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만 3천 원어치의 분개 29화
양치질하면서 거울을 보니 머리가 지저분해 보였다.
바쁘고 어수선해서 머리 손질을 제때 하지 못한 탓이다.
생각난 김에 파마해야겠다고 생각하고 미용실을 검색했다.
별로 마음에 드는 헤어디자이너가 없어서 미용실 유목민 생활을 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거리와 가격으로 기준점을 정한 뒤, 그것을 기준으로 일차 필터링을 했다.
그런 다음 리뷰로 이차 필터링을 했다.
리뷰라는 게 어차피 '짜고 치는 고스톱'이라는 것을 잘 알지만 말이다.
그새 파마 비용이 많이 올라와 있었다.
비싼 체인점이 아닌데도, 대부분의 미용실이 10만 원대 가격을 제시하고 있었다.
그것도 첫 방문 할인, 네이버 예약 고객 할인, 1주년 기념 할인 등 각종 이유를 붙인 이벤트 가격이었다.
그러다 한 곳이 눈에 들어왔다.
다른 곳에 비해 상당히 저렴한 가격 때문이었다.
위치를 보니 집에서 가까운 곳이었고, 개업한 지 몇 달 되지 않은 곳치곤 제법 좋은 리뷰가 많이 쌓여있었다.
개업 기념 특별 할인.
기장 추가 없음.
다른 시술 강요 없음.
내 맘에 쏙 드는 조건이었다.
무슨 특별한 헤어스타일을 하는 것도 아니고 단순한 단발 파마를 하는 데는 그 정도가 딱 적당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거기에 3만 원을 얹어 10만 원으로 나름의 가격 책정을 했다.
귀밑 5센티 정도의 짧은 단발에도 기장 추가금이 붙는다는 것, 머릿결 손상을 핑계로 2~3만 원 정도의 영양제 값을 더 지불해야 한다는 것을 경험으로 잘 알기 때문이다.
약속 시간이 되어 J 미용실로 가서 사라 실장님을 찾았다.
예상대로 프로필 사진과는 너무나도 다른 사람이 내 곁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괜찮다.
내게 중요한 건 미용사의 솜씨지 그녀의 미모가 아니니까.
어떤 스타일을 원하느냐고 물은 사라 실장님이 내 머리카락을 이리저리 만져보더니 말했다.
머릿결이 많이 상해서 영양을 넣으셔야 할 것 같아요.
예상했던 말이다.
영양 넣는데 얼마인가요?
2만 원짜리가 있고 3만 원짜리가 있는데 고객님은 3만 원짜리 넣어야 할 것 같아요.
이것도 예상했던 말이다.
2만 원짜리로 넣겠다고 답변했다.
아마 사라 실장님도 내가 2만 원짜리를 고를 거라는 걸 예상했을 것이다.
그러면 178,000원입니다.
네? 178,000원이라고요?
홈페이지 가격보다 정확히 10만 8천 원이 비싼 가격이었다.
3만 원 정도는 더 낼 각오가 돼 있었지만, 그런 터무니없는 가격을 지불할 생각은 애당초 없었다.
약간 기가 죽은 목소리로 내가 말했다.
저는 7만 원짜리 세팅파마를 하러 온 거거든요.
어휴 고객님, 그건 학생들이나 하는 거죠.
우리 고객님처럼 연세 있으신 분이 그런 저가 펌 했다간 머리칼 다 상해요.
그래서 영양 넣는 거잖아요.
영양만으로는 안 돼요.
대신 제가 컷 비용 조금 빼 드릴 테니 그냥 이걸로 하세요.
여기에 또 컷 비용이 추가된다고요?
어머나 고객님, 요즘 미용실 안 다녀보셨나 보다.
요즘은 컷 비용 따로 받는 곳 많아요.
졸지에 '연세 있으신' '요즘 미용실 안 다녀 본' 고객이 된 나는 어찌해야 할지 망설였다.
그런 내게 사라 실장님이 선심 쓰듯 말했다.
원래 컷 비용은 2만 2천 원인데, 1만 5천 원만 받겠다고.
193,000원을 내고 울며 겨자 먹기 할 것인가, 뒤통수가 따가워도 벌떡 일어나 나갈 것인가.
비싼 비용도 비용이지만 미용실의 상술이 얄미워서 고민하고 고민했다.
잠시 뒤 나는 그대로 앉아 있는 쪽을 택했다.
이미 미용실 가운으로 갈아입었다는 게 표면적 이유였지만, 그보다는 귀차니즘 때문이었다.
또다시 미용실을 찾고, 예약하고, 시간 맞춰 방문하는, 그 과정을 반복하기 싫었던 거다.
언니, 너무너무 잘 어울려요.
두 시간 만에 연세 드신 고객님에서 언니로 회춘한 나는 193,000원을 지불하고 미용실을 나섰다.
'다음에 또 오세요' 라는 인사에 의례적인 '예' 답변 조차 하지 않은 게 내 저항의 전부였다.
그러고 나서 이렇게 브런치에서 항변하고 있다.
사라 실장님, 앞으론 그러지 마세요!
J 미용실 사라실장님, 앞으론 그러지 마세요!
J 미용실 사라 실장님, 앞으론 그러지 마세요!
J 미용실 사라실장님, 앞으론 그러지 마세요!
J 미용실 사라실장앞으론 그러지 마세요
J 사라실장님, 앞으론 그러지 마세요!
J 미용실 사라실장님, 앞으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