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간 - 5. 고립 그리고 기초 콘크리트 타설
"외로움은 견디고 고독은 즐기는 것이다!"
밤새 내린 폭설은 제주도 중산간의 모든 도로를 스케이트 장으로 만들었다. 그렇다. 나는 고립이 된 것이다. 중산간 지역인 송당리 마을 앞 도로는 얼어붙은 눈으로 체인 없이는 운행이 불가능했다. 마을 안의 모든 차량은 마치 하얀 이불을 덮고 깊은 겨울잠에 빠진 것처럼 그 어떠한 미동조차 없다. 숙소 앞에 도로에는 지나가는 차량도 없다. 옹기종기 모여있는 상점들은 모두 불이 꺼진 채 "close"라는 문구만이 걸려있다. 마치 영화 "투모로우"의 한 장면을 보는 것 같았다. 모든 것이 얼어붙어버린 것 같았다. 하얀색의 솜털 뭉치가 하늘을 뒤덮은 듯이 함박눈이 계속 내렸다. 외로움은 견디고 고독은 즐기는 것이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나는 이 상황을 즐기기로 했다. 그래서 두꺼운 외투를 챙겨 입고 유튜브도 촬영할 겸 동네 한 바퀴 산책을 하기로 하고 숙소를 나섰다. 건축 현장의 소중한 에피소드를 공유하고 기억하기 위해서였다. 아스팔트 도로의 차선은 고사하고 검은색의 아스콘은 온데간데없다. 눈이 내리면 세상이 깨끗하게 변한다. 송당리 마을뿐만 아니라 주변의 오름들과 숲은 환상적인 설경 속 화이트 세상으로 보인다. 발목까지 빠지는 눈으로 어느새 양말까지 젖어 버렸다. 여기저기를 둘러보면서 눈밭을 지나가는데 낯익은 얼굴이 보였다. 현장 작업자들과 함께 점심을 먹는 단골 식당 주인분이었다. 평소에는 자신이 살고 있는 제주시에서 전기차를 이용하여 송당리 식당으로 출근했는데 폭설로 버스를 이용하여 정류장에서부터 걸어오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의지의 한국인!'이라고 엄지를 치켜세웠다. 웃으면서 반갑게 인사를 하고 혹시 길 건너편의 편의점은 문을 열었는지 확인해 보았다. 다행히 편의점은 문을 열고 영업 중이었다. 편의점 사장님은 성산읍에 거주하고 있었다. 어떻게 송당리까지 무사히 올 수 있었냐고 물어보니 도로가 모두 통제되어 해안도로로 돌아서 왔다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차량은 4륜구동 suv이기 때문에 눈길에도 끄떡없다고 내심자랑을 하였다. 내 차량도 suv 차량이다. 차량을 구입한 지 3개월도 채 안되었는데 구입 당시 4륜 구동을 옵션으로 선택할까를 엄청 고민하였다. '1년에 몇 번 사용하지도 않는데 몇백만 원이나 들이고 4륜 구동을 사야 하나?'하고 망설이다가 결국 선택하지 않았다. 그런데 편의점 사장님 이야기로는 제주도는 무조건 4륜 구동 차량을 사야 한다고 말했다. 1년에 한 번을 사용하더라도 그 한 번이 당신의 목숨을 구할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폭설뿐만 아니라 제주도는 비포장 도로가 많아서 흙바닥에 들어가야 하는 경우도 많다고 했다. 제주도 토질의 특성상 화산재가 쌓여서 만들어진 지반이라 물을 먹으면 뻘처럼 질퍽해진다. 따라서 제주도에 이주하여 주욱 살아갈 계획이라면 4륜 구동 옵션은 선택이 아닌 필수다. 편의점에 들른 김에 간단한 식사 거리를 사서 숙소로 돌아왔다. 그렇게 3일 동안의 고독이 시작되었다.
제주도의 폭설은 3일 동안이나 계속되었다. 하루종일 내리다 말다를 반복하고 도로에 쌓인 눈은 낮에 잠시 녹았다가 밤사이 얼어서 빙판길이 되었다. 송당 마을은 차도 사람도 다니지 않는 얼어붙은 마을이 되었다. 공사 현장에 대한 걱정과 고립되었다는 불안한 생각이 들었지만 나는 최대한 이 순간을 즐기려고 노력했다. 눈으로 덮인 송당 마을 풍경을 사진과 동영상에 담고, 숙소에서 넷플릭스 드라마와 영화도 보고, 송당일경 자재 스펙에 대한 정보도 얻고 정리하고, 건축 공사비 예산도 점검하고, 육지에서 읽으려고 가져온 책들을 꺼내서 독서도 했다. 그렇게 송당리 고립의 추억이 남고 시간은 지나갔다. 폭설로 공사 중단 일주일 후 드디어 기초 콘크리트 타설 작업을 진행했다. 콘크리트를 타설 하는 당일 낮기온은 최고 영상 6도까지 올라간다고 예보되었고, 기초 철근 아래 쌓인 눈이 녹고 있었다. 하지만 기초 콘크리트가 가장 중용한 구조인 만큼 철근 아래 쌓인 눈을 제거해야 했다. 나를 포함해서 골조 김팀장과 콘크리트 타설공 2명 모두가 달라붙어 손으로 일일이 눈을 떠서 기초 거푸집 밖으로 던졌다. 최대한 눈 제거 작업을 마치고 레미콘을 출하시켰다. 기초 콘크리트를 타설 하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작업 포인트는 진동다짐 철저와 레미콘 물량 공급이 끊어지지 않게 준비하는 것이다. 레미콘을 콘크리트 펌프카를 통해 기초 철근과 거푸집 안으로 타설 하게 되며 바이브레이터라는 진동기로 기초 거푸집 안에 부어진 콘크리트 다짐 작업을 해주게 된다. 진동 다짐 작업을 하지 않을 경우 블리딩 같은 재료분리 현상이 발생하여 콘크리트 품질 저하의 원인이 된다. 강도 저하는 물론이고 철근과 일체화가 되지 않아 심각한 하자가 발생할 수도 있는 것이다. 따라서 콘크리트 진동 다짐기로 철저히 작업하여 우수한 기초 콘크리트 품질을 확보해야 한다. 그리고 기초 콘크리트 타설 중에 레미콘 수급사정으로 인하여 오랜 시간 콘크리트 타설이 중단된 경우 콜드 조인트라는 하자가 발생하게 된다. 먼저 친 콘크리트가 굳으면서 나중에 친 콘크리트 사이에 분리된 것처럼 보이는 조인트가 발생하는 것이다. 기초는 건물에서 가장 중용한 구조이다. 기초가 무너지면 건물이 무너진다. 그렇기 때문에 기초 콘크리트 품질 관리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송당일경' 기초 콘크리트 타설 당일 그동안 폭설로 중단되었던 현장이 우리 현장뿐만이 아니었다. 제주도의 거의 모든 건축 공사 현장의 레미콘 타설 작업이 중단되어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우리 현장 타설 당일은 레미콘 물량 잡기가 어려울 뿐만 아니라 수급이 원활하지 않았다. 레미콘 회사에 기초 콘크리트 타설이기 때문에 레미콘 물량이 끊기면 안 된다고 신신당부를 하였고 타설 하는 동안에도 레미콘 출하실에 지속적으로 통화를 해서 무사히 콘크리트 타설을 완료할 수 있었다. 언제 그랬냐는 듯이 주변은 하얀색에서 다시 초록색의 자연 풍경으로 돌아왔고 골조 김팀장은 길게 드리워진 겨울 햇빛에 작업용 선글라스를 끼고 쇠흙손 작업으로 기초 콘크리트 타설 작업을 마무리하였다.
때아닌 폭설로 3일 간 고립되었던 나는 오히려 그 순간을 즐기기로 하였지만, 골조 김팀장은 고통의 시간이었다고 한다. 3일간 아무 일도 못하면서 먹고 자고 하는 경비는 경비대로 나가고 작업자들은 매일 언제 일을 시작하냐고 독촉 전화가 오고 공사기간은 길어지고.... 가장 힘들었던 것은 혼자서 우두커니 모텔 방구석에서 지내는 거라고 했다. 먹고 자는 공간만 다를 뿐 나하고 똑같은 상황이지만 누군가는 즐기고 누군가는 인고의 시간이었던 것이다. "좋고 나쁜 것은 생각하기 나름이다."라는 세익 스피어의 말처럼 각자 처한 상황을 바라보는 시각이 달랐던 것이다. 자연 앞에 인간은 한없이 나약하고 이길 수 없다. 자연 앞에 겸손해지고 순응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아무리 어려운 상황이 와도 "이 또한 지나가리라."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골조 김팀장도 지금 와서 생각하면 제주도 현장에서 경험한 한파와 고립이 또 하나의 추억일 것이다. 다행히 기초 콘크리트 타설 이후 낮 기온이 최고 10도까지 올라갔다. 콘크리트 타설 다음날 김팀장과 1층 바닥 먹매김 작업을 함께 진행하였다. 창호와 개구부 주위에 여유 치수를 확인하고 위치를 외부 풍경에 맞추어 조정하고 본격적인 철근 콘크리트 형틀 작업이 시작되었다. 기초 콘크리트 타설 예정일이 일주일이나 지연되었지만 앞으로 남은 공사 기간에서 충분히 만회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마음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