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이켜보면 '시합'이라는 행위를 그렇게 좋아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하지만 친구들과 어울려 놀다 보면 시합을 할 때가 많았다.
물가에서는 잠수 시합을, 운동장에서는 달리기 시합을 했었는데 잠수 시합은 비가 그친 여름날에만 유행했던 시합이었지만 달리기 시합은 매번 운동회 때마다 '계주 대표'라는 타이틀이라는 어떠한 결과물과 연관된 사항이었다.
팔씨름 시합 또한 어린 소년들 사이에서는 누가 더 힘이 세고 싸움을 잘 하는지에 대해 어느 정도 반영이 되는 부분이었지만, 이 결과는 절댓값을 부여할 수 없는 사항이었다.
나는 수영을 할 줄도 몰라 잠수를 오래 할 수 없었고, 느린 대신에 오래달리기를 잘하는 편이었다. 팔씨름은 거의 이겨본 역사가 없는 사람이었다.
시합에 관하여 - 2
시간이 흐르자 '어떤 시합'에 관심이 없는 이들이 나타났고 나도 그런 부류에 속했다. 모의고사 등급에는 관심이 없었고, 당연히 누구나 들어볼만한 대학에 입학할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은 굳이 대학에 왜 가야 하는지에 대한 의문으로 바뀌었다.
시험 기간만 되면 누가 도서관에 일찍 가서 오랫동안 있는지 시합을 했었다. 그 시합의 결과는 성적표로 나온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결과물에는 관심이 없었다.
돌이켜보면 그 시합의 본질은 오랫동안 앉아서 집중하는 것에 있었지만, 나와 몇 친구들은 그저 일찍 일어나서 시합에 승리했다는 성취감을 가지고 즐겁게 놀기 바빴다.
언젠가는 누가 그날 하루 동안 가장 적게 공부를 했는지에 대한 시합도 했었는데, 10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기술 가정' 교과서 두 페이지를 읽은 내가 1등을 했다.
점점 뒤끝이 생기는
시간이 흘러, 돌아보니 하나도 신경 쓰지 않았던 학벌부터 연애 횟수와 연애 기간에 대한 사회적 관점과 숫자적인 기준을 둔 시합이 진행되고 있었다.
더 나아가서는 누가 더 힘든 곳에서 일을 했는지, 누가 더 많은 돈을 버는지에 대한 시합도 자연스럽게 진행되고 있었으며, 누가 더 불행한지에 대한 시합에서 이겼을 때에는 승리의 성취감과 우울함이 동반했다.
누가 오래 버티나 - 바보 같은 시합
이상한 시합이 있다. 불행하다는 것을 뻔히 알지만, 살아가기 위해 오래 버티는 시합이다.
물론 버티면 물리적인 보답과 다음을 기약할 수는 있다. 웃긴 것은 세상은 이 바보 같은 시합에서 성적이 좋은 사람을 선호하고, 인정한다.
지극히 주관적이지만, 내 눈에는 바보같이 보인다. 그 또한 절대적으로 명확한 결과를 가져다줄 수도 없거니와 한계가 있는 결과물을 위해 더 오래 불행해야 하는 시합에서 승리를 하려고 하며, 승리에 대해 자부심을 느끼기도 한다는 것이다.
또 주관적인 생각이지만, 오늘이 행복해야 내일도 행복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시합을 할 시간에 다른 길을 찾거나 개척하는 방법이 맞는 사람도 있을 텐데, 세상은 그렇게 바라보지 않는다. 그저 이 바보 같은 시합에서 이긴 사람을 인정하고, 원한다. 그리고 충고이자 조언이라는 이름을 빌려서 권장한다.
물론 이 시합이 절대적으로 불필요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이 시합에서 승리하여 원하는 결과를 얻는 사람들도 많고, 그들에게는 필요하고 중요한 과정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절대적이라고 생각할 수도 없으며, 누군가에게 강요할 필요도 없다. 그리고 이 시합을 원하지 않는 사람을 무시하거나 평가할 자격 또한 없다고 생각한다.
기권
기권이다. 이 바보 같아 보이는 시합이 정답일 수 있지만, 나에게는 오답인 것 같다. 그리고 이 시합을 바보 같다고 생각하는데 계속해서 이행하는 것 자체가 더욱 바보 같은 행위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