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만난 직업, 좌절
다시 요리사
성인이 된 나는 합격한 호텔관광경영과에 입학을 했다. 레스토랑 수업을 들을 때면 일전의 주방 아르바이트 경험이 수업 내용을 이해하는 데 어느 정도 도움이 되었다.
슬기로운 알콜생활 도중에 처음으로 긴 방학을 맞이하게 되었다. 당시의 기억으로는, 그러니까 그 당시 모든 대학생이 그랬는지 다니던 학교와 학과의 정서가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토익점수나 자격증 취득, 대외활동을 하는 문화나 분위기와는 거리가 멀었다.
돌이켜보면 대외활동의 개념조차 알지 못했고, 유일하게 조주기능사라는 관련 자격증이 하나 있었지만, 실기시험에 떨어진 이후로 도전하지 않았다. 토익 점수 또한 나는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사실 지금도 개인적으로는 토익 점수가 있으면 좋은 것이지 필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저 방학이 되면 아르바이트를 해서 부모님께 용돈을 받지 않고 드리는 모습이 최고인 줄 알았기에, 본가로 올라와서 아르바이트를 구했다.
그 두 달이라는 시간 중에 한 달은 씨푸드 뷔페에서 서빙을 했지만, 3주 정도를 푸드코트에서 오므라이스와 파스타, 피자를 만들었다.
어쩌다 보니, 다시 요리사가 되었다.
한 번에 배우는 사람
푸드코트에는 친구들과 손을 잡고 면접을 보러 갔다. 친구가 일자리를 구했고 같이 아르바이트를 하고 싶어서 연락을 해왔는데, 그저 반찬 담기와 설거지만 하면 된다고 들었다.
면접을 보러 갔더니 점장이라는 사람은 밥을 먹었냐고 물었고 우리는 아직 먹지 않았다고 했다. 그러더니 냉면, 찌개, 오므라이스, 볶음밥 등 다양한 메뉴 중에 먹고 싶은 메뉴를 물었고 우리는 각자 원하는 음식을 말했다.
밥을 다 먹으니 점장은 우리를 탈의실로 데리고 가서 유니폼을 주었다. 이제 막 성인이 된 소년들은 이미 뇌물을 받은 터라 자연스럽게 옷을 갈아입었다.
나는 파스타와 오므라이스, 피자를 파는 파트로 배정을 받았다. 손님이 많지 않은 시간이면 나와 함께 일하는 요리사는 심심하지 않냐며 음식을 만드는 방법을 알려줬고, 나는 그것을 한 번에 따라 했다. 그래서 그 요리사는 나에게 재능이 있다며 기뻐했다.
그렇게 바쁜 시간이 지나고, 나와 친구들은 아르바이트를 하기로 약속이 되었다. 그리고 나는 설거지와 반찬 세팅을 주로 하는 친구들과 다르게 음식을 만드는 요리사가 되었다는 생각에 자부심을 느꼈었다.
많은 것을 할 줄 아는 사람
공부에 흥미가 전혀 없던 나는 호텔경영 수업을 1년을 듣고 나서 아예 그 전공에 대한 흥미조차 잃었다. 조기 취업을 나가서 돈을 벌면서 대학을 졸업하는 것이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라고 생각했던 나는 프렌차이즈 씨푸드 뷔페에 막내 직원으로 취업을 했다.
여담으로 개인적인 직업에 대한 관념을 말해보자면, 소득이 발생하지 않는 상황과 특정 직업을 제외하고는 금전적인 대가를 받고 하는 일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조금 더 양보하자면 서류상에서 정규직이라고 통용이 된다면, 그것은 직업이라고 생각한다.
많은 사람들이 호텔에서 요리를 하지 않으면 직업으로 인정하지 않고 그저 식당에서 아르바이트를 한다고 치부하고는 한다. 그것은 엄청나게 무지하고 무식한 발상과 언행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나도 어느 정도 모순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다. 내 기준에서 요리사의 기준은 파트타이머 아르바이트까지는 아니어도 직업으로 불릴 만큼의 시간과, 즉 다른 요리사들과 유사한 시간을 투자하고 대가를 받으며 직업 윤리를 가지고 일을 한다면 호텔이 아니어도 당연히 요리사가 직업인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일용직이더라도, 요리사로서의 경력과 실력을 가지고 어느 정도의 능력과 노동력을 제공한다면 그 또한 요리사가 직업인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어떻게 보면 파트타이머부터 시작해서 조기 취업을 한 나는 서류상에 정규직으로 통용된 이 시점부터 공식적으로 막내 요리사가 된 것이었다. 당시 나는 여전히 한 번 만드는 방법을 알려주면 바로 습득하는 그런 요리사였다. 그래서 나는 양식 파트에도, 일식 파트에도 다양한 음식을 만들어 낼 줄 아는 유능해 보이는 요리사였고, 막둥이로서 어느 정도 이쁨도 받았다.
누군가는 슈퍼바이저 같다며, 나중에 슈퍼바이저로 전향할 생각이 없냐고도 했다.
슈퍼바이저 : 요식업에서의 슈퍼바이저는 메뉴 개발 및 신입 사원 및 점주에게 음식 제조 방법을 교육하는 업무도 맡고 있다.
그러나, 느린 사람
그러나, 나는 느린 사람이었다. 주방 현장에서 많은 메뉴를 소화할 수 있는 능력도 중요하지만, 더욱 중요한 능력은 빠른 시간 내에 재료 준비와 음식 제조 업무를 처리하는 능력이다. 당시의 나는 선배 요리사들은 자신의 업무를 빨리 끝마치고 내 업무를 뺏어 하면서, 옆에서 핀잔을 주었다.
지나고 나니 어느 정도 당연한 수순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당시에는 많은 스트레스를 받았다. 결국에는 돈을 지불한 손님들이 음식을 최대한 적게 기다리게 하거나 기다리지 않게 하는 업무가 요리사의 주된 업무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많은 시간이 흘러, 그렇게 공격적이고 자극적으로 훈련을 시키지 않는 방법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지만 투박하고 까칠한 교육 방침이 필요한 상황과 사람이 있다고도 생각한다. 그리고 그 시절의 나는 투박하고 까칠한 교육 방침을 고집하는 선배들 밑에서 일을 했었다.
사실은, 당연한 1년 차 초보자
많은 시간이 지나, 다시 요리사로 복직하거나 이제 막 시작한 요리사들을 보면 드는 생각이 있다. 어떠한 직업을 이제 막 가지게 된 초보자는 대부분 능숙하지 않은 것이 당연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당시의 1년 차 초보자 요리사였던 나와 1년 차 요리사의 과정을 밟고 있는 누군가는 자신의 업무 능력에 회의감을 가질 수 있다.
다른 직업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누군가는 답답하다고 핀잔을 줄 수 있고 그 핀잔을 받는 대상일 수 있다.
적어도 초보자라면, 회의감에서 이겨내기를 바란다. 초보자가 아니어도 스타일이나 환경과 정서가 안맞을 수 있는 것이고 초보자는 당연히 미숙한 것이다.
이런 문장을 적어 내려가는 나 또한 시간이 지나 경력을 가지고 있어도, 회의감이 들 때가 종종 있다. 나 또한 어느 직업을 다시 가져도, 요리사로 살아가더라도 그 회의감을 이겨내려고 할 것이다.
옆에서 핀잔을 주었던 선배에게 일식 요리를 더 이상 할 수 없을 것 같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 선배는 평소 업무시간과는 다른 온도와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기술적인 부분은 시간이 해결해 줄 것이니 포기하지 않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