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일의 기본은 업무분장이다. 업무가 부여되면 사람은 책임감을 느낀다. ‘그냥 아무거나 할 수 있는 일을 해’가 아닌 ‘이 일에는 당신이 꼭 필요합니다.’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업무분장이 없는 회사는 없다. 그럼 집안일은 어떨까? 맞벌이 결혼 2년 차 우리 부부가 처음 집안일의 업무분장을 나눈다고 했을 때 주변에서 가족끼리 어떻게 딱 반반 집안일을 나누냐, 더 시간이 남는 사람이 하면 된다, 그렇게는 오래 못 산다는 반응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업무분장의 초점은 일을 ‘나누는 것’이 아니라 ‘책임감을 갖는 것’에 있다. 회사에서 내 업무에 책임감을 갖고 일하듯이 집안일도 내 일이라는 생각으로 임하는 것이다. 이렇게 집안일에 업무분장을 두면 2가지 장점이 있다.
첫 번째, 해주기를 바라기보다 먼저 하게 된다.
회사에서는 내 일을 도와주지 않아도 불평하지 않는데 집안일은 왜 불만이 생길까? 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내가 해야 할 일이라고 책임감이 부여되면 집안에서도 회사처럼 능동성이 발휘된다.
직장에서는 일단 업무분장이 주어지면 내 역량으로 일을 끝내는 것이 기본이다. 내 일을 미룬다고 누가 대신해주지 않는다. 집안일도 마찬가지다. 회사 일이 아무리 바빠도 집안일도 나에게 주어진 책임이 있다. 오늘 일이 많아 피곤해서, 평소에는 내가 많이 하니까 이번에는 배우자가 해주었으면 하는 자기중심적인 바람이 없어진다.
두 번째, 배우자에게 배려와 고마움이 커진다.
집안일을 나눈다고 꼭 내 일만 하라는 것이 아니다. 회사에서도 일을 하다 힘에 부치면 협업으로 해결한다. 하물며 나의 배우자가 도움을 요청하는데 돕지 않을 사람이 없다.
그리고 상대방이 요청하기 전에 도와주면 고마움이 배가 된다. 서로 돕다보면 배려심이 커지고 어쩌다 상대방이 맡은 집안일을 하지 못했을 때도 너그러운 이해심이 생긴다. 분장에 따라 집안일을 함께 하는 것 자체도 부부 사이를 돈독하게 만든다. 짝꿍과 나는 분리수거를 한 후 함께 산책을 한다. 분리수거일 때문이라도 이 날은 꼭 비워두고 같이 시간을 보낸다.
함께 사는 공간을 청소하고 같이 요리를 하고 정리하는 일은 나를 위한 일이기도 하다. 가깝고 소중한 사람일수록 헌신해야 한다. 나는 회사에서만 평판이 좋은 사람은 아닐까? 집안일을 할 때 적어도 내 분장만큼, 나아가 내 분장을 넘어서는 책임감으로 상대에게 헌신하는 것이 결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