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간 - 2. 전기와 설비는 의리!
"제주도에 여행 온다고 생각하고 도와줘!"
신축 공사를 진행하려면 작업에 필요한 전기와 수도가 인입되어야 한다. 현장에서 공사용 전기를 사용하기 위해서는 한국 전력 공사에 임시 전력을 신청하고, 상수도는 건축 인허가가 나오면 허가 관청 상수도 담당자에게 인입 신청을 하면 된다. 철근 콘크리트 골조 공사를 진행할 업체는 결정이 되었다. 이제 건물을 살아 숨 쉬게 할 핏줄 역할을 담당할 전기와 설비 업체를 선정해야 한다. 전기와 설비 공사 금액은 골조 공사에 비해서 적다. 그렇기 때문에 10번 이상 육지에서 제주로 왔다 갔다 하는 비용을 포함하면 육지에 있는 업체가 공사를 진행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제주도 현지 전기와 설비 업체 금액으로는 육지에 있는 업체가 제주로 와서 공사를 진행하는 것이 힘들다는 이야기다. 이 세상에서 자기가 손해 보고 공사를 진행하는 업체는 단 한 군데도 없다. 공사를 진행하면서 남는 게 없다느니, 손해를 보고 공사를 해준다거니 하는 말들은 전부 새빨간 거짓말이다. 가장 먼저 전기 업체를 찾기 위해서 인터넷으로 검색하여 제주도 현지 업체 2군 데에 전화를 걸었다. "안녕하세요. 전기 공사 견적 문의드립니다."라는 인사와 함께 현장 개요에 대해서 설명을 하니 실망스러운 답변만 돌아온다. 육지에서 온 호구 하나 물었나 보다. "제주도에 전기 공사의 경우 상세 견적과 평당 단가로 공사를 진행하지 않습니다."라는 황당한 대답이 돌아왔다. 2개 동 이상일 경우 동당 전기 공사 비용을 지급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 현장이 2개 동이니까 1개 동당 얼마를 달라는 거였다. 더 기막힌 것은 일반 조명이 아닌 펜던트 같은 조명은 설치하지 않는다고 한 것이다. 펜던트를 다는 게 힘들고 잘못하다가 훼손되면 물어줘야 하니까 별도로 알아서 작업자 불러서 하라는 이야기다. 간판, 수공간 조명, 경관 조명, 임시 전력 설치, 가설 작업 조명등 설치 작업은 모두 별도란다. 두 번째 업체에 연락을 하니 비슷한 조건으로 이야기하면서 그냥 일당처리로 진행하자고 하였다. 더 이상 전기 공사 업체를 찾는 것은 의미가 없는 듯했다. 휴대폰을 들고 15년 동안 인연을 맺어온 서울에 있는 전기 업체에게 연락을 했다. "제주도에 여행 오는 셈 치고 도와줘!" 그래서 육지에 있는 전기 업체가 '송당일경' 전기 공사를 진행하게 되었다. 공사 비용은 얼마냐고? 제주도 업체보다 훨씬 적은 금액인 육지 기준으로 결정했고 그 금액에 경비 100만 원만 추가해서 주기로 했다.
다음은 설비 공사를 진행할 업체를 찾아 나설 차례다. 먼저 제주도 현지 도민이자 장비 임대업 사장인 집주인에게 한 군데 소개를 받았다. 이어서 저번에 방문했던 월정리 상가 신축 현장에서도 설비 업체를 연락처를 받아왔다. 두 군데에 설비 업체에게 연락을 해서 도면을 들고 미팅을 했다. 타 주택 신축 현장과 차이점은 건물 앞쪽에 물이 흐르는 수공간에 수처리 설비 시설을 설치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며칠 뒤 설비 업체에서 보낸 견적서를 보고 숫자를 잘못 본 줄 알았다. 예상 견적 금액보다 2배가 높은 것이다. 예상 견적 금액도 나름 여유 있게 산출한 거였다. '정직하고 믿을 만한 설비 업체가 제주도엔 없는 걸까?''아니야! 내가 못 찾는 걸 거야 제주도에 성실한 업체가 분명 많이 있을 거야!' 무작정 제주시로 향했다. 제주시 경동 보일러 대리점에 방문하여 보일러 종류별 금액에 대해 문의하고 담당 직원 분에게 구좌읍에 일 잘하는 설비 업체를 소개해 달라고 부탁하였다. 메모지에 연락처를 받자마자 부랴부랴 전화를 걸었다. 2시간 뒤에 구좌읍 세화리 소재 한 카페에서 설비 업체와 미팅을 하였다. 건축 도면을 한 부 건네고 설비 견적을 위한 자세한 설명까지 곁들였다. 그리고 견적을 제출하기로 약속한 날짜에 연락을 하였다. 견적서 대신 돌아온 대답은 다른 현장일 때문에 일정이 맞지 않아 다른 업체를 찾으라는 것이었다. 아니 그러면 아예 만나지를 말던지. 견적을 준다고 이야기를 하지 말던지. 4일이라는 시간만 낭비한 꼴이었다. 네이버 지도에 있는 설비 업체 리스트를 뽑아서 10군 데 이상 견적을 문의하였지만 이런저런 핑계로 모두 거절하였다. 아마도 수공간 수처리를 위한 설비 시설에 대한 것이 부담되는 모양이었다. 전기 업체를 찾을 때처럼 되돌이표가 되는 느낌이었다. 다시 휴대폰을 들고 육지에 있는 15년 지기 설비 업체에게 연락을 했다. "두말 안 하겠습니다. 제주도 설비업체 구하기 전까지 제가 연락하면 무조건 연장 챙겨서 내려오세요!"
건축과 인테리어 공사로 먹고사는 소규모의 업체와 기능공들은 무수히 많다. 이 중에는 법인 사업자도 있고, 개인 사업자도 있고, 하루 일당을 받고 작업하는 기능공까지 그 수는 헤아릴 수 없다. 이렇게 많은 업체 중에서 나와 인연을 맺어 10년 이상 공사를 함께 진행해 왔다는 것은 그만큼 서로에 대한 신뢰가 쌓였다고 할 수 있다. 건축 업계에서 서로 신뢰가 형성되는데 갖추어야 하는 것은 딱 2가지다. 발주처의 입장에서는 작업을 진행한 업체나 작업자에 대해 약속한 금액을 지정한 날짜에 깔끔하게 지급하는 것이고, 반대로 도급 업체와 기능공은 발주자가 만족하는 견적 금액과 작업을 진행하는 것이다. 즉 공사를 시키는 쪽에서는 약속한 금액을 칼같이 지급하고 작업을 진행하는 쪽에서는 합리적인 금액으로 지정된 공사 기간 안에 품질이 확보된 작업 결과물을 완성하는 것이다. 여기서 합리적인 금액이란 타 업체보다 싼 공사비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정직한 금액이라는 이야기다. 어떤 공사를 진행하는데 처음 만난 업체가 다른 업체들보다 금액도 싸고 일도 잘한다고 생각해 보라. 거기에 작업 후 정리 정돈까지 완벽하고, 경미한 하자가 발생하여 연락을 했는데 일사천리로 처리한다. 이런 업체들은 몸이 두 개라도 모자랄 것이다. 여기저기서 서로 일을 해줄 수 없냐고 부탁이 끊이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한 번 만나서 같이 일했다고 당장 신뢰가 형성되지는 않는다. 위에 언급한 전기 설비 업체들을 내가 처음 만난 것이 벌써 15년 전이다. 15년 동안 함께 크고 작은 건축과 인테리어 현장에서 일을 해왔다는 것은 돈보다 중요한 무언가가 서로에게 쌓였다고 할 수 있다. 신뢰를 넘어 그 무언가가 나는 '의리'라고 생각한다. 내가 어려울 때 도움을 요청하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달려와 줄 수 있는 것. 같이 일하는 업체와 작업자를 보면 그 회사를 알 수 있다는 말이 있다. 끼리끼리 모인다고 하지 않는가. 공사비도 중요하지만 현장에서는 같이 일하는 작업자들과 손발을 잘 맞추는 것이 더 중요하다. 특히 전기, 설비는 내가 원하는 일정에 맞추어 언제든지 달려올 수 있어야 하고 품질 기준을 정확하게 지켜야 한다. 공사비의 경우 제주도 업체보다 많이 지급할 수는 없었다. 왜냐하면 건축주 입장에서는 제주도 업체와 공사를 진행해도 되는데 굳이 돈을 더 주고 육지 업체에게 공사를 진행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제주도 업체 2군 데 이상 견적을 받아서 건축주에게 확인을 시켜주고 그보다 낮은 공사비로 육지에 나와 15년 이상을 함께한 전기 업체와 공사를 진행하였다. 노가다 의리는 예전에 다 죽었다고 하는데 아직 살아있다. "의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