 끊었다. 옆에 있던 집사람이 자초지종을 물었다. 나는 집사람에게 이 사장님과 그의 카페, 그리고 그 자녀들에 대해 설명했고 어떤 사건이 있었는지도 대략적으로 알려주었다. 집사람은 연신 '어머 어머 어머머'를 반복하며 나의 이야기에 몰입했다. 신이 난 나는 또 다른 카페에서 있었던 웃지 못할 상황에 대한 이야기보따리도 풀어놓았다. 그러자 집사람은 이번에도 내 이야기에 감정 이입을 해가며 몰입하더니 심지어 내 이야기의 끝에 가서는 이러한 말을 했다.
"자기야, 이런 이야기를 적어봐. 이런 이야기가 훨씬 더 듣고 싶을 것 같은데?"
심봉사가 눈을 떴을 때 기분이 이와 비슷했을까? 내 뇌리에 번쩍하는 섬광이 비쳤다. 왜 진작 이 생각을 하지 못했을까? 사람들이 궁금해하는 바는 이론이나 정보보다 실제 사례에 있다는 사실을 여러 번의 강의를 통해 이미 나는 체감적으로 알고 있었다. 카페 운영의 원칙에 대해 설명을 하며 실제 존재하는 가게의 사정을 이야기해 줄 때면 사람들의 눈이 더욱 초롱초롱 빛났던 것이다. 그래! 이거다! 사례를 중심으로 책을 써보자! 지금까지 내가 만나 온 많은 카페 사장님들이 바로 재료다. 그러한 재료들을 잘 다듬어주기만 해도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만한 좋은 책이 나올 수 있겠다!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니 주저할 이유가 없었다. 다음 주 월요일부터 당장 글을 써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