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 들이기
남천에는 사람만 사는 곳이 아닙니다. 맑은 물을 마시고 싶은 모든 생물이 함께 사는 동네입니다. 소는 집을 지어 주어 우리가 사는 집의 지붕과 이마를 맞대어 삽니다. 추운 겨울이 되면 소밥도 지어 주고, 여름이면 하루에 한 짐씩 소꼴을 꼬박꼬박 베어다 줍니다. 우리는 귀찮아서 밥을 안 먹고 자도 소는 꼭 먹을 것을 주어야 합니다. 사람은 때로는 동네 잔치에서 얻어먹고 와도 소는 먹을 것을 얻어다 줄 곳도 없었습니다. 여름에야 밭에 나갈 때 함께 끌고 나가 일하는 동안 풀을 뜯어 먹게 해, 저녁에는 간단하게 꼴 한단 얻어주면 됩니다. 그러나 겨울에는 꼭 불을 때서 짚을 넣은 소죽을 끓여 주어야 합니다. 어떤 때는 짐승이 사람보다 더 무서웠습니다.
돼지는 소보다 많이 키웁니다. 소는 없어도 돼지는 들입니다. 소가 없으니 더욱 돼지라도 길러야 합니다. 허드렛물을 마구 버릴 수 없기 때문입니다. 돼지집은 마당 한 켠에 나무 등걸을 하나씩 쌓아 올려 만듭니다. 마치 성냥개비로 네모진 집을 짓듯이 돼지우리를 짓습니다. 안쪽으로는 짚으로 지붕을 해 얹어 비를 피할 수 있게 하고, 집 바로 앞에는 죽통을 놓아서 구정물로 밥을 줄 수 있도록 합니다. 대게 소가 없을 때 돼지를 키웠다가, 소를 키울 수 있게 되어서는 돼지를 없앱니다. 소와 돼지를 동시에 키우지는 않습니다. 집에서 나오는 구정물이 두 마리를 키우기에는 양이 적기 때문입니다.
아무튼 아버지가 나무껍질이 아직도 살아 붙어 있는 나무 등걸을 져다가 돼지우리를 지은지 얼마 되지 않아서였습니다. 돼지를 한 마리 넣었습니다. 검은 돼지였습니다. 돼지 새끼가 새까맣게 윤이 나는 것이 얼마나 귀여운지 모르겠습니다. 뾰죽한 주둥이로 구석구석 깔아준 짚을 들추고 다녔습니다. 아마 드러눕기 좋은 장소를 찾아다니는가 봅니다.
어머니가 밥을 할 때 나오는 뜬물을 죽통에 부어 주었습니다. 밥을 다 먹고 설거지를 하고 나오는 찌꺼기인 구정물도 부어 주었습니다. 설거지는 쌀겨를 수세미에 묻혀 문지르고는 맑은 물에 헹궜습니다. 설거지 하고 나온 구정물을 큰 함지에 받아 놓았다가, 가라앉으면 함지를 기울여 맑은 물을 따라내고 남은 찌꺼기도 돼지 죽통에 부어 주었습니다. 돼지는 이런 것만으로도 배를 채울 수는 없었습니다. 방아를 찧고 나온 더 거친 쌀겨를 구정물에 풀어 주기도 합니다. 소는 죽을 끓여서 주어야하지만, 돼지는 죽을 일부러 끓이지는 않습니다. 썩으려고 하는 감자도 주고, 다 썩은 고구마도 주면 잘도 먹습니다. 옥수수도 알은 우리가 먹고 다 따먹은 속을 던져 주어도 잘 먹습니다.
돼지 기르기
우리에 갇힌 돼지는 아이들이 놀 때도 좋은 구경거리입니다. '꽥꽥꽥' 하고 앞발을 들어 통나무 서너 칸을 올려 집고 밖을 쳐다볼 때도 있습니다. 그 때는 틀림없이 배가 많이 고픈 때입니다. 우리는 맏이인 내가 아래 아래 동생인 종구를 보았고, 바로 동생 영구는 그 아래 아래 동생 미란이를 업어서 길렀습니다. 바로 밑에 동생은 같이 크니까 업을 수는 없고, 한 터울 건너 동생은 돌볼만 합니다. 울면 업어줄 만큼은 되기 때문입니다.
한번은 종구가 뭔 일인지 그칠 줄 모르고 울었습니다. 업어 주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업어 주어도 그치질 않는 것입니다. 들여 넣은 지 얼마 안 되는 돼지우리로 갔습니다. 띠를 해서 들쳐 업은 채로 옆으로 기울여 돼지를 보라고 추슬렀습니다. 돼지는 밥을 주는 줄 아는지 가까이 다가와 앞발을 들려고 가까이 왔습니다. 멀리 있을 때는 보였는데, 바로 아래로 돼지가 다가오니까, 등에 업은 종구는 내 어깨에 가려 볼 수가 없었습니다. 업힌 채로 고개를 빼는 것을 더 잘 보라고 나도 더 기울여 주었습니다. 그러다가 그만 종구가 업은 등에서 쭉 빠져 돼지우리로 뚝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나는 깜짝 놀랐습니다. 아이를 돼지우리에 빠트렸으니 큰일 났습니다. 동생은 거꾸로 떨어져 짚을 헤치며 일어나느라고 울 정신도 없는지 의외로 조용했습니다. 나와 종구보다 정작 더 놀란 것은 돼지였습니다. 우리 앞으로 통나무를 집고 일어서려다가 자기 몸집보다 더 큰 물체가 떨어지니까 놀라서, '꽤괘괙' 소리를 지르면서 뒷구석으로 도망을 가 머리를 처박았습니다. 덤벼들지 않은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 우리도 짐승이 덤비면 무섭지만, 짐승들도 사람을 무서워하기는 하는가 봅니다.
몇 달이 지나니까 돼지가 상당히 컸습니다. 이제는 밥도 많이 주어야 합니다. 집에 돼지가 있으니까 끼니때가 되면 사람이 집에 꼭 붙어 있어야 했습니다. 사정이 있으면 사람은 좀 늦게 먹어도 되지만, 돼지는 잠시도 못 참고 꽥꽥 거리고, 우리를 올라타고, 머리로 죽통을 뒤집어엎고, 우리를 밀어 박치기도 했습니다. 이럴 때 사람이 집에 있으면 뭐라도 줘서 달래지만, 사람이 없으면 집을 뛰쳐나오기도 합니다.
어느 날이었습니다. 온 식구가 밭에 갔다가 돌아왔던가 봅니다. 돼지가 배가고파 몸부림 치다가 우리를 나왔습니다. 다행히 멀리는 가지 않고 싸리 울타리를 벗어나지는 않았습니다. 돼지를 다시 우리로 집어넣어야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돼지가 위에 걸친 두 개의 등걸을 밀치고 세 개는 타고 넘어 나와서 돼지 집이 반은 무너졌습니다. 돼지우리에는 원래 문이 없습니다. 드나들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돼지가 다 자라면 울타리를 넘어가 묶어 팔든지 잡으면 그만입니다. 죽을 죽통에 부어 주면 다시 들어가기는 하겠지만, 우리를 넘어 나온 돼지를 다시 넘겨 들여보낼 수는 없는 것입니다. 우리의 귀퉁이를 모두 허물어 길을 내야 합니다. 돼지가 크면 못을 박아 집을 지어도 죽을 제대로 안 주면 들이 받아서 집을 남겨두지 않습니다. 꺽쇠를 촘촘히 박아야 하는데, 호치켙 핀 같이 생긴 꺽쇠는 당시에는 귀해서 집을 짓는데도 마음 놓고 못 썼습니다.
허술한 우리에서 힘 센 돼지를 잘 키우자면 배고프지 않게 죽을 제때에 주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돼지는 역시 밥만 잘 주면 제 죽을 줄 모르고 우리에 잘도 갇혀 있습니다. 그래서 배부른 돼지보다는 배고픈 소크라테스가 낫다고 했는가 봅니다.
돼지 잡기
집에서 기르던 돼지는 명절 때나 잔치 날에는 동네서 잡았습니다. 누구네 돼지를 잡는 다고 정해지면, 동네 어른들이 돼지우리에 들어갑니다. 이번 추석에는 우리 돼지가 당첨되었습니다. 종구가 빠졌을 때 후다닥 도망갔던 돼지가 벌써 한 짐은 되게 자랐습니다. 새끼줄로 고리를 만들어 네 다리 중에 한 다리를 걸어 매고, 그 끈을 당겨 나머지 다리도 묶었습니다. 네 다리를 한군데다 묶어서 튼튼한 작대기를 꿰어 동네서 가장 젊은 원국이 아저씨가 지게에 지고, 지게 작대기를 가로 집고 일어났습니다. 꽥꽥거리는 돼지를 지고 동네 가운데 개울로 가서 터를 잡았습니다. 그러면 돼지 잡을 준비가 끝납니다.
돼지를 잡는 첫 번 순서는 도끼머리로 돼지 골을 힘차게 내려치는 것입니다. 돼지는 죽겠다고 소리를 지릅니다. 돼지 소리가 처음 보다는 좀 죽는다 싶을 때, 돼지 멱을 땁니다. 흐르는 피는 양푼에다 받습니다. 돼지 목에 뚫어진 구멍으로 바람이 들락날락할 때마다 피가 왕창왕창 쏟아집니다. 한 사람이 양푼을 들고, 서너 사람이 돼지 위에 올라가 꿈틀거리지 못하도록 제압을 해야 생피를 제대로 받을 수 있습니다.
한참을 기다려 돼지의 숨이 끊어지면 작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됩니다. 미리 새파랗게 간 부엌칼보다 얇은 칼로 털을 다 깎습니다. 다리를 들고 깎고, 뒤집어서 깎고, 네 다리를 하늘로 쳐들어도 깎고, 깎은 털을 치우느라고 개울물을 연신 끼얹어가면서 깎았습니다. 돼지털은 새까만데, 털을 깎아 놓으니까 속살은 하얬습니다.
털을 다 깎고 나면 맨드름해진 배를 가릅니다. 돼지 배속에는 엄청난 부속이 들어 있었습니다. 어른들은 부속을 뒤져 제일 먼저 간을 꺼냈습니다. 거기서 쓸개를 또 조심스레 골라 떼어냈습니다. 쓸개는 종종 눈에는 가장 잘 띄지만 손은 잘 가지 않는 마루끝 처마밑에 달아 두곤 했습니다. 비상시에 약으로 쓰기 때문입니다. 할아버지 방 앞 기둥에는 새까맣게 쫄아붙은 쓸게가 언제나 걸려 있었습니다.
간은 돼지를 잡다가 말고, 잡던 칼로 잘라서 한 절음씩 입에 넣었습니다. 불에 구울 필요도 없고, 돼지 창자를 씻을 때 쓰려고 준비한 소금에 찍어서 너도 나도, 골고루 빠짐없이, 그래도 어른의 순서에 맞춰서, 나누어 먹었습니다. 그래도 키우느라고 정이 들었는데, 잡혀 죽는 돼지를 보고 자리를 떠나지 못하고 지켜보던 우리는, 아버지가 소금에 찍어 주는 돼지 간을 한입 얻어 먹었습니다.
돼지 뱃속에 있는 것이라도 창자 속의 똥 외에는 버릴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창자는 속을 넣어 순대를 만들었습니다. 각을 뜨는 동안 소금을 한 움큼 집어넣고 걸레 빨듯이 빨래돌에 치댑니다. 잔치가 있어서 돼지를 잡을 때는 창자로 순대를 만듭니다. 순대를 만들 때는 창자를 깨끗이 씻어 둔 다음에도 준비해야 할 것이 크게 두 가지가 있습니다. 부엌에서 여자들이 순대 속을 만듭니다. 잡은 고기를 다지고, 두부를 넣고, 김치를 넣고, 간과 양념을 해서 큰 양푼에 담아 둡니다. 앞마당에서는 남자들이 속을 창자에 넣을 깔때기 같은 도구를 준비합니다. 4홉들이 정종병의 허리에 실을 팽팽하게 당겨서 감아 묶습니다. 묶은 실에 호롱불을 켜는 석유기름을 바르고 불을 붙입니다. 실이 감긴 곳에만 뜨거운 불길이 모여 그 부분을 약하게 하는 모양입니다. 불이 다 탄 다음에 나뭇가지로 똑똑 치면 금이 가고, 병의 중간부분이 깨져서 원하는 깔때기를 얻을 수 있습니다. 작은 돌로 깨진 부분을 갈아서 다치치 않도록 다듬으면 준비는 끝납니다. 순대를 만드는 일은 바깥일을 할 수 없는 밤에 호롱불 밑에서 놀이처럼 합니다. 한 사람은 깔때기를 잡고, 또 한사람은 깔때기에 속을 퍼 넣으면서 막대기로 쑤셔 넣고, 또 한사람은 창자 속으로 들어간 것을 끝으로 몰아넣고, 손발이 척척 맞습니다. 잔치는 순대를 만드느라고 이미 시작 된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마을 아주머니들과 장가를 가는 신랑의 친구들이 어우러져 신방을 몇 번 꾸미고도 남았습니다.
오줌보는 구경하는 아이들에게 돌아가는 선물입니다. 오줌보를 얻은 우리는 그제야 자리를 떠납니다. 한쪽을 묶어 뒤집고는 바람을 넣어 축구를 하는 것입니다. 바람은 입을 대고 부는 것이 아닙니다. 밀짚 대롱을 구멍에 끼우고, 불기 전에 구멍은 이미 실을 한번 엇갈려 잡고 당길 준비를 합니다. 바람이 어느 정도 팽팽하게 들어갔다 싶으면 실을 당겨 홀치고는 밀짚대롱을 빼면 됩니다. 돼지를 잡은 장소에서 가장 가까운 종하네 마당에서 왁자하니 축구를 한판 합니다. 돼지 오줌보는 두깨가 다르고, 묶음 부분에 무게가 달라서 일정하게 굴러가지 않습니다. 럭비공같습니다. 그래도 크면 배구공만하고, 작아도 핸드볼 공만 한, 바람 들어간 공이 어딥니까? 축구를 한다고 해도 맨날 장정에서 쭉 찢어져 버린 것을 주워다가 짚을 넣고 꿰매어 찼는데, 그것보다는 발도 아프지 않고 멀리 날아갔습니다.
비계는 적을 붙이는데 유용합니다. 명절에는 적을 붙여야 푸짐한데, 적을 붙이려면 돼지기름이 꼭 필요했습니다. 쇠죽을 끓이는 솥뚜껑은 너무 크고, 밥을 하는 솥뚜껑이 딱 맞습니다. 솥뚜껑 손잡이가 아래로 가도록 뒤집어 놓으면 적을 붙이기에 알맞은 준비가 됩니다. 불을 때서 솥뚜껑을 가열한 다음, 돼지비계를 긴 나무젓가락으로 눌러 한 바퀴 휘휘 두르면 지글지글 기름칠이 됩니다. 그 위에 묵은지를 길게 쭉쭉 찢어서 한 방향으로 놓습니다. 묵은지를 넓게 쪼개면 3개, 좁게 쪼개면 5개도 놓습니다. 묽게 갠 밀가루 반죽을 국자로 떠서, 한 손으로는 나무 뒤집개로 국물을 받쳐 흐르지 않게 하고는, 솥뚜껑 가장자리부터 동그랗게, 묵은지 위로 들여 붓습니다. 가운데는 좀 모자라도 상관없습니다. 솥뚜껑 가장자리가 높고 가운데가 낮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가운데 아래로 흘러 모입니다. 솥뚜껑이 무쇠로 되어 있어서 골고루 익는데, 다 익기 전에 반죽을 골고루 펴 주면 두께도 일정하게 됩니다. 하얗던 반죽이 맑게지면서 익어가면 뒤집게로 가운데를 들어서 한 번에 뒤집습니다. 이것이 적 부치는 기술입니다. 동네 아주머니들은 물론 우리 어머니도 적을 아주 잘 붙입니다.
또 하나 적을 붙이는 기술이라면 적을 채둘레만하게 붙이는 것입니다. 묵은지를 놓을 때 긴 것은 가운데 놓고, 묵은지 가장자리의 짧은 것은 가로 놓아서, 묵은지가 적 밖으로 나가지도 않게하고, 동그랗게 붙여도 묵은지와 밀가루의 배합이 잘 되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적을 우물정자(井)로 썰었을 때 모든 조각에 묵은지와 밀가루가 골고루 들어가게 하는 것입니다. 자른 적을 먹을 때 김치만 있는 것은 너무 짜고, 밀가루만 있는 것은 너무 척척하기 때문입니다.
채둘래만 한 적을 한 장 한 장 부쳐서 싸리나무 광주리에 담아 놓으면, 잔치에는 처음부터 끝까지 가는 반찬이 됩니다. 막걸리에 적 한 젓가락을 장물에 찍어서 먹으면 되고, 밥을 먹어도 적 한 가지만 있어도 맛있고, 고기를 먹어도 적 속에 있는 묵은지가 고기맛을 더합니다. 물론 적 자체로도 구수하니 한 끼 충분한 양식이 되기도 합니다. 적을 적 맛나게 하는 것이 돼지 비계입니다. 요즘은 부침개라거나, 전이라고도합니다.
고기는 동네에서 함께 잡기로 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줄 수 있도록 근 수를 잘 조절해서 자릅니다. 물론 잔치를 위해서 잡는 다면 모두 잔치집으로 갑니다. 설이나 추석처럼 명절에 잡는 것이라면 명절을 쉘 수 있도록 집집이 골고루 나누어 짚으로 묶어 전달했습니다. 양이 많은 고깃덩이는 즉석에서 짚을 새끼로 꼬아, 칼로 힘줄을 섞어 뚫은 구멍에 꿰어 들고 가게 합니다. 적은 양이면 짚을 몇 가닥 엇물려서 가운데를 질끈 동여 들고 갔습니다. 우리는 이런 때에야 고기맛을 볼 수 있습니다. 아직 추석은 며칠 남았어도 고기가 들어 온 날은 어머니가 밥도 일부러 하얀 쌀밥을 합니다. ‘고깃국에 이밥’이라는 말이 여기서 생긴 말인 듯합니다.
비계를 듬성듬성 넣고 끓인 고깃국이 좀 이상할 때도 있습니다. 칼로 털을 깨끗이 밀어낸 것 같은데, 국에 든 고깃덩어리에는 시커먼 털이 깊히도 박혀있습니다. 잡을 때는 바짝 깎았는데, 기름이 빠지고 비계가 얇아지자 겉으로 보이도록 삐쭉이 내밀게 된 것입니다. 하얀 무국일 때는 시커먼 떨이 더 잘 보입니다. 그래도 아버지는 보지도 못하신 듯이 아무렇지도 않게 드셨습니다. 기름 둥둥 뜨는 고깃국에 맨밥만 말아 먹어도 꿀맛입니다. 돼지 잡는 날은 온 동네가 오랜만에 몸보신하는 날입니다. 밥은 오랜만에 고깃국으로 잘 먹었는데, 마당을 나와 보니 늘 밥을 주던 돼지는 없습니다. 돼지우리가 휑하니 비었습니다. 내 배는 찼는데, 돼지우리는 비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