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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심한 광대 Mar 13. 2023

내가 잘하는 것을 찾은 것 같다 - 1

운명처럼 만나게 된 직업

  어쩌다 보니 요리사


  공부에 흥미도 없었지만, 대학에 가야 하는 이유를 찾지 못했다. 꼭 가야만 한다는 정서 자체를 이해할 수 없었다.

  결국 정서에 이끌려 그나마 공부를 적게 하고 갈 수 있는 방법을 찾았다. 그래서 나는 남들이 모의고사와 내신 문제를 열심히 풀 때, 나는 문제를 빨리 푸는 연습을 했다.


  분명 그 방식은 정말 편한 방식이었다. 하루에 한 시간 이상 공부를 하지 않아도 됐으며 단순하고 지루한 면은 있지만 큰 스트레스를 받지도 않았고, 놀 수 있는 시간도 많이 생겼다.


  고3 여름방학, 불현듯 더 이상 대학에 꼭 가야 한다는 정서에 이끌리지 않게 되어 대학 진학에 조금도 노력할 필요와 이유를 찾지 못했고 독서실에서 나와 대학에 가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대학 자체를 가지 않는 것은 당시에는 더욱 받아들여지지 않는 정서였고, 나는 '놀러'라도 대학에 진학할 수밖에 없어서 그해에 가장 유행하고 인기가 많아 보였던 '호텔관광경영과'가 있는 학교를 찾아 원서를 뿌렸다.


  그렇게 예비 호텔경영 학도였던 나는 미리 경험을 쌓아보기 위해 친구들과 씨푸드 뷔페에 아르바이트 면접을 봤다. 


  하지만 당시 면접을 보았던 주방장은 나에게 조리복이 잘 어울릴 것 같다며 나를 주방으로 안내했고, 나는 알량한 저항 끝에 조리복을 입을 수밖에 없었다.



  어릴 때는, 아마도(떡볶이를 만들어 먹던 중학생)


  조리복을 입기로 하고 나서 주방장의 안목에는 내가 요리사로서의 어떤 자질이나 재능을 한순간에 포착이 되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성인이 되기를 손꼽아 기다리던 나는 그 순간 과거를 회상했다. 배가 많이 고팠고, 떡볶이가 격하게 먹고 싶었다. 맞벌이로 바쁜 일정을 소화하시던 부모님의 퇴근 시간을 기다리기에는 수중에 용돈도 없었고 인내심도 부족했던 나는 냉장고에서 떡과 어묵, 고추장과 설탕 등 머릿속에 떠오르는 각종 재료를 꺼냈다. 그리고 가스 불을 켰다.


  형과 떡볶이를 먹는 모습을 본 부모님은 웃음을 터뜨리며 떡볶이를 입에 넣고는 미소를 지었다. 어묵이 많이 들어간 것 빼고는 나쁘지 않다는 평이었고, 나와 형은 이미 맛있게 먹고 있었다.  


  나는 자격이 없나 보다(느린 사람)


  막상 일을 하다 보니 꾸중을 많이 들었다. 한 번에 많은 음식을 조리 하라고 지시를 했지만 나는 어느 정도 이상의 양을 조리하기 무서워했다.


  그 두려움을 이겨내려는 도전 정신과 경험치의 부족, 빠르지 못한 내 손놀림이 문제였다. 선배들의 입장을 상상해 보았을 때, 가장 큰 이유는 역시 빨리 움직이지 못하는 내 신체에 있었다.


  달리기만 느린 것이 아니라, 애초에 움직임이 해당 직업에 어울릴 정도로 빠릿빠릿하지 못했던 것 같다.


  자기변호를 하는 것은 아니지만, 나는 달리기도 느렸고 주방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빨리 움직이라고 매번 꾸중을 듣는 사람이었지만, 어릴 적 피구를 할 때에는 공을 그렇게 잘 피했다.


  다른 이유로


  그때나 지금이나 그사이의 나는 꾸중 한두 번에 주눅 드는 캐릭터가 아니다. 하지만 나는 입학 직전까지로 약속했던 시간보다 조금 일찍 아르바이트를 그만두었다.


  꾸중이, 일이 싫어서가 아니었다.


  처음에는 다 그런 거라고, 원래 혼나면서 배우는 거라고, 잘하고 있다는 위로에도 나는 빠르게 움직이지 못한다는 핑계로 사랑의 실패한 현실을 도피했다.


  그렇게 나는, 어쩌다 성인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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