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 말을 잘 들었다고
그렇게
말을 잘 듣는 아이는 아니었다. '말을 잘 듣는다'라고 함은 그저 시키는 대로 하고, 하지 말라는 것은 하지 않는 것을 뜻한다고 생각한다.
외박을 하지 말라 했을 때는 친구네 집에서 숨어있던 적도 있었고, 먹지 말라는 기호식품을 섭취하기도 했었다. (아직도...)
그렇다고 안 듣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하면 안 된다는 것을 하지는 않았으며, 시간이 많이 흘러서는 조금 더 견디라고 해서 견뎠다.
주어가 빠진 이 문장들은 주어에 따라 상황과 정황이 다르기도 하지만 결론적으로 '그렇게 말을 잘 듣는 아이'는 아니었다는 뜻이니 상상의 즐거움은 독자 개인의 몫이라고 생각하며 다음 문장을 적어 내려가려 한다.
성인이 되고부터는
누군가는 청소년, 즉 미성년자는 아직 자아가 불안정하고 불확실하기 때문에 사회가 보호를 해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렇기 때문에 사회는 미성년자를 우선적으로 생각하는 정책도 펼치고 보호해준다. 심지어 죄를 지어도 죗값을 대폭 할인해주는 혜택까지 부여해준다.
그 누군가의 주장이 맞다고 판단하기에, 즉 자아가 불안정하고 불확실하기 때문이다. 이는 다른 시선으로 바라본다면 믿지 못하는 것이기도 하며,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으로 보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성인이 되고부터는 무엇이든 내 마음대로 하고 싶다는 생각을 강하게 했던 것 같다. 귀가 시간부터 진로 결정과 하다못해 기호식품 섭취까지도 내가 내 인생의 주체가 되어 판단하고 행동하며 책임을 지는 게, 내 인생의 주인은 나라는 사실을 인지하고 이행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으며 지금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나는 정신적으로도, 경제적으로도 독립을 하지 못한 상태였다. 결국 겁이 나면 조언을 구했고 최대한 자립하고 싶었지만, 근본적인 도움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의식적으로 '허락'을 맡으려 했다. 분명히 내 인생의 주체는 나이며, 내가 주인이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허락'이 없으면 이행하지 못하거나, '협의'를 하려고 하고 있다.
물론 그냥 협의 없이 이행하면 그만일 수 있다. 하지만 나는 아직 부가적인 여건을 두려워하고 있거나, 어쩔 수 없는 상황에 놓여 있거나 그저 두려워서 그 상황에 대한 '불평'만 늘어놓고 있는 것일 수 있다.
다시 보니
나는 어느 정도 더불어 살아가기 위한 조율을 하고 있는 중일 수도 있다. 그것이 아니라면 아직 자아가 불안정하고 불확실한 상태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피터 팬 증후군을 겪고 있는 중이야."라고 우스갯소리로 했었던 말이 사실일 수도 있다.
일전에 언급했듯이 '놀토'라는 개념이 생기고 사라짐을 목도할 정도의 나이이지만, 나는 이번 여름에 곰돌이 티셔츠를 네 장이나 구입했고, 그전에도 곰돌이 티셔츠가 있었다.
곰돌이만 있던 것이 아니라 강아지와 고양이 티셔츠도 입었었고, 나이에 맞기 입고 행동하라는 말을 종종 듣곤 했다.
앞으로는
또렷하게 '더욱 말을 안 듣는 아이'가 되려고 한다. 하면 안 되는 것을 하지는 않겠지만 시키는 대로 하지 않으며, 하지 말라고 해도 하는 아이가 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물론 직장에서 업무를 볼 때와 같이 더불어 살아갈 때 그런다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그저 세상이 암묵적으로 규정한 살아가는 방식과 같은 강압, 강요와 같은 시선으로부터 해방되겠다는 말을 하고 싶다.
내가 어떠한 결정을 내려서 이직을 하거나 직업을 바꾸든 간에, 그 나이에 곰돌이 티셔츠를 입든 간에 허락을 받는다거나 협의를 하지 않으며, 내가 결정하고 눈치 따위는 보지 않고 이행하며 살아가고자 한다.
더욱 또렷이 그러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내 인생의 주인이자 주체는 자신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생각들이 아직 자아가 불안정하고 불확신한 상태라고 정의가 내려진다면, "그러든가 말든가"라고 말하며 나 다운 삶을 살아가려고 한다.
아닌 말로, 내가 언제 그렇게 말을 잘 들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