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간 - 1. 골조 업체를 찾아서
"소장님! 제가 제주로 내려가겠습니다."
구좌읍 소재 건축사 사무실에 들러 건축 인허가 관련 진행 사항을 체크하고, 송당리 현장에서 가까운 레미콘 회사에 연락해서 가격도 알아보고, 제주도에 철근을 공급하는 업체에 철근 단가도 확인하고, 디자이너와 마감 자재 스펙에 대해 협의도하고, 예상 건축 공사 비용도 산출하면서 제주도 건축 일상에 적응해 가고 있었다. 철근 콘크리트 구조로 집을 짓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골조와 전기, 설비 공사를 진행할 업체를 선정해야 한다. 골조란? 인간으로 빗대어 이야기하면 신체의 형태가 안전하게 유지될 수 있게 잡아주는 뼈대라고 보면 된다. 전기, 설비는 인간이 자유롭게 활동하면서 살아갈 수 있게 산소와 혈액을 공급하는 핏줄과 신경이라고 생각하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그중에서도 집의 뼈대라고 할 수 있는 골조 공사를 위한 업체 선정이 가정 먼저 선행되어야 한다. 육지에서 집을 짓는다면 골조 업체 구하는 것은 그렇게 어렵지 않다. 나와 함께 작업했던 업체들도 많이 있을뿐더러 새로운 골조 업체와 형틀 작업자도 쉽게 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제주도는 골조 업체 구하는 것이 생각보다 어려웠다. 만약 공사 규모가 큰 경우는 입찰과 현설을 통하여 업체를 구하기 때문에 적합한 업체 선정을 보다 쉽게 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공사 비용이 어느 정도 금액대가 있는 경우도 육지에서 내려와 공사 진행에 들어가는 경비와 숙식 비용을 제외하고도 이익을 어느 정도 남길 수 있기 때문에 업체 선정이 보다 수월했을 것이다. 하지만 개인 주택(60평 미만)의 소규모 공사인 경우는 육지에서 업체가 내려올 경우 교통비와 화물비, 숙식 비용 등 경비를 포함하게 되면서 공사 비용이 올라간다. 따라서 공사비를 최대한 절약하기 위해서는 제주도 업체와 공사를 진행하는 것이 가장 최선의 방법인 것이다. 그런데 제주도에서 믿을만한 업체를 구하기가 여간 힘든 게 아니다. 왜냐하면 신뢰할 만한 업체인지에 대한 검증을 제대로 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육지의 경우는 블로그나 지인의 소개로 추천을 받거나 골조 업체에 대해서 어느 정도 확인을 할 수가 있다. 그러나 제주도의 경우 나도 마찬가지지만 건축 지인이나 업체에 아는 사람도 없었고 규모가 큰 회사를 제외하고는 온라인상에 광고를 하거나 노출되는 업체가 드물다. 따라서 육지에서는 아무것도 아닌 일들이 제주도에서는 힘들 수 있는 것이다. 어쨌든 나는 예상 건축 공사비 안에서 골조 업체를 빨리 선정해야 했다.
제주도를 내려오면서 내 오른팔이라고 할 수 있는 골조 김팀장에게 혹시나 하여 연락을 해 보았다. 역시나 일 잘하는 업체는 항상 일을 몰고 다닌다. 12월에 주유소 신축 공사를 들어가기 때문에 2월에나 가능하다는 거였다. 그래서 일찌감치 포기하고 제주도 업체를 찾기로 마음먹었다. 가장 먼저 구좌읍 송당리에 철근 콘크리트로 골조가 진행되고 있는 공사 현장에 무작정 방문하였다. 그중에 한 군데는 2층 짜리 주택을 짓고 있었는데 1층 골조 공사가 완료되고 2층 외벽 거푸집 설치를 하고 있는 현장이었다. 현장에서 골조 팀장을 만나 바로 옆동네 부지에서 12월 초에 착공 예정인 현장 책임자라고 이야기하고 골조 공사를 진행해 줄 수 있냐고 물었다. 가능하다는 답변과 함께 도면을 보내달라고 하였는데 골조 업체에서 요구하는 사항이 터무니없었다. "송당일경" 건축 개요를 대략적으로 이야기하면 단층 주택으로 2개 동이며, 전체 연면적은 122.19 m2(37평)이다. 그리고 별도로 건물 앞에 깊이 50cm 정도의 수공간이 33m2(10평) 있는 건물이다. 지붕의 형태는 삼각형 모양의 박공지붕이다. 골조 업체의 요구조건은 외부 비계 설치 비용 별도로 지급하고 주택 골조 공사비는 평당 150만 원, 수공간 골조 공사는 들어간 인건비 품수대로 계산해 달라는 것이었다. 다시 연락드리겠다는 말을 남기고 월정리 해변가에 있는 신축 공사 현장을 방문하였다. 두 달 전 제주도 방문 시에 월정리 해수욕장을 지나왔는데 그때 2층짜리 상가 신축 공사가 진행되고 있는 것을 본 기억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당시 지나가면서 유심히 보았는데 골조 시공 상태가 양호했다. 그래서 나중에 골조 공사 견적을 문의해 봐야지 하고 마음먹었었다. 월정리 현장에 도착 후 현장 소장을 만나서 정중하게 인사를 드렸다. 그리고 송당리에 신축공사를 곧 시작하는데 골조와 설비 전기 업체를 구하고 있는 중이라고 설명드렸다. 월정리 신축 현장 소장님이 그 자리에서 골조업체와 통화를 하더니 철근과 레미콘 지급 조건으로 대뜸 골조 공사가 평당 200만 원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헐 기가 찼다. 철근 콘크리트 골조 공사의 경우 현장 조건과 난이도에 따라서 상이하지만 그 당시 평당 130~150만 원 수준이었다. 그런데 평당 200만 원이라니. 육지에서 왔다고 하니까 호구하나 잡으려는 것 같았다. 평당 200만 원으로 계약했다손 치자. 그 금액으로 끝나면 다행이다. 악덕 업체를 만날 경우 온갖 핑계를 들어서 추가 공사비를 요구한다. 결국 공사를 마무리하기 위해 건축주는 눈물을 머믐고 추가 비용을 감당하는 것이 비일비재하다. 월정리 현장에서 제주도의 업체 구하기가 힘든 것과 건축 공사 현실을 다시금 느끼며 씁쓸한 마음으로 숙소로 돌아왔다.
며칠 전에 인터넷 검색으로 알게 된 제주도 골조 전문 업체에게 견적 부탁과 함께 이메일로 도면을 송부하였다. 그런데 메일 답변을 확인해 보니 견적서대신 공사 규모가 작아서 다른 업체에 문의하라는 어이없는 내용만 확인하였다. '이제 어떡하지?' 고민에 고민을 하다가 내가 아는 건축 인맥들에게 도움을 구했다. 제주도에 골조 공사 업체를 소개해 달라고 부탁했다. 그러던 중 우리 현장의 인허가를 진행하고 있는 건축사에게 연락이 왔다. 골조 업체 한 군데를 소개해 주는데 검증은 반드시 해보라는 거였다. 자신도 다른 사람을 통해서 소개만 해주는 것이라고 했다. 그날 바로 연락을 해서 구좌읍 송당리 현장 부지에서 미팅을 가졌다. 현장 부지를 둘러보고 펌프카 세팅 자리도 확인하고 견적 잘 부탁드린다는 말과 함께 건축 구조 도면을 전달하였다. 과연 견적은 얼마나 나올까 하고 기다리고 있었다. 그날 저녁이었다. 휴대폰이 울렸는데 화면에 표시된 발신자가 바로 골조 김팀장이었다. "소장님! 제주도 공사 골조 업체 정해졌나요?" "12월 들어가기로 했던 주유소 공사가 연기되었습니다. 골조 업체 아직 계약 전이면 제가 제주도로 내려가겠습니다." 순간 천군만마를 얻은 기분이었다. 인생은 타이밍이라는 말이 있다. 건축 공사도 타이밍이다. 건축주와 내가 만난 것도, 골조 김팀장이 제주도에 공사를 진행할 수 있었던 것도 모두 타이밍인 맞아떨어져서 가능했던 것이다. 만약 서로 일정이 맞지 않는다면 방법은 두 가지 중에 하나다. 그 업체가 공사가 끝날 때까지 기다리던지 아니면 다른 업체를 구해서 공사를 진행하던지. "인생은 타이밍에 관한 것이고, 타이밍이 전부입니다."라는 에리카 제인의 말처럼 절묘하게 타이밍이 맞아떨어져 가고 있었다.
골조 김팀장과의 인연은 4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경기도 고양시 지축 지구에 상가 주택 신축 공사를 진행하고 있을 때였다. 3월 초 봄 비가 부슬부슬 내리고 있는 날이었다. 아직 현장 사무실용 컨테이너가 반입되지 않아서 내 차 안에서 노트북으로 업무를 보고 있었다. 갑자기 차 유리창을 누군가가 두드렸다. "안녕하세요. 골조 공사 전문 김팀장이라고 합니다. 골조 공사를 저에게 맡겨만 주시면 타 업체보다 경쟁력 있는 공사비로 확실하게 작업해 드립니다. 골조 완료 후 못대가리 하나 없이 청소까지 완벽하게 합니다."라고 자신 있게 이야기했다. 지축 지구 상가주택의 골조 팀은 이미 계약이 되어 다음 현장에 기회가 되면 견적을 받아보겠다고 하고 명함을 받아 두었다. 두 달 정도 뒤 파주 운정신도시에 상가주택 신축 공사를 진행하기로 되어 있어 나중에 견적이나 한 번 받아보자라는 마음이었다. 그냥 어중이떠중이 업체라 생각하고 인사만 하고 인연이 끝날수도 있었지만 왠지 함께 작업을 해보고 싶었다. 비가 오는 날은 소위말하는 노가다라는 건축에 종사하는 작업자들에게는 쉬는 날이다. 왜냐하면 외부에서 비를 맞고 작업하는 것도 힘들지만 무엇보다 안전한 작업을 위해서 비 오는 날은 외부 작업을 하지 않는 것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비가 오는 날 쉬지 않고 골조 공사를 수주하기 위해서 명함을 들고 일일이 현장을 방문하여 소개하는 것도 기특했지만 복장 상태에서도 자세가 나왔다. 해병대 돌격형 스포츠머리에 안전 조끼까지 착용하고 신발은 안전화까지 착용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고수는 고수를 알아본다고 어쨌든 일 하나는 끝내주게 할 것 같았다. 무엇보다 눈빛이 살아있었다. 그리고 2달 뒤에 파주 운정 신도시에서 골조 김팀장과 나는 함께 철근 콘크리트 골조 공사를 진행하게 되었다. 타업체와의 견적에서도 많은 차이가 났다. 200평 미만의 상가주택 골조공사 견적에서 3천만 원이나 차이가 난다는 것은 정말 많이 나는 것이다. 골조공사에 사용되는 유로폼과 각종 가설재를 직접 소유하고 있어서 단가 경쟁력까지 갖추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골조 공사가 어떻게 끝났냐고? 내가 생각했던 그대로다. 짠돌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는 상가주택 건축주가 공사를 너무 잘해줘서 고맙다고 보너스까지 챙겨주었으니 말이다. 파주 상가주택 공사 이후에도 여러 가지 크고 작은 현장에서 작업을 함께하였고 골조 김팀장은 나의 오른팔이 되었다. 그리고 기가 막힌 타이밍으로 제주도에서 함께 골조 공사를 진행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