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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여행을 마치고

by 교육혁신가 이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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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이 끝났다. 이제 곧 비행기가 이륙한다. 잠에서 깨면 긴 꿈을 꾼 것만 같겠지. 무작정 떠난 3주간의 유럽여행. 무한한 자유 속에서 새로운 세상을 경험했다. 일단 지금은 해냈다는 안도감이 몰려온다. (여행기보단 생존기에 가까웠을 수도)


여행을 통해 깨달은 게 많다. 역시 세상은 넓고 배울 건 많다는 것. 예술, 역사, 종교, 언어, 문화 등 배우고 싶은 분야가 많아졌다. 이렇게 할 게 많은 세상을 살아가면 참 재미있겠지. 내가 벌써 22살이나 되었다는 것, 나를 자주 돌보고 만나는 게 중요하다는 것도 느꼈다. 잊고 있던 어릴적 꿈도 떠올랐다. 그리고.. 영어 공부도 매우 중요하다.


앞으로 인생에서 또 이렇게 자유롭게 여행할 수 있을까. 실컷 잠자고, 기분 내키는대로 떠나고, 마음껏 먹은 시간. 내 인생에서 참 행복 시기로 기억될 것 같다. 그곳에서 환대를 받은만큼 환대하는 삶을 살고 싶다. 이제 소중한 추억을 간직한 채 다시 현실을 살아가야겠다.


● 영국 런던: 모던함과 세련됨을 다 갖춘 도시. 첫 여행의 설렘이 가득 담긴 곳이다. 소문으로만 듣던 명소를 만났을 때 느낀 감동을 잊을 수 없다. 버로우마켓에서 아침을 먹고, 템스강을 따라 걸으면서 하루가 시작된다. 역사적인 유적지와 명소가 많다. 아직도 하고 싶은 게 너무나 많이 남았다. 기회가 된다면 런던에서 조금 더 오래 살아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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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랑스 파리: 낭만과 예술이 가득한 도시. 곳곳에 미술관과 박물관이 많아 마치 파리 자체가 거대한 미술관, 박물관 같다. 센 강을 따라 걸으면 거리 곳곳에서 명소를 발견할 수 있다. 특히 저녁의 파리는 더욱 아름답다. 날 두 번이나 울린 곳이다. 에펠탑 야경을 바라보며 그저 멍 때린 시간이 기억에 남는다. 앞으로 살면서 누군가와 함께 오고 싶은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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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위스 베른: 아름다운 풍경에 힐링되는 도시. 관광객이 적고 자연 친화적인 시골같아 쉬어가기 좋다. 에메랄드 빛 아레강을 품에 안고, 주황색 지붕으로 덮힌 베른의 풍경이 아직도 눈에 아른거린다. 그 위를 패러글라이딩으로 날아다녔다. 정말 꿈만 같은 순간이다. 관광명소나 미술작품이 없어도 풍경 자체만으로 충분히 가볼만한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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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일 뮌헨: 여유로운 일상의 도시. 도시 분위기는 그냥 우리 동네 느낌이다. 풍경은 그동안 유럽 국가들의 특징을 모아놓은 것 같다. 경유지로써 짧은 시간 머물렀지만 여유로운 시간 속에서 나를 만날 수 있었다. 거리를 매우는 집회와 행진을 보며 독일의 광장 민주주의가 무엇인지도 체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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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탈리아 로마: 고대의 역사가 살아 숨쉬는 도시. 거리 곳곳에서 2000년 전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마치 전설 속 장소에 있는 것 같다. 로마의 역사와 이야기를 알고 보면 더욱 풍성하게 배워갈 수 있다. 지중해의 맑은 물 속에서 즐기는 해수욕도 낭만 넘친다. 특히 골목골목에 즐비한 레스토랑은 맛있고, 싸고, 많고, 다양하다. 바티칸에 가면 성 베드로 성당에서 종교의 무게감을, 바티칸 박물관에서 예술의 장엄함을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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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문화 정리

● 유럽 음식이라고 해서 새로운 맛은 별로 없다. 식재료가 같으니 어떤 맛일지 예측이 간다. 식당 메뉴판에 원재료를 써 놓아서(Beef, Potato, Tomato 이런식으로) 메뉴 이름을 몰라도 예측해서 고르기 편하다.

● 유럽 특유의 식당 문화가 있다. 한국처럼 한 음식을 시키고 밑반찬이 나오지 않는다. 기본적으로 스타터, 메인, 드링크 세 가지는 시켜야 한다. 먼저 들어 갔을 때 인원 수를 알려주고 자리를 안내받는다. 메뉴판을 본 뒤 웨이터와 눈을 맞춰 주문을 한다. 중간에 웨이터가 맛있냐, 괜찮냐고 물어본다. 추가로 주문할 게 있으면 이 타이밍을 노리면 된다. 신기한 게 내가 음식을 다 먹으면 딱 맞게 다음 음식이 나온다. 아무래도 나를 지켜보고 있다가 타이밍을 맞춰 가져오는 것 같다. 처음 주분을 받은 분이 마지막 계산까지 나를 전담마크한다. 주문을 받거나 음식 나오는 속도는 느리다. 인내심을 갖고 기다리면 찾아오는데 먼저 다가가 주문한 적이 많다. 예의는 아니라고 한다. 레스토랑에는 사람이 많아서 엄청 분주하게 움직인다. 큰 쟁반에 여러 그릇과 잔을 담아 옮기는데 영 불안불안하다. 식사 후 기다리고 있으면 영수증을 가져온다. 대부분 서비스비(팁)가 10% 정도 포함되어 나온다. 종업원들은 대부분 무척 친절한데, 대접한다는 느낌 보다는 친구가 되려고 하는 느낌이다.

● 어딜가나 관광지에는 잡상인들이 많다. 마치 기생충 같다. 숙주에 붙어서 영양분을 빨아가는 모습이. 한두번이면 재미있게 넘기겠는데 관광하러 갈 때마다 나를 괴롭힌다. 심지어 꼬집거나 손을 꽉 잡은 적도 많아서 기분이 별로였다. 아무런 규제 없이 너무 당당하게 팔고 있다. 다 아프리카계, 동남아계 흑인들인데 다 같이 온 건지, 왜 이런 문화가 생긴건지 모르겠다. 그들 때문에 길거리 상인과 흑인에 대한 인식이 안 좋아지는 것 같다. 예전에 길거리에서 돈을 벌어볼까 생각한 적이 있는데 그랬으면 이들처럼 그냥 잡상인 정도로 비쳐졌을 것 같다. 창업을 위해선 수요를 파악할 뿐 아니라 기본적인 매너를 지켜야 한다.

● No English를 딱 두 번 사용했다. 바로 강도와 강매를 만났을 때. ‘영어를 못한다’는 No English라고 표현하는 게 좋다. I can’t speak English는 이미 그 말 자체가 영어이기 때문에 실감나지 않는다.

● 영국을 제외하면 영어를 사용하지 않는다. 영어를 사용하기도 하는데 뉘양스 차이가 있다. 미국식 영어보다 좀 발음이 센 느낌이다.

● 해외에서 픽토그램이 참 유용하다. 공항부터 식당, 화장실까지 픽트그램을 통해 정보를 쉽게 알 수 있다.

● 정보의 홍수시대다. 여행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건 무엇인가? 지식과 정보는 나중에라도 검색을 하면 그만이다. 중요한 건 느낌이다. 지금 이 순간에 느껴지는 느낌은 어디서도 구할 수 없는 귀중한 자산이다. 기록을 통해 느낌을 남겨야겠다. 잘 느끼는 법을 알 것 같다. 3인칭의 시점에서 나를 돌아보면 쉽다. 그동안 살아온 나, 앞으로 살아갈 내 삶 속에서 이 순간이 얼마나 값진지 느낄 수 있다. 또 누군가에게 설명하듯 느끼면 기억하기 쉽다. 안 그러면 그냥 멍 때리고 잊어버리게 된다.

● P형 여행을 보냈다. MBTI를 좋아하진 않지만, 나는 나름 J다. 그런데 돌아보면 이번 여행은 완전 P형 여행이었다. 여행지와 돌아올 때를 정하지 않고 무작정 해외로 떠났다. 처음 영국에 도착해서 머물고 싶을 때까지 있었다. 그 후 영국이랑 가까운 파리로 향하고, 이후 가까운 스위스, 독일, 로마로 이동했다. 버스표와 숙소 예약은 늘 떠나기 직전에 완료했다. 돌아오는 항공편조차 떠나기 5일 전에 예매했다. 그날 무엇을 할지, 무엇을 먹을지 기분에 따라 정했다. 미래를 모른다는 두려움과 초조함이 있었지만 가끔은 이렇게 기분에 따라 살아가는 것도 좋다.


여행을 통해 잃은 것

여행을 통해 잃어버린 것도 있다. 기회비용이라고 생각하자. 다음 번에는 잃지 않도록 꼼꼼히 챙겨야겠다.

● 돈: 살면서 다신 없을 과소비를 했다. 총 800만원 정도. 돈 걱정 없이 다녀오는 여행이라 정확하게 계산은 안 했다. 버는 건 어려운데 쓰는 건 쉽다는 걸 깨달았다.

● 연주 실력: 한동안 악기 연주를 안 했더니 손이 뜻대로 안 움직인다. 왼손 손가락의 굳은살이 없어졌다. 기타를 칠 때 오랜만에 그 고통을 느꼈다. 피아노도 익숙했던 주법을 잊어버렸고 미스 터치를 남발하고 있다.

● 운동: 몸무게가 2kg 줄었다. 헬스 때 무게도 두 단계는 떨어진 것 같다. 무엇보다 전완근 힘이 많이 빠졌다. 자꾸 몸에 힘이 안 들어가고 지치는 게 속상하다. 손바닥에 굳은살도 벗겨졌다.

● 흰 피부: 흰 피부가 검게 탔다. 아마 산타마리넬라 해수욕장의 햇살이 범인일 듯 싶다.


종합 소감

이 글을 쓰는 지금, 여행에서 돌아온지 일주일이 지났다. 지금은 입대하기 입대하기 직전 밤이다. 벌써 기억이 희미해졌다. 어릴 적부터 막연히 ‘어른이 되면 해외여행을 해봐야지!’하고 생각했다. 마침 작년에 직장에 다니며 돈을 벌었고, 올해 입대 전에 1달 간 공백기가 생겼다. 지금 아니면 또 언제 기회가 찾아올지 몰라 일단 무작정 떠났다.


여행 전 준비할 게 꽤 많았다. 여권발급부터 환전, 체크카드 발급, 국제 학생증 신청, 비행기 예약 등. 여행을 떠나서도 패스 예약, 관광지 예약, 이동을 위한 버스 예약, 숙소 예약 등 예약과의 전쟁이었다. 당시에는 너무 힘들었는데 지금은 해냈다는 뿌듯함이 크다. 앞으로 어딜 가서든 살아남을 수 있을 것 같다.


여행지는 어딜가든 배움의 장이다. 그동안 책과 영상으로 보던 것들이 실제 눈앞에 펼쳐질 때의 감격은 잊을 수 없다. 절대적으로 혼자가 된 그곳에서 오직 한 사람, 나를 발견한다. 과거의 나와 마주하는 일은 감격스럽다. 새로운 사람도 만났다. 두비이 국가대표 축구 선수, 하버드 대학생, 미국인 역사교육학과 친구, 별의 별 사람들을 만나 친구가 되었다. 예상치 못한 만남은 여행을 더욱 풍성하게 만든다. 돌아보면 기억에 남는 추억은 관광보다 예상치 못한 사건 사고다.


사실 여행기를 정리한 후에 소감을 조금 더 깊게 남기고 싶었다. 입대 때문에 시간이 없는 게 한이다. 제대 후 다시 여행을 떠날 것이다. 이번 기회로 여행의 맛을 깨달았다. 여행은 새로운 세상을 만나는 일이다. 이래서 다들 그렇게 여행이 좋다고 했구나. 군대 여행을 마치고 나면 익숙한 것들이 또 낯설어지겠지. 이 세상을 살아가고 싶어졌다. 사람으로 살아간다는 건 꽤 재미있는 일 같다. 세상은 넓고 배울 건 많다. 새로운 세상을 탐구하는 그 재미로 살아가야겠다. 나의 유럽 여행기를 여기서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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