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가장 바쁜 존재

일지도 모르는 백수의 바빴던 근황

by 소심한 광대

이사 준비와 명절, 그리고 이사


어렸을 때부터 이사를 참으로 많이도 다녔다. 의무적으로 속한 집단에서는 적어도, 의무적으로 4개월에 한 번씩 이사를 했었고, 자취생활을 할 때에도 이사를 했었던 터라 아직 어리다고도 할 수 있는 나이에 벌써 초본이 뒷장으로 넘어간다.

이번 이사를 하면서 든 생각인데 가정집, 자취방, 의무적 등의 지난 이사들에 대한 스트레스는 시간이 흘렀기 때문에 망각했을 거라는 생각도 해보았지만 이번에는 차원이 다른 스트레스를 부르는 이사를 하게 되었다.

본격적인 이사 당일날 친구 S군이 없었다면 모든 것을 집어던졌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외국의 어떤 학자들은 '이사'가 인간이 일상에서 살아가는 동안 서른두 번째로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느낀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의견에 충분히 공감하면서도 반대하는 것이 충분히 스트레스를 받았으며, 너무 죽을 것 같이 힘들다는 생각도 했지만, 막상 끝나니 언제 그랬냐는 것처럼 홀가분해지기도 했다.

정말 다행인 것은 그나마 백수였기 때문이다. 결국에는 백수이기 때문에 바쁜 가족들을 대신해 이사를 준비할 수 있었고, 끝까지 마무리할 수 있었다.


한국의 대표적인 스트레스 요소인 명절 또한 피할 수 없었다. 백수이든 아니든 피할 수 없었다고도 생각되지만, 백수가 아니었다면 피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결국 백수이기에,

"다녀야죠."

"아직 없어요."

"아직 연애도 못 하고 있는데요, 뭘."

"내가 알아서 할게."

이러한 대답들을 한 것 같았다.


백수였기 때문에 보호받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백수이기 때문에 자발적으로 더 열심히 설거지를 했고, 더 열심히 만두를 빚었으며 더 맛있게 대게 내장에 밥을 볶았다.


아이러니


아이러니하게도 백수인 나는 정말 바빴다. 심지어 단편 소설 몇 편도 읽을 시간도 없이 바빴다. 뭘 했는지도 모르겠지만 밥을 먹어야 할 시간이 되었고, 조금이라도 시간이 나면 '토끼의 주식'에서 스트레스를 받기 바빴다.

인류애가 떨어지는 것을 느낄 때쯤이면 일정을 조율하다가 잠이 들기도 했다. 일정을 생각하다가 머리가 꼬여서 타이레놀을 먹기도 했고, 그저 이사 일정까지라도 빨리 끝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은 - 1


더 노력하거나 더 합리적인 판단을 했다면, 글을 쓸 수 있었고 읽을 수도 있었으며 더 많은 곳에 이력서도 넣을 수 있었다. 하지만 정신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힘들었다.

애초에 힘들었는데 더 힘들어진 것 같기도 하지만 그것은 나 자신을 돌아봐도 핑계였다. 명절 끝나고 새롭게 시작하자는 다짐을 방패로 삼아 당장에 닥친 일정 이외의 것을 조금이라도 덜 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사실은 - 2


나는 백수가 아닐지도 모른다. 그저 바라보는 시선의 차이에 따라 프리랜서일 수도, 백수일 수도 있는 취준생이다.

그 이유는 나는 정기적이지는 않지만 아주 가끔 12시간 동안 초밥을 만드는 요리사가 되기도 한다. 덕분에 아직까지는 카페에 가거나 친구들을 만날 때 부담스럽지는 않다.

그렇다고 프리랜서라고 하기에는 주말 아르바이트라고 부르기도 어려울 만큼 일정이 불규칙적이다. 그냥 어쩌다 서로 시간이 맞으면, 누군가 아프면 대신 나가 주는 수준에 불가하기 때문에 나는 나 자신을 백수 상태인 취준생으로 바라보고 있다.


그리고 면접을 봤던 회사에 전화를 해서 백수의 길로 되돌아갔다. 다급하게 띈 발걸음에 또다시 넘어질까 두려웠기 때문이었다.

어느 정도는, 면접을 보고도 느낌이 조금이라도 쎄하면 안 가기로 다짐했기 때문이다.



지난날들은


내가 어떻게 그렇게 여러 일정들을 소화했는지 모르겠다. 입시를 준비할 때는 직장생활과 입시 준비를, 학기 중에는 학업과 주말 아르바이트를, 방학 때는 직장생활과 나름 계획적인 독서를 했는지 지금의 내 자신과 비교하자면 현재의 내가 부끄럽기도, 한심스럽기도 하다.


그렇다고 마음을 다잡고 요리사를 직업으로 두고 이직과 직무 변경을 준비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중간에 멈췄던 자격증 준비도 다시 시작하고 하나씩 준비하고 정리하는 것이 가장 효율적이라는 판단을 내렸기 때문에, 글을 읽고 쓰기 위한 물리적인 시간과 경제활동을 동시에 버는 직업을 한 번 더 가져보기로 했기 때문이다.


아마도


이 근래처럼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는 바쁜 백수 생활이 될 것 같다고 예상한다. 그리고 그렇게 살아갈 것이라고 다짐도 해본다.


그렇다고 다급하게 발을 구르며 우왕좌왕한다는 것은 아니다. 그저 무기력해지고 게을러진 내 생활패턴과 마인드랑 합의를 보며, 신중하게 판단해보는 시간을 더 가져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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