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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건축플래너 Sep 18. 2024

건축 공사 최대의 적

중간 - 4. 악천후 속 작업

"소장님! 제주도 따뜻하다면서요?"


건축 공사의 최대의 적은 기후 조건이라는 말이 있다. 여름철 30도가 넘는 무더위에 땀을 비 오듯 흘리고 겨울에 영하 6도 이하의 살을 에는 듯한 강추위 속에서는 외부 작업하는 것이 보통 어려운 것이 아니다. 또 비가 오거나 눈이 내리는 날이면 현장은 강제 휴무일이 된다. 왜냐하면 요즘 비 맞고 작업하는 기능공들도 없지만 감전이나 미끄럼, 추락 등의 안전사고 위험이 높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천 시에는 작업을 중단해야 하는 것이 건축 공사 현장의 불문율이다. 제주도의 경우 비도 자주 내리지만 중산간 지역의 경우 눈도 꽤 많이 온다. 그런데 그런 비와 눈 보다도 제주도 건축 공사에서 가장 최대의 적은 바로 바람이다. 강풍. 특히 겨울철에 자주 부는 무지막지한 칼바람은 체감온도를 상상이상으로 떨어뜨리며 제주 공항에 비행기 결항으로 비상이 걸리게 하는 주요 원인이다. 물론 제주도의 겨울은 육지보다는 따뜻하지만 강풍을 동반한 눈보라가 칠 때면 두꺼운 패딩 속을 뚫고 추위가 들어와 몸을 얼려버린다. 겨울철 제주도 여행올 때 '설마 육지만큼 춥겠어?'라고 생각하고 옷을 얇게 입고 놀러 온다면 시베리아 한 복판의 북극 한파를 제대로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바람의 세기가 어느 정도냐면 서있는 상태에서 바람이 부는 쪽으로 몸을 앞으로 엎드려도 넘어지지 않을 정도다. 버림 콘크리트를 타설하고 다음날 기초 콘크리트 작업을 위해 거푸집 설치와 철근 배근 작업을 위한 먹매김 작업부터 진행하였다. 이때가 12월 중순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기초 철근 배근 작업을 진행하는 동안 강풍을 동반한 악천후가 찾아왔다. 구좌읍 송당리는 제주도에서 중산간 지역이다. 나도 몰랐었는데 주변 이웃분들의 말을 들어보니 송당리라는 지역은 여름에 비도 많이 오지만 겨울에는 폭설이 내려 도로가 끊겨 자주 고립된다는 것이었다. 기초 철근 배근 작업을 진행하는 3일 동안 강풍을 동반한 눈이 내렸다. 체감온도는 영하 12도까지 곤두박질쳤다. 기상청에서 발표한 기온은 영하 6도였지만 그놈의 바람 때문에 체감온도가 영하 10도 밑으로 떨어진 것이다. 현장은 앞이 안 보일 정도로 강한 바람과 함께 눈보라가 휘몰아쳤다. 철근 콘크리트 골조 공사를 진행하는 내내 우리를 괴롭혔던 그놈의 제주 겨울바람과 사투가 이때부터 시작되었다.


23년 12월 송당리 한판 특보 현장 모습


기초 콘크리트를 타설 하기 위해서는 기초 철근 배근 작업과 건물에 전기와 물을 공급할 전기, 설비 배관 작업을 해야 한다. 물론 오수와 하수 처리를 위한 설비 배관 작업도 포함된다. 앞에서 언급하였지만 설비와 전기 작업자는 육지팀이 하기로 하였다. 따라서 기초 철근 배근 작업이 완료될 즈음해서 기초 거푸집을 설치하기 전 정확한 시점을 맞추어 전기와 설비 배관 작업을 투입돼야 하는 것이다. 골조 김팀장과 공정 협의를 완료하고 전기, 설비팀에게 일정을 통보해 비행기 티켓팅을 해놓은 상태다. 이제 어떤 악천후가 와도 물러설 수 없었다. 아니나 다를까 기초 철근 배근 작업 이튿날부터 강풍을 동반한 눈보라가 휘몰아쳤다. 앞을 분간하기 힘들 정도였다. 장갑을 꼈지만 손가락 끝마디가 감각이 없어져 갔다. 두 겹으로 껴입은 외투를 뚫고 냉기가 몸속으로 파고들었다. 10분은커녕 5분만 서 있어도 동태가 될 것 같았다. "소장님! 제주도 따뜻하다면서요?" 원망스러운 감정이 섞인 골조 김팀장의 불만이 강풍을 뚫고 귓가에 들려왔다. 11월 초에 제주도 골조 공사 부탁을 위해서 통화할 때만 해도 한낮에는 반팔을 입고 다닐 정도로 온화한 기후를 보여주던 제주도였다. 그때 골조 김팀장에게 "추운 겨울 육지에서 고생하지 말고 따뜻한 제주도에 공사하러 와~ 지금 여기는 반팔 입고 다녀!"라고 사탕발림 같은 유혹을 던졌었다. 그런데 지금 현실은 냉동실 속에서 그것도 선풍기 바람세기가 5단 이상으로 돌아가는 강풍에 맞서 작업을 하고 있는 것이다. 며칠만 참으면 다시 따뜻한 제주도의 겨울이 올 거라고 달래며 철근 배근 작업을 강행했다. 나도 현장에서 눈보라를 맞고 함께 서 있었다. 작업자들은 추위와 싸우며 일하고 있는데 현장 책임자인 나만 혼자 따뜻한 곳에 있는 것은 내 마음이 허락지 않았다. 그렇게 2일을 제주도의 강추위와 눈보라에 맞서며 철근 배근 작업을 완료했다. 작업을 마칠 때면 발가락 끝에 감각이 없는 것 같았다. 육지에서 전기와 설비 팀이 현장에 도착하고 작업을 진행하였는데 너무 추워서 일을 못하겠다며 우비를 사달라고 했다. 비는 오지 않지만 칼바람을 막아줄 무언가가 필요했던 것이다. 그래서 후다닥 조천에 있는 건자재 철물점에서 두꺼운 우비를 사 왔다. 보라색의 작업용 우의를 입고 오후 늦게 해가 질 때까지 설비 배관 작업이 진행되었다. 


23년 12월 폭설로 고립된 송당리 마을에서


기초 콘크리트 타설을 위해서 그렇게 악천후와 맞서며 고생했건만, 기초 콘크리트 타설 전날 저녁 10시쯤 레미콘 회사에서 전화가 왔다. 이날 저녁 6시부터 함박눈이 내리고 있어서 내일 기초 콘크리트 타설이 조금 걱정되었던 터였다. 휴대폰이 울리는 순간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나'라는 노래 가사가 갑자기 생각났다. 레미콘 회사에서 연락 온 이유는 밤부터 내일까지 폭설이 예보되어 있어 레미콘 공급이 어렵다는 이유였다. 우리 현장의 경우 송당리 상동 마을 약간 위쪽에 위치해 있어 도로가 경사가 졌기 때문에 레미콘 차량이 올라갈 수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눈 덮인 도로에서 무거운 중량의 레미콘 차량을 운행하는 것이 위험하기 때문에 레미콘 기사들이 운행을 중지한다고 역으로 회사에다가 통보를 해왔다고 했다. 제주도에 폭설이 내리면 대부분 중산간에 있는 도로가 통제된다. 1100 도로, 5.16 도로, 번영로, 평화로, 남조로 등이 단골 고객들이다. 기초 콘크리트를 타설 하기 위해서 현장에서 준비해야 하는 사항들은 여러 가지가 있다. 첫 번째 레미콘 물량 예약, 콘크리트 타설을 위한 펌프카, 콘크리트 타설 작업 인부 등. 레미콘 회사와 통화를 끝내고 바로 골조 김팀장에게 연락을 했다. 결국 기초 콘크리트 타설 일정은 기약 없이 미루어졌다. 다음날 새벽 7시 현장에 도착해 보니 밤새 내린 눈으로 현장은 온통 하얀색으로 덮여있었다. 기온은 영하 1도를 기록하고 있었다. 콘크리트 타설시 외기 온도는 영상 4도 이상이어야 한다. 기온이 4도 이하로 내려가면 콘크리트 양생이 안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동절기 콘크리트 타설 작업 시 기상 예보를 통해서 외기 온도를 확인하고 작업을 진행해야 한다. 마음 한편으로 오늘 기초 콘크리트 타설을 하지  못한 것이 오히려 잘 된 것 같았다. 현장 앞에 도로는 눈이 얼어서 차량 운행이 어려웠다. 뒤에서 속력을 멈추지 않고 그대로 치고 올라가면 겨우 올라갈 정도였다. 만약 중간에 멈추었다가 다시 올라가려고 하면 차량은 과부하 쇼크를 받은 것처럼 이리저리 마구 요동만 치며 위로 올라가기는커녕 뒤걸음질만 쳤다. 50m 이상 후진으로 다시 평지로 간 다음 탄력을 이용하여 액셀을 밟아야 겨우 지나갈 수 있었다. '이런 도로 상태에서 펌프카와 레미콘 차량이 미끄러져 오도 가도 못하게 되었다면...'  생각만 해도 아찔했다. 일기 예보를 보니 앞으로 3일 동안 강풍을 동반한 폭설이 예정되어 있었다. 오전 8시가 지나자 다시 눈이 오기 시작했다. 이때는 몰랐다. 내가 송당리에 홀로 고립된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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