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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건축플래너 Aug 26. 2022

내 인생을 바꾸는 황금열쇠

놓치고 싶지 않은 여인 - 2. 비밀

사진 동아리 방은 학생회관 3층에 있었고, 인문대와 공대의 건물이 떨어져 있어 소연이가 동아리 방으로 오지 않는 이상 학교에서 우연히 마주치는 것은 쉽지가 않았다. 나는 강의 시간이 빌 때마다 동아리 방으로 가서 선배들과 동기들하고 기타를 치며 시간을 때웠고 수업을 마치면 학교 밑에 당구장으로 가서 당구를 치던가 아니면 그날 총대 메는 선배가 있으면 따라가서 술자리에 참석해 대학 생활과 인생, 연애에 대한 개똥철학에 대해 지루한 이야기를 들어야 했다. 나는 담배와 술을 대학에 들어와 배웠다. 대학가의 술자리는 모든 것이 신기했고, 술도 별로 못 마시면서 분위기에 매료되어 친구들이나 선배들이 "술 한잔 하러 갈래?"라고 하면 무조건 참석하였다. 물론 나는 신입생이기 때문에 대부분은 선배들이 술값을 계산하여 금전적인 부담은 없었다. 




과 대표 녀석이 의류학과 하고 단체 미팅을 잡았다고 참석하라고 꼬드기는 바람에 단체 미팅이라는 것도 머리 털나고 처음 경험해 보았다. 가장 이쁜 애들 4명을 따로 만나기로 작전을 짜 놓았으니 나보고 자기하고 같은 조로 함께 가자는 것이었다. 그러나 기대하고는 정반대로 아주 듬직한 몸매에 얼굴에는 폭탄을 맞은 듯한 여학생들이 나왔고 그렇게 첫 단체 미팅은 완전히 실망만 남기고 돈 만 날렸다. 단체 미팅도 하고 모든 것이 신기한 술자리도 가고 당구도 치면서 공부는 뒷전인 대학 신입 생활을 보내고 시간은 흘러 여름 방학을 맞이하게 되었다. 소연이하고는 학교에서 교양 수업이 있는 인문대 강의실 앞 복도에서 몇 번 마주쳐 인사를 했지만 다음 수업이 있다며 곧바로 헤어졌다. 수업 마치고 커피 한잔하자고 하였는데 그때마다 집에 일찍 가야 한다고 미안하다고 이야기했고, 주말에 만나자면 병원에 가야 돼서 안된다고 거절하여 내가 마음에 들지 않거나 다른 남자 친구가 생겨서 그런 줄 알았다. '나 혼자만의 착각이었나?'




그런 어느 날 서울대 다니는 친구 녀석한테 내일 점심이나 같이 먹자며 연락이 왔다. 그래서 다음 날 강남역에서 만나 같이 점심을 먹고 카페를 갔는데 남자 둘만 함께 있는 것은 유일하게 우리 테이블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친구 놈이 괜찮은 여자 있으면 즉석 소개팅 좀 해달라는 계속 보채길래 한참을 고민하다가 혹시나 하는 마음에 소연이 집으로 전화를 했다. 마침 어머니는 소연이가 집에 있다며 바꿔주셨다. 친구 녀석 이야기는 하지 않고 "그냥 방학도 했고 보고 싶어서 전화했는데 나올 수 있냐.?"라고 물었더니 진짜냐고 웃으면서 계속 다시 확인을 하길래 진짜 보고 싶어서 전화했고 나오면 맛있는 거 사 줄 테니 무작정 나오라고 했다. 1시간의 기다림 끝에 소연이가 우리가 있는 카페로 왔다. 친구하고 있는 나를 보고는 테이블에 앞에 멀뚱이 서있는 소연이에게 "사실은 네가 보고 싶기도 했고 내 친구가 소개팅 시켜달라고 해서 너를 불렀다."라는 이야기로 친구에 대해서 소개를 해주었고 둘이 이야기할 수 있게 나는 소개팅 주선자처럼 행동하였다. 




친구 녀석이 마음에 들었는지 나하고 있을 때와는 다르게 환한 웃음을 지었고, 저녁을 자기가 살 테니 같이 먹으러 나가자고 했다. 둘이서 먹으라고 하고 나는 집에 가려고 했는데 소연이가 같이 가자고 하여 세 명이서 돈가스를 먹으로 경양식 집으로 갔다. 그 당시 돈가스를 먹는 것은 학생 신분에 최고의 한 끼 식사였다. 1인 분에 2,500원, 대한 극장의 영화표가 성인 1,500원이었다. 그래서 10,000원만 있으면 여자 친구와 영화 보고 밥 먹고 다방에서 커피까지 마셔도 돈이 남았다. 연세대 앞 독다방이 커피 한 잔 450원 할 때였으니.... 아무튼 친구 녀석이 소연이와 연락처를 주고받았고 집에 가야 한다고 해서 헤어지는데 소연이가 "잠시만, 집에 가서 나한테 전화할래?"라고 의미가 있는 듯한 미소를 지으며 말하길래 "집에 가서 저녁 9시 정각에 전화할게."하고 헤어졌다. 유선 전화 밖에 없던 그 시절은 시간 약속을 정하거나 전화벨 3번 울리고 끊으면 다음 전화를 받는 방법 등으로 부모님의 눈을 피해 여자 친구와 전화를 하였다. 




집에 도착해서 9시 정각에 전화를 하니 소연이가 기다렸다는 듯이 전화를 받았다. "나는 너를 보러 간 건데 왜 친구 있다고 이야기도 안 하고 마음대로 소개팅을 시키냐? 다음에 또 이러면 너 다시는 안 본다."라는 소연이의 말에 나는 등에서 식은땀이 흘렀다. 미안하다는 말과 다시는 안 그런다는 말로 한참 동안 소연이의 화를 풀어주고는 그동안 사진 동아리에 있었던 에피소드를 이야기하며 웃고 떠들다가 다음에 만나 자라는 말을 끝으로 전화를 끊었는데 "나 너 마음에 있는데 우리 사귈래?", "나 너 좋아한다."는 말이 목구멍 바로 밑에까지 올라왔다가 결국 용기를 내지 못하고 삼켜버렸다. 사실 내가 얼굴이 잘생긴 편도 아니고 집안 형편도 어려웠기 때문에 '과연 내가 소연이하고 사귈만한 자격이나 있나?', '나보다 멋지고 집도 잘 살고 조건이 좋은 남자를 만나는 게 소연이한테 좋겠지?' 겉으로는 강한 척했지만 내 자존감은 바닥을 치고 있었고, 내가 소연이의 남자 친구가 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고 모자라 보였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때 마음속 이야기를 하지 못한 내 자신이 너무 바보 같고 참으로 한심한 놈이었다. 




그리고 충격적인 비밀을 알게 되는데 소연이와 약속했던 겨울 원정 촬영을 가지 전에 있었던 정기 촬영 모임에서 지금까지 다른 누구에게도 이야기하지 않고 비밀로 간직하고 있던 소연이의 병에 대한 것이다. 저 번과 마찬가지로 정기 촬영에 나오라고 내가 소연이한테 전화를 해서 참석하였는데 그날은 소수의 인원만 참석하여 다른 사람들의 눈치를 보지 않고 소연이와 함께 할 수 있었다. 당연히 소연이 옆에 붙어서 찝쩍대던 그 돼지껍데기 선배는 불참하였고, 그렇게 소연이와 같이 촬영도 하고 간식도 사 먹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며 촬영 품평회를 위해 들어간 커피숍에서는 전에 처럼 나란히 구석에 앉았다. 둘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기 소연이가 자신은 시한부 인생이라고 했다. 그래서 나는 장난인 줄 알고 나도 시한부 인생이라고 말했더니 소연이의 눈빛이 완전히 달라지면서 무슨 병이냐고 물어보았고, 나는 네가 먼저 이야기하면 알려준다고 선수를 쳤다. 한참을 생각하더니 나한테 병명은 이야기해줄 수 없고 자신의 병의 원인에 대해서 이야기해줄 테니 그다음은 내 병에 대해서 이야기해달라고 했다. 다른 누구에게도 이야기하면 안 된다는 비밀의 약속을 하고는 소연이 자신의 병에 대한 비밀을 털어놓았다. 




"내 몸에서 선천적으로 비타민 b12가 흡수가 안되어 한 달에 한 번씩 서울대학교 병원에 가서 주사를 맞지 않으면 죽는 병이야. 그리고 의사가 그러는데 많이 살아야 30살이래.", "그런 병이 있나? 그래서 어디가 아픈 건데?", "추위를 심하게 타고, 중학교 고등학교 다닐 때는 갑자기 어지러워서 기절도 하고, 의사 선생님이 운동을 못하게 해서 체육시간에는 항상 벤치나 교실에 혼자 앉아있었어.", "이제 내 병에 대해서 말했으니 니 병에 대해서 이야기해줘." 소연이 한테는 미안한 이야기지만 나는 내 병을 만들어 낼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장난인 줄 알았는데 너무 진지하게 이야기하는 바람에 이야기를 안 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고 문득 떠오른 것이 내가 아주 어렸을 때 앓았던 중이염이라는 병이었다. "나는 중이염이 심해서 40세가 되면 염증이 뇌로 전달되어 죽을 수도 있데."라고 위기를 넘겼고 소연이는 내 말을 진짜로 믿는 눈치였다. 그렇게 서로를 토닥거리며 다시 한번 서로의 비밀을 지키기로 약속하며 헤어졌다. 




나는 궁금한 것은 절대 못 참는 전형적인 b형의 남자다. 집 책장에 의학 대백과 사전이 있었는데 그날 밤부터 그 두꺼운 의학 대백과 사전을 샅샅이 훑어 소연이의 병명을 알아내고 말았다. 처음에 혹시 백혈병이 아닌가 하고 의심했었는데 병의 원인과 증세가 상이했고, 그다음 장을 읽어보는 순간 소연이가 이야기한 병의 원인과 증상이 대부분 일치하는 내용을 발견하게 되었다. 소연이의 의학적 병명은 선천성 악성 빈혈이었다. 병명을 확인하는 순간 온몸이 굳은 것처럼 한 참 동안을 멍하게 있었다. 몇 번을 다시 확인하였는데 임신도 안 되고, 운동도 안되고, 정말 일상생활이 힘든 악성 질환이었다. 순간 울컥해서 가슴 한 곳이 무언가에 찔리는 것 같았으며 심장 박동이 빨라졌고, 머리에서는 식은땀이 났다. 태어나서 한 번도 여행을 가지 못한 게 이해가 되었다. 학교 수업을 마치자마자 집으로 간 것도 주말에 연락하면 병원에 가야 한다고 했던 것도 이제야 모든 궁금증이 풀린 것이다. 그러고 보니 어제 촬영을 같이 다닐 때 앉아서 쉴 곳만 있으면 잠시 쉬었다 가자고 하였고 유난히 하얗게 보이던 얼굴도 창백한 것이었다. 앉았다가 일어날 때는 매번 내 팔을 잡고 일어났었는데 나는 소연이가 나를 좋아해서 내 팔을 잡는 줄만 알았다. 바보 멍청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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