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간 - 6. 고마운 전기와 설비팀
"제주 공항 1번 게이트 앞 버스 정류장에서 직행버스 타고 송당로터리로 오세요!"
제주도에 있는 전기, 설비 팀이라면 아무 문제가 되지 않겠지만 육지에 있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전기 같은 경우 임시 전력부터 전기 배관, 입선, 전기 콘센트 박스, 등기구 설치 및 준공을 위한 전기 안전 검사까지 총 13번~15번 정도 제주도로 공사를 하러 와야 한다. 설비의 경우도 별반 다르지는 않다. 오수, 하수 배관 작업 및 난방, 급수 배관 작업 그리고 보일러와 위생기기 설치 등을 위해 총 12번~13번 정도 현장에 투입되어야 한다. 제주도에 여행이 아니라 작업을 위해서 새벽 비행기에 몸을 싣고 현장에 도착하자마자 1박 2일의 작업일정이 시작된다. 다음날 오후 비행기로 육지로 돌아가야 하기 때문에 몸은 더욱 바빠진다. 앞에서도 잠깐 언급하였지만 작업 타이밍 맞추는 것도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만약 내일모레 전기팀이 골조 벽체에 전기 배관 작업을 하러 오는 것으로 일정이 확정되어 비행기까지 예약되어 있다고 치자. 그런데 비가 오거나 작업자가 결근하여 옹벽 철근 배근 작업이 중단되었다면 전기 배관 작업을 할 수 없다. 왜냐하면 전기 박스와 전선 인입을 위한 배관 작업을 정확한 위치에 설치해야 하는데 아무것도 없는 허당에 설치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설비도 마찬가지다. 화장실, 주방 싱크대, 거실 세면대에 급수 배관 작업을 해야 하는데 선행 작업이 안되어 있다면 작업 자체가 불가능하다. 반대로 만약 전기 배관과 설비 작업이 완료되지 않으면 형틀 거푸집을 설치할 수 없다. 따라서 전기와 설비 작업 일정을 형틀 팀과 협의하여 정확하게 맞추는 것이 어려운 것이다. 다행히 송당일경의 경우 골조 공사 기간 동안 단 한 번도 일정이 어긋나거나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한 적이 없다. 철근 콘크리트 골조 공사를 12월 초에 시작하여 2월 초에 끝났으니 2달 정도 공사를 진행한 것이다. 이 기간 동안 전기는 총 6번, 설비는 4번 육지에서 제주로 왔다.
제주도는 대중교통이 불편하다. 버스가 있긴 하지만 배차간격이 보통 30~40분이며, 자가용으로 10분이면 도착할 거리를 20분 이상 돌아서 가는 경우도 허다하다. 왜냐하면 제주는 관광도시이다 보니 아무래도 렌터카 이용이 많고 지형의 특성상 버스가 다니지 않는 도로가 많다. 그렇기 때문에 대중교통을 이용한 이동이 불편한 것은 어쩔 수 없는 현실일 것이다. 오죽하면 제주도에서는 자녀들이 대학을 가면 승용차를 선물해 준다고 한다. 구좌읍 송당리에 있는 송당일경 현장에서 제주 공항까지 거리는 33km다. 승용차로 40~50분 정도가 소요된다. 전기 설비 팀이 육지에서 제주로 작업을 위해 방문할 때 작업 도구와 자재등을 캐리어에 가득 채워서 온다. 마음 같아서는 내가 공항까지 매번 마중 나가서 현장으로 편안하게 태워서 오고 싶지만 현장에는 형틀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다. 또한 한두 번도 아니고 앞으로 설비와 전기 모두 20번 이상 온다고 가정하면 3일에 한 번꼴로 골조 공사 기간 동안 제주 공항에 마중을 나가야 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만약 현장으로 오는 버스가 없다면 당연히 그렇게 했을 것이다. 그런데 다행히 공항에서 현장 바로 앞 근처까지 오는 직행 버스가 있었다. 111번, 112번 직행버스가 제주 공항 1번 게이트 앞 정류소에서 송당 로터리까지 운행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처음에는 전기와 설비팀이 올 때 공항으로 픽업을 나갔지만 그 이후부터는 모두 직행 버스를 타고 현장에 왔다. 아예 버스 운행 시간표를 전기와 설비팀에게 보내주었다. 나는 현장에서 1킬로 정도 떨어진 송당 로터리 버스 정류장으로 픽업만 나가게 되었다.
육지에 있는 전기와 설비 업체가 여행이 아니고 일을 하기 위해서 제주를 방문하는 것은 두 가지 경우 중에 하나이다. 공사의 규모가 크고 많은 이윤이 남는 공사일 경우가 한 가지이고, 돈을 떠나 의리로 오는 경우가 두 번째 경우이다. 제주도 현장의 경우 후자다. 한번 생각해 보라. 제주에 오전 10시 이전에 도착하려면 김포 공항에서 새벽 6~7시 사이의 비행기를 타야 한다. 그럼 서울에 있는 자신의 집에서 새벽 5시에 공항으로 출발해야 한다. 작업도 혼자서는 힘들다. 2명이 작업을 해야 한다. 서울 경기 기준으로 전기 기능공 일당이 하루 20~25만 원이다. 당신이라면 얼마를 받아야 육지에서 제주로 공사를 하러 오겠는가? 전기 업체의 경우 제주도 현지 전기 업체에게 받은 견적보다 적은 비용으로 진행하였다. 그냥 육지에서 제주로 왔다 갔다 하는 경비에 인건비정도 계산한 금액으로 계약을 했다. 말 그대로 의리로 한 것이다. 설비도 배관 지급 자재를 제외하고 작업에 필요한 공구와 안전화까지 캐리어에 챙겨서 왔다. 골조 공사 완료 후 설비 공사는 제주도 현지 업체와 진행하였지만 중요한 기초 설비 배관 작업과 급수, 하수 배관 작업, 그리고 외부 오하수 연결작업까지 함께하였다. 제주도에 대단하지도 않은 주택 하나 짓는데 전기 설비 작업자를 고생시키냐고 생각하는 독자들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나라고 제주도 업체와 공사하기 위해서 안 알아봤을까? 책 초반에 설명하였지만 육지 업체와 작업을 진행한 가장 큰 이유는 완성도 높은 건축을 위해서다. 지금까지 30년이란 세월 동안 수백 수천 군 데의 업체와 건축 공사를 진행해 본 경험이 있기 때문에 이제 전화 통화 시 몇 마디 주고받으면 그 업체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감이 잡힌다. 그리고 공사 작업 부분에 대해 믿을 수 있는지 없는지에 대한 부분도 대충 느낌이 온다. 그래서 작업에 대한 실력이 검증된 업체에게 부탁해서 진행하게 된 것이다. 제주도의 한 전기 업체를 예를 들면 독일 융 스위치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설치해 본 적도 없단다. 설치 경험이 있는 업체는 돈을 더 달란다. 그것도 어느 정도 이해될 수 있는 금액이 아니고 억지 금액이다. 제주도에 분명히 정직하고 제대로 일을 하는 전기와 설비 업체가 있을 것인데 그 업체를 못 찾는 내가 개탄스러웠다. 그래서 많은 고민 끝에 나와 오랜 인연을 이어온 업체들에게 부탁한 것이다. 육지에 있는 업체를 끌어드려서 공사를 진행한 것은 결국 좋은 결과로 이어졌다. 조경 공사 시에 정원 조명과 경관 조명이 수십 개나 설치되었는데 만약 제주도 업체였다면 추가 비용을 달라고 난리 부르스를 쳤을 것이다. 육지에서 제주까지 새벽비행기로 내려와 피곤한 몸을 이끌고 열심히 작업해 준 것에 너무 고마움 마음이다. 앞으로도 전기와 설비 업체와 나와의 인연은 계속 이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