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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건축플래너 Aug 26. 2022

내 인생을 바꾸는  황금열쇠

놓치고 싶지 않은 여인 - 1. 만남의 시작

만약 타임머신을 타고 풋풋한 젊음이 있는 과거로 돌아간다면? 그래서 다시 그 사람을 만난다면 놓치고 싶지 않은 연인이 있는가? 나는 있다. 만약 이 글을 와이프가 본다면 맞아 죽을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용기를 내어 솔직한 마음을 표현해 볼 것이다. 마음 한 구석에 아련하고 미안한 감정이 남아있어 이 글을 쓰면 먼 추억으로 아름답게 잊혀 질 것 같기 때문이다. 남자와 여자가 만나서 사랑에 빠지고 결혼으로 이어질 때까지는 헤어짐과 만남이 반복되고 상대도 여러 번 바뀔 수가 있다. 만약 첫사랑과 결혼한 사람이 있다면 당신은 의지의 한국인이자, 완벽한 순정파라고 인정한다. 미국 대학 심리학회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남녀가 각자 자신의 이상형을 만나려면 적어도 20명을 만나야 한다고 한다. 20명을 만나면 그중에 한 명이 성격부터 시작하여 하나부터 열 가지가 자신과 가장 잘 맞는 사람을 만날 확률이 높다는 것이다. 그런데 현실에서는 거의 실현이 불가능한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어떻게 동시에 20명의 연인을 만나서 자신과 잘 맞는지 안 맞는지 확인을 할 수가 있나. 희대의 카사노바가 아니고서야 일반인들에게는 현실과 동떨어진 이야기다. 어쨌든 '성공하려면 아내를 잘 두어야 한다.'라는 영국 속담을 가슴 깊이 새기고 천생연분을 만나기 바란다.




1988년 대학 1년 때 나는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을 위해 학교에 갔다가 그날 사진 동아리에 가입했다. 동아리 신입생을 모집할 때 설명해 주던 한 기수 위의 여자 선배가 이뻤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진 동아리에는 돈 많고 이쁜 여학생들이 있다는 소문을 익히 들었기 때문에 망설이지 않고 그 선배의 설명을 듣자마자 바로 신입 회원 가입서를 작성했다. 그리고 며칠 후 버스를 타고 학교를 가는 길에 가장 뒷좌석에 앉아 있는 천사같은 여학생 한 명이 내 눈에 들어왔다. 168cm 정도의 키에 약간 마른 체형으로 나이키 운동화에 브라운 색상의 자켓과 게스 청바지를 입고 있었다. 전형적인 부티나는 대학교 신입 여학생이었다. 가슴까지 내려오는 갈색 빛깔의 긴 머리에 끝 부분만 파마머리 스타일이었는데 얼굴 뒤편에서 환하게 후광이 비치고 있었다. 마치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 같았다. 그렇게 그녀와의 첫 만남은 버스 안에서 곁눈질로 서로 눈을 마주치며 시작되었다. 




사진 동아리 신입생 환영회 겸 월례 회의가 있던 날 수업을 마치고 오후 6시에 사진 동아리 회의 장소인 공대 강의실로 들어가는 순간 깜짝 놀랐다.  버스에서 보았던 그 여자애가 앉아있던 것이다. 사진 동아리에 그 여자애도 가입했던 것이다. 그 애를 보는 순간 나는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나와 캠퍼스 커플이 되는 꿈을 꾸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날 나는 사진 동아리의 신입생 기수 기장으로 선출되었다. 사진 동아리 활동은 한 달에 한번 주말에 서울 근교나 도심에서 사진 촬영을 위한 모임을 가졌고, 여름이나 겨울 방학 때는 3박 4일 일정으로 지방 원정 촬영을 갔었다. 그런데 한 달에 한 번 있는 촬영 모임에 그 애는 나타나지 않았다.  사진 동아리 선배들도 촬영 모임 인원이 너무 적다며 다음 촬영 모임에는 참석 독려를 해서 인원을 최대한 모아보자고 했다.




그래서 2달째 촬영 모임 일정에는 신입 회원 가입서에 있는 연락처를 가지고 내가 기장으로서 신입 회원들에게 연락을 했다. 그때 그 시절은 휴대폰이 없던 시절이었다. 일일이 집으로 전화를 해서 부모나 가족들에게 내가 누구인지 관등성명을 밝히고 바꿔달라고 해야 했으며, 특히 엄격한 가정의 여학생들하고 통화하려면 최대한 정중히 부탁했던 시절이었다. 참고로 그 시절 가장 인기 있던 전화기는 '바텔'이라는 무선 전화기였다. 어머니한테 무슨 전화를 그렇게 하냐는 핀잔과 함께 전화 연락은 밤늦게까지 계속되었고 그 여자애(가명으로 소연이라고 부르겠다.)하고도 통화를 하게 되었다. 20분 이상이나 계속된 통화에서 온갖 달콤한 말로 소연이의 마음을 움직였고, 꼭 참석하겠다는 다짐을 받아내게 되었다. 다른 동기들에게는 미안한 이야기지만 내 목표는 오직 소연이를 촬영 모임에 참석하게 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다음 모임에 나오겠다는 말을 듣는 순간부터 내 가슴은 콩닥콩닥 뛰기 시작했다. 




그리고 기다리던 주말 촬영 모임에 소연이가 나왔다. 반갑게 손을 흔들며 인사를 하고 악수도 했다. 반가움의 표현이라기 보다는 손 한 번 잡아보고 싶음 마음이 더 강했던 것 같다. 그런데 촬영 모임에 참석을 부탁한다고 정중하게 전화를 해서 그런지 동기들만 20명이 나왔고, 선배들까지 포함하니 총 참석 인원은 35명이나 되었다. 기장으로서 동기들도 챙기고 선배들도 챙겨야 했기 때문에 소연이하고 둘이 사진도 촬영하고 걸어가면서 서로에 대해서 더 알고 싶었는데 내 계획은 초반부터 철저하게 무산되었다. 예쁜 꽃에 날파리떼가 꼬이듯이 소연이가 이쁜 것은 알아가지고 뚱뚱하고 못생긴 선배들이 틈만 나면 소연이 옆에 붙어서 사진 촬영 노하우를 가르쳐 주는 척 손을 잡고 작업을 걸었다. 옆에서 지켜보니 여러 명의 선배와 동기들이 달라붙어 귀찮게 하는데도 소연이는 싫은 내색 한 번 안 하고 친절하고 상냥하게 대해주었고 나는 속으로 '얼굴만 이쁜 것이 아니고 마음씨도 착하네.'라고 생각하고는 다가갈 기회만 엿보고 있었다. 아 그런데 석기시대의 유인원을 닮은 동기 여학생들이 내 옆에 달라붙어서 아무 의미없는 질문과 이야기로 소연이와 함께 할 틈을 주지 않는 것이다. 




점심 시간이 되어 인원 전체가 식사를 할 수 있는 단체석을 갖춘 중국집을 찾아서 들어갔다. 메뉴는 늘 한결같이 하한선은 우동, 상한선은 짜장면이었다. 이번에는 '소연이 옆에 앉아서 짜장면을 먹어야지.'하고 소연이가 앉은 곳을 두리번 거리는 순간 돼지 껍데기같은 선배가 이미 소연이 옆에 먼저 떡하니 앉아 버렸고, 나는 결국 유인원들을 양옆에 끼고 분노의 짜장면을 먹었다. 점심을 먹고 5명씩 조를 짜서 흩어졌다가 5시에 다시 모이기로 했는데 소연이는 역시 나하고 같은 조가 되지 못했다. 아마도 그 동아리 회장하고 동기인 돼지 껍데기 선배가 농간을 부린듯했다. 동아리 회장님이 시간 약속 잘 지키고 촬영에 대한 당부의 말을 하고나서 흩어지려고 하는데 소연이가 나한테 다가왔다. 그러더니 "니가 모든 것을 다 챙겨주고 힘들면 업어도 주고 하인처럼 따라다닌다고 해서 촬영 모임에 왔는데 왜 하나도 안 챙겨주는데?"라고 말하는 것이다. 순간 미안해진 나는 "미안, 상황이 그래서.... 내 마음은 그게 아닌데...."라고 말하는 순간 저팔계 선배 놈이 순식간에 나타나 소연이 팔을 잡고 우리 조와 반대 방향으로 사라져 버렸다. 




나는 회장님하고 같은 조였으며, 회장님과 함께 촬영을 마치고 간담회를 나눌 대형 커피숍을 찾으러 돌아다녔다. 시간이 흘러 다시 만나기로 한 약속 장소에 도착하니 저 먼치에서 소연이도 걸어오고 있었는데 그 돼지 껍데기 선배는 계속 소연이 옆에 붙어 있었다. 더이상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서 소연이를 만나자마자 "이제 내가 챙겨줄 테니까 내 옆에 붙어있어라."라고 이야기를 했는데 그때부터 소연이는 내 뒤를 졸졸 따라다녔다. 커피숍에 도착하자마자 내가 소연이 손을 잡고 가장 안쪽 자리로 들어가 앉았다. 소연이가 앉은자리가 창가 쪽이라 아무도 앉을 수 없도록 제일 먼저 앉히고 소연이 바로 옆에 내가 앉았다. 그 날 처음으로 둘만의 자리를 가진 것이다. 간담회는 무시하고 소연이하고 둘만의 대화를 나눴다. "미안, 니한테 갈려고 했는데 그때마다 니 옆에 선배하고 동기들이 있어서 못 가겠더라." "내가 부탁해서 촬영 모임에 나왔는데 챙겨주지 못해서 미안하고 다음부터는 다른 사람 신경안쓰고 너만 챙겨 줄께."라고 약속한 후 서로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집은 어디냐? 동생은 있냐? 술 좋아하나? 고등학교는 어디 다녔냐?"등등 어릴 때부터 대학 들어올 때까지 이것저것 궁금한 것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알고 보니 부잣집 딸이었다. 소연이 집은 그 당시 유명한 압구정 현대 아파트(지금도 서울에서 가장 비싼 아파트의 상징이다.)였다. 아버님은 사업을 하셨고 서울대 재학중인 오빠가 있었다. 자기도 원래 서울대에 진학하려고 했었는데 건강이 좋지않아 여러가지 고민 끝에 우리 학교에 입학하게 되었다고 했다. 옆사람이 들리지 않도록 목소리를 최대한 작게하여 머리를 바싹 붙여서 이야기하였는데 이야기하는 내내 소연이의 머릿결과 몸에서 달콤한 향기가 나를 취하게 만들었다. 소연이하고 이야기하는 동안 동기 여학생들과 선배들의 눈총이 따가웠지만 상관하지 않았고 신경 쓸 겨를도 없었다. 




그날 2시간 동안의 촬영 간담회는 나와 소연이가 서로를 알아가는 시간이 되었다. 그런데 소연이의 이야기 중에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었다. 중학교 때부터 대학생이 될 때까지 수학여행을 포함하여 여행을 가본 적이 없다는 것이었다. 몸이 아파서 부모님이 허락을 안 해주기 때문에 수학여행은 물론이고 1박 2일의 신입생 오리엔테이션도 못 갔다는 것이다. 그래서 올 겨울은 사진 동아리에서 관광버스를 대절해서 가는 3박 4일 원정 여행에 꼭 같이 가자고 약속하였다. 부모님에게는 내가 무슨 수를 쓰더라도 허락을 받아준다고 했다. 그렇게 새끼손가락을 걸고 약속을 하고 소연이와 헤어지고 집으로 가는 길에 '왜 중학교 수학 여행을 못 갈을까? 어디가 아파서 지금까지 여행 한 번 못 갔을까?'라는 생각이 계속 머릿속을 맴돌아 늦은 밤까지 나의 수면을 방해하였고, 소연이에게서 맡았던 향기와 손을 잡았을 때 전해진 체온은 내 머릿속 제일 깊은 비밀 폴더에 저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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