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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isode 7: # 흑화 4화 5화

외톨이로는 만들지 말아 줘.

by 카테난조




Episode 7:

# 흑화 4화 5화





22. 모르는 번호다. 전화가 계속 울린다. 일부러 모른척한다. 처음 보는 번호지만 어디인지를 알아서다. 경찰서다. 아직 이중 계약서를 쓴, 나의 행위를 말하지 않아서 불안하다. 전세보증금을 사기당한 일보다 나의 행위로 처벌을 받지 않을까 하는 불안함에 신고하는 것을 꺼렸다. 아내는 여전히 주방에서 친구와 통화 중이다. 아내의 즐거움을 방해하고 싶지 않다. 혹시라도 타자 소리에 그녀의 즐거움이 깨질 수 있다. 노트북 전원을 켠 후 키보드에 손가락을 얹었다. 손가락은 살금살금 키보드 위에서 춤을 추었다.



타...아..닥, 타........아........악......닥,

타닥,.......,타닥.......,타..............아..........아....닥.

전세금 이중 계약서, 임차인도 처벌

전세보증금 사기, 이중 계약서 임차인 처벌






23. 검색어와 관련한 답변이 검정 티셔츠를 입은 어깨에 수북하게 쌓인 비듬처럼 포털 사이트에 널려있다. 어깨에 묻은 비듬을 털어내듯, 관련한 답변을 하나씩 클릭해 털어내고 있다. 갑자기 오한으로 온몸이 떨린다. 혹시라도, 노트북을 압수해 검색어를 확인하지는 않겠지? 비듬은 털어버리면 그만이다. 하지만 검색은 기록이 남아서다. 어쩌다가 이런 걱정을 하게 되었는가? 누가 보아도 영락없는[127] 범죄자의 모습이다. 당시에 그런 조건을 수락하는 게 아니었다. 아내에게 더는 무능한 남편으로 보이기 싫었기에, 그런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달콤한 중개업자의 제안에 넘어갔다. 만약, 업자의 제안을 거절했다면, 우리는 아마도 더는 서울에 살기 어려웠다. 아이들도 전학해야 한다. 이게 제일 문제다. 아내의 아이 교육은 정성을 넘어서 지독해서다. 아무래도 나에 대한 실망감을 아이에게 투영하는 듯하다. 하지만, 아내의 생각을 동조할 수는 없다. 아이의 교육만큼은 내 손으로 하고 싶다. 그럴 자신도 있다. 대한민국의 무용[128]한 제도권 교육 안에서 아이를 키우고 싶지 않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내 아이는, 나처럼 무능한 어른으로 만들고 싶지 않아서다. 난 말이다, 사회를 겪으면서, 개구쟁이 스머프[129] 중 하나인 ‘투덜이’가 되었다.



불만이 가득한 얼굴로

사람들에게 말한다.


“난 ○○ 싫어.”






24. 어려운 상황이 다가오면 입이 툭 튀어나온다. 투덜거리기 시작한다. 내 일이 아닌데도 말이다. 그리고 누군가 대신 이를 해결해 주기를 바란다. 그럴 때마다, 희한하게도 누군가가 다가와 이러한 문제를 해결해 주겠다고 약속한다. 물론, 그들의 감언이설[130]을 믿지 않는다. 다만, 탓할 누군가가 필요하다. 다만, 씹을 누군가가 필요할 뿐이다. 당연히 직면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할 것을 알아서다. 얼마나 겁쟁이인가? 그렇다고 해결책을 말할 용기조차 없다. 혹시라도 내 이야기를 듣고 따라 할까 두려워서다. 그들의 인생을 책임지기가 싫어서다. 이런 마음으로 선생질을 하고 있다. 실체가 드러날까, 추악한 모습이 세상에 낱낱이 드러날까, 너무나 무섭다. 자기 생각도 떳떳하게 말하지 못하면서, 부딪쳐 스스로 깨닫는 게 좋다고, 인생은 스스로 책임지라고, 보기 좋은 말로 애써 두려움을 감추려 한다. 이 얼마나 무책임한 행동인가? 오늘도 비난할 누군가를 하이에나처럼 찾아다닌다. 문득, 아이를 병원에서 처음으로 품었을 때가 생각난다.



콩알탄 정도 크기의 손으로 내 손가락을 힘겹게 잡은, 은하계에서 유일하게 나를 닮은 이 생명체를 바라본다. 이 생명체가 앞으로 만날 세상의 어두운 면을 최대한 늦게 알았으면 한다. 세상의 법칙을 빨리 만나서 아빠의 상황을 이해하는 조숙한 아이로 살아가기를 바라지 않는다. 아이가 세상의 부조리로 불편한 습관이 생겨 삐딱한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지 않았으면 한다.[131] 삶의 방향을 몰라서 슬퍼하지 않았으면 한다. 네가 태어난 이유가 타인이 출제한 세상의 정답을 찾는 행위가 아녀서다. 단순하고 자극적인 세상의 즐거움에 빠져서, 천천히 달아올라 어떠한 재미보다 강렬한 온기를 지속하는 독서의 즐거움을 늦게 깨닫지 않았으면 좋겠다. 마지막으로 칠흑 같은 어둠이 찾아오더라도 하나님을 의지해 담대하게 나아갔으면 한다.



내 아이는 적어도

나와 다른 방향으로 걸었으면 한다.


대중에 섞여

적당히 비난하며 살아가는

적당하게 똑똑하게 보이는

그런 어른이 되지 않았으면 한다.

아빠는, 아빠는 말이다.

아빠가 참 싫구나.






25. 하지만 아내는 나의 교육관을 귓등으로도 안 듣는다. 그녀는 ‘인터넷’이라 불리는 전지전능한 신을 믿는다. 인터넷을 집단지성[132]의 대표적인 예시라 믿어서다. 아내는 다수의 사람이 모여 서로 협력할 때 얻게 되는 시너지 효과를 강조한다. 즉, 다수의 힘이 소수를 압도한다고 생각한다. 집단지성을 맹신하는 아내이기에 무엇을 시작하기 전에 주위 사람에게 의견을 물어본다. 그 주위 사람 중 나는 없다. 자기 자식 교육 문제를 나보다 다른 사람 말을 따른다는 게 이해가 가지 않는다. 심지어 난 철학을 가르치는 강사다. 사회에서 말하는 물리적인 성공을 하지 못해서일까? 그녀는 내 교육관을 시대에 뒤처진 고리타분한 유물로 취급한다. 그렇다면 그녀의 조력자는 누구인가? 그렇다. 인터넷이다. 지라시에 적힌 신뢰성 없는 두루뭉술한 의심은 떠돌다가 대중의 기대와 맞물려 산처럼 커진다. 그리고 의심은 사실로 변한다. 인터넷의 떠도는 공신력이 있다고 믿는 의견의 실체가 대부분 이렇다. 물론 인터넷의 순작용을 모른 척하는 게 아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인터넷이 세상에 출연한 후, 무엇이 사라지는지를 고민하지 않는다. 난 인터넷의 출현이 달갑지 않다. 인터넷으로 잃어가는 아날로그의 소중함을 그리워해서다. 아날로그의 소중함은 느림의 가치다. 모든 게 순서가 있다고 말해주는 정도의 가치이다. 선배와 후배가 경쟁적인 관계가 아닌 서로 협력하여 조화를 이루는 화합의 가치이다.



인터넷은

느림의 가치,

정도의 가치,

그리고 화합의 가치를

사라지게 한 주범이다.


분쟁과 파멸로

사회가 성장할 수 있다면

잠시 멈추는 게 좋지 않을까?






26. 강변역 포장마차에서 소주 한 잔에 취해 큰 소리로 떠들던 효상이의 비밀 이야기가 떠오른다.



“승기야, 우리가 386 세대라면, 회사 그만두고 글을 쓰는 멍청한 짓을 하지 않았을 거야. 초등학교 시절, 아, 우리는 국민학교 시절이지? 하하하, 하여튼 그때 방학 숙제로 원고지에 글짓기했던 것 기억나지? 빨간색 네모 칸에 맞춤법과 띄어쓰기를 생각하며 힘들게 한 자 한 자 적어갔던 그 시절 말이야. 만약 그 시절에 글을 쓴다고 생각하면……. 진짜 시작할 엄두[133]조차 나지 않아. 부끄럽지만, 아직도 띄어쓰기와 맞춤법을 잘 몰라. 사실 몰라도 되거든. 인터넷에서 맞춤법 검사를 다 해주는데, 굳이 이를 따로 공부할 이유가 뭐가 있겠어? 디지털화의 치명적 단점이지. 난 인터넷 도움을 받은 반쪽짜리 작가라고. 하하하 방금 한 말은 비밀이다. 쉿.”






27. 효상이는 인터넷 도움을 받은 반쪽짜리 작가라 말한다. 부족함을 알고 있는 효상이를 누가 뭐라고 할 수 있을까? 오히려 솔직하게 부족함을 이야기하는 그의 용기가 부럽다. 비록 인터넷의 도움을 받더라도, 자기가 무엇이 부족하고 무엇을 원하는지 정확하게 알고 있지 않은가? 나는 두려워 맞서기를 거부했지만, 효상이는 세상과 맞싸우는 중이다. 그것만으로도 효상이의 결정을 존중한다. 다만, 효상이의 소설을 읽지는 못했다. 출간하지 않아서다. 회사를 그만두고 글을 쓰겠다고 결심한 순간부터 지금까지 효상이는 글을 쓴다고 말한다. 시간이 꽤 흘렀다. 효상이가 자기 결심에 마침표를 찍기를 조용히 응원한다. 효상이의 비밀 이야기처럼 인터넷은 모든 이의 지적 능력을 순간적으로 향상하게 했다. 아내가 인터넷을 집단지성의 집약체라 믿는 이유다. 사람들은 이를 장점이라 생각하지만, 이 저주받을 능력으로 사회는 불신으로 가득 찬 디스토피아가 되어 간다. 순간적으로 지적 능력이 향상해 모두가 똑똑한 사람이 된다면 모두가 전문가처럼 느껴져서다.



전문가의 조언은 믿지 않으면서

인터넷의 조언은 신뢰하는 사회


전문가의 말은 비웃으면서

그들처럼 되려고

제도권 교육을 맹신하는

모순적인 사회


대한민국의 현주소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지금은 인터넷의 힘을 믿어 보자.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어서다. 관련한 질문과 비슷한 모든 답변을 찾아 읽는다. 불행 중 다행인가? 다들 비슷한 이야기를 한다.



"이중 계약서 관련해, 임대인에게 누락한 임대 소득을 추진한다."

"임차인은 계약서에 쓰인 금액 이외의 보증금 또는 세액 공제를 받을 수 없다."






28. 전세 사기를 당하면, 보증금 반환 청구 소송이 있다고 한다. 그런데 난 여기에 속하는지도 확실치 않다. 이런 경우는 중개업자가 임차인을 속여 전세 계약한 후, 집주인과 월세로 계약해야 한다. 비슷한 사례이지만 내 경우와는 다르다. 난 전세금을 줄이려고 이중 계약서를 작성해서다. 더군다나 그 조건으로 전입신고를 하지 않았다. 집주인이 퇴거 상태가 아님에도 전입신고를 할 수 있을까? 전입신고를 바로 했다면 전세 사기에 당했다는 것을 바로 알았을까? 계약 당시에는 궁금해하지 않았는데, 전입신고를 1년 후에 하는 게 가능할까? 도대체 뭐가 뭔지 모르겠다. 인터넷 검색을 통해 얻은 다양한 답변을 읽을수록 꼬일 대로 꼬인 뇌가 밧줄로 있는 힘껏 조여 터지기 일보 직전이다.



옳고 그름은 없는


신뢰하기 어려운

수많은 다름이 모인


수많은 다름을

판단할 능력이 없음에도

판단을 강요하는


이 쓸모없는 시스템을

집단지성이라 믿는

아내의 속을 알다가도 모르겠다.



물끄러미 주방에 있는 아내를 바라본다. 통화 삼매경에 빠진 아내의 웃음소리가 들린다. 주방에서 울려 퍼지는 아내의 행복한 웃음소리가 나를 더욱더 불안하게 한다. 깊이를 알 수 없는, 살짝 얼어 있는 시꺼먼 호수의 한가운데로 아내를 내몬 기분이어서다. 혼자 고민한다고 답도 없다. 전문가인, 변호사에게 묻는 게 빠르다. 더는 생각하지 말자. 너무 피곤하구나. 너무나 피곤해. 오늘은 여기까지.






“안녕하세요, 부동산 전세 사기 관련해 궁금한 게 있어서요. 혹시 통화 가능할까요?”

“네 말씀하세요, 어떠한 일로 문의하셨나요?”



29. 변호사와 통화로 그간 있었던 일을 간단하게 설명했다. 경찰서에서 형사와 이야기를 나누었던 때와는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형사는 담담한 어투로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형사는 무거운 분위기를 환기해 애써 위로하려 하지 않았다. 오랜 경험에서 나온 노하우였을까? 당신이 겪은 상황은 아주 고통스럽고 괴로운 일이기에 이 상황을 최대한 심각하게 바라보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변호사가 나를 대하는 분위기는 조금 달랐다. 아니다. 상반된 느낌이다. 변호사는 내가 겪은 상황을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 말하며, 밝은 목소리로 최대한 나를 안심시키려 했다. 사건은 하나인데 접근하는 방법도 바라보는 시각도 너무나 다르다. 이 역시 오랜 경험에서 나온 노하우일까?



“승기 님, 그런 일이 있었구나. 매우 속상했겠어요. 결론부터 말씀하면, 소송을 통해 집주인으로부터 전세금을 돌려받을 수 있어요. 그리고 승기 님은 이런 일이 처음이라 당혹스럽겠지만, 이쪽에서는 빈번하게 일어나는 사건이라서요.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아요. 제가 또 이쪽 분야 전문가예요. 연락 잘하셨어요. 그동안 많이 힘들었죠? 앞으로는 저와 상의하면 될 것 같아요. 그런데요, 승기 님, 너무나 죄송한데요, 지금 다른 클라이언트와 미팅 중이라, 혹시 시간 될 때 사무실로 방문 가능할까요? 승기 님은 내용증명을 받은 상황이라 상담을 바로 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언제쯤 방문할 수 있으세요?”






30. 하이톤의 당찬 목소리를 가진 변호사와 통화로 머리카락과 각종 이물질로 꽉 막힌 배수구가 뚫어진 기분이다. 혼자서 속 끓였던 어제의 내가 한심하다. 누군가에게는 이토록 간단한 일이었구나. 그래, 이토록 간단한 일이다. 며칠 동안 인터넷에서 쏟아지는 신뢰 없는 자극적인 지식에 둘러싸여 미련하게 놀아났다. 스스로 판단할 수 있다고 생각했을까? 그 생각 자체가 미련하다. 인지 심리학에서는 우리가 앞으로 겪게 될 다양한 지식과 경험은 우리가 이미 겪은 경험과 지식으로 상당하게 결정된다고 한다.[134] 이와 관련한 대표적인 속담이 있지 않은가?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






31. 당연한 이치다. 그리고 굳이 인지 심리학이라 거창하게 떠들지 않아도 살면서 이 정도 지식은 자연스레 깨닫는다. 그런데도 우리는 전문가의 의견을 무시하며, 경험한 적 없는 불모지를 힘들게 혼자서 헤쳐간다. 무엇이 사회를 이렇게 만들었을까? 무엇이 그들을 이토록 불신하게 했을까? 무엇이 우리를 이처럼 자만하게 했을까? 선생은 다름을 가르치기보다는 옳고 그름을 가르치는 게 올바른 방향이라 믿는다. 그게 선생의 본분[135]이다.



선생이라면

과거로부터 지금까지 의심 없이 이어온,

보편적[136] 진실을 가르쳐야 한다.


선생은 보편적 진실에 반하는

가설을 이야기할 수는 있다.


하지만, 그 가설이 마치 보편적 진실과

대등한 힘을 지닌 것처럼 말하면 안 된다.






32. 문제는 이미 이 사회는 다름의 존중에 세뇌당했다. 그러니, 수업 중에도 불쑥불쑥 불청객이 강의에 난입한다. 자의[137]적인 해석을 앞세워 강의의 질을 떨어뜨리는 학생을 종종 만난다. 선생질하면서도 이러한 경우를 수도 없이 겪는다. 물론, 가르치는 내용이 철학이라서 그럴지도 모른다. 다름의 존중을 앞세워, 보편적 진실에 반하는 그들의 가설을 이야기하며 나와 토론하려 한다. 둘이 있을 때는 그러려니 한다. 다만, 공개적인 공간에서 이러한 무의미한 토론은 결국 다른 이에게 안 좋은 영향을 끼친다. 옳고 그름을 바탕으로 다름을 존중해야 건설적인 사회가 이루어진다. 옳고 그름을 멀리한 맹목적인 다름의 존중으로는 무엇도 조화롭지 않아서다. 그들의 생각을 앞세워 내게 얻고 싶은 게 무엇일까? 내가 혹시라도 그들의 생각을 옳다고 한다면, 선생의 본분을 망각[138]한 거다. 더군다나 강의를 듣는 학생에게도 안 좋은 영향을 끼친다. 물론, 시간이 흘러, 과거의 믿음이 무너지는 사건도 많다. 대표적으로, 철석같이 믿었던 천동설을 지금은 누구도 믿지 않는다. 그렇다고 천동설을 철석같이 믿었던 당시의 사람을 무지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하는 게 무지한 거다.



합리적 의심이라 우기며

자기 목소리를 키우는

다름의 세상에서


선생은

늘, 언제나, 항상

현재의 무지를

가르쳐야 한다.


콩 심은 데 팥 나고,

팥 심은 데 콩 나기 전까지



To be continued....



[127] 영락없다 (零落―): 조금도 틀리지 않고 들어맞는다.

[128] 무용(無用): 쓸모가 없음.

[129] 개구쟁이 스머프(프랑스어: Les Schtroumpfs, The Smurfs)는 벨기에의 작가인 페요(Peyo, 본명:Pierre Culliford 피에르 컬리포드)가 만들어낸 만화 캐릭터들을 지칭한다. 스머프들은 유럽의 어느 숲에 살고 있으며 하늘색의 몸 색깔에 하얀 모자와 바지를 입는, 의인화된 작은 캐릭터들로 묘사된다. 원작을 기초로 해서 미국의 해나 바베라에서 1981년에 제작한 텔레비전용 애니메이션 시리즈로도 유명하다. [출처:위키백과]

[130] 감언이설 (甘言利說): 남의 비위에 맞게 꾸민 달콤한 말과 이로운 조건을 내세워 꾀는 말.

[131] “아이로 하여금 어떠한 습관에 물들지 않게 하라. 가장 좋은 습관은 어떠한 습관에도 물들지 않는 습관이다.” (출처: 장 자크 루소,『에밀』, 이환 옮김, 돋을새김, 2015, p70

[132] 집단 지성(集團知性, 영어: collective intelligence)이란 다수의 개체들이 서로 협력 혹은 경쟁을 통하여 얻게 되는 결과이다. 쉽게 말해서 집단적 능력을 말한다. [출처: 위키백과]

[133] 감히 무엇을 하려는 마음.

[134] 김아영 외 3명, 『교육심리학』, 박학사, 2003, p257

[135] 본분 (本分): 마땅히 지켜야 할 직분.

[136] 보편적 (普遍的): 두루 널리 미치거나 해당되는 (것).

[137] 자의 (恣意): 제멋대로 하는 생각.

[138] 망각 (忘却): 어떤 사실을 잊어버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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