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리 교사의 시선
지필고사 기간, 시험 감독은 부정행위를 적발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그것을 예방하는 것이다.
나는 시험지를 배부하기 전, 아이들의 눈을 맞추며 나지막이 말한다. "과정을 무시한 결과는 너희를 더 불안하게 만들 뿐이야. 스스로를 믿자." 시험이 시작되면, 나는 교실 중앙에 서서 정면을 응시한다. 걷는 소리가 아이들의 집중을 방해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그저 고요히 서서 아이들의 미세한 떨림, 불안한 눈빛, 정직한 땀방울이 만들어내는 침묵의 파동을 느낄 뿐이다.
지금까지 나의 예방 멘트가 효과적이었던 건지, 아니면 그저 내 눈이 나빴던 건지, 나는 단 한 번도 학생의 부정행위를 직접 적발해 본 적이 없다. 하지만 만약 그런 일이 발생한다면 내가 해야 할 일은 명확하다. 학교의 매뉴얼은 건조하고 단호하다. ‘다른 학생들의 시험을 방해하지 않도록 부정행위 사실 통보, 조용하게 신속하게 부정행위 발견 즉시 증거물 수거, 시험 종료 후 진술서 작성.’ 감정이 개입될 여지는 없다.
나의 진짜 사유는 그 기계적인 절차가 끝난 후에 시작된다. 부정행위가 성적관리위원회와 징계위원회 안건으로 넘어간 뒤, 나는 비로소 그 학생의 담임교사로서 그와 마주 앉게 된다. 적발 교사였던 적은 없지만, 다른 교사에게 적발된 아이의 담임이었던 적은 몇 번 있었다. 그때 나는 가장 가까이서, 그리고 가장 복잡한 심경으로 아이의 사유를 들여다볼 수 있었다.
그 작은 종잇조각에는 단순히 성적을 올리고 싶은 욕심을 넘어, 우리 사회의 불편한 진실이 빼곡하게 적혀있다. 노력만 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능력주의의 허상 속에서, 아이들은 이미 출발선이 다르다는 것을 너무 일찍 알아버렸다. 정직한 노력만으로는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는 격차 앞에서, 부정행위는 '기회의 평등'을 스스로 만들어내려는 그릇된 시도가 되기도 한다. 과정을 무시하고 결과만으로 모든 것을 평가하는 거대한 시스템 속에서, 아이들은 살아남기 위해 자신만의 방식으로 규칙을 비트는 것이다.
모둠 수행평가 보고서에서는 더 노골적인 갈등이 드러난다. 보고서 마지막에 덧붙여진 "이번 보고서는 전적으로 OOO의 노력으로 완성되었으며, 무임승차한 XXX, △△△에 대한 적절한 조치를 바랍니다."라는 문장을 발견했을 때, 나는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알 수 없게 된다. 협동 과제에서 배신감을 느낀 아이의 서툰 고발. 나는 이 문장을 '친구에 대한 비난'으로 보고 훈계해야 할까, 아니면 '정의를 구현하려는 어설픈 시도'로 보고 토론의 장을 열어야 할까. 아이들이 마주한 첫 '사회'의 부조리 앞에서, 교사인 나는 어떤 길을 안내해야 하는가.
가정통신문 회신란에서 발견되는, 어설프게 부모님을 흉내 낸 아이의 사인 앞에서 나의 고민은 가장 깊어진다. 삐뚤빼뚤한 글씨로 쓰인 아버지의 이름 옆에서, 나는 아이의 수많은 밤을 상상한다. 처음 한두 번은 모른 척 넘어간다. 그것을 지적하는 순간, 아이는 내 앞에서 자신의 위태로운 가정을 고백해야만 하니까. 하지만 그것이 반복될 때, 나는 더 이상 방관할 수 없다. 아이를 따로 불러 왜 그랬는지, 도움이 필요한 건 없는지 물어야만 한다.
바로 이 지점에서 담임교사라는 역할의 아이러니가 시작된다. 똑같은 행동에 대해서도 학생의 상황을 알기에 다르게 대해야 할 때가 있고, 어떤 순간에는 나의 모든 감정과 재량을 배제하고 정확한 매뉴얼대로 대처해야만 할 때가 있다. 이 모순된 역할 사이에서 길을 잃을 때, 아이러니는 족쇄가 되어 교사의 발목을 잡기도 한다.
결국 교실에서 발견되는 수많은 '윤리적 딜레마'들은 아이들 개인의 도덕성 문제라기보다, 우리 교육과 사회의 구조적 문제가 아이들의 삶에 투영된 결과물이다. 오직 하나의 정답만을 암기하도록 강요하는 교육은 아이들에게서 스스로 질문하고 사유할 힘을 빼앗는다. 과정의 가치를 무시하고 성적과 순위라는 결과만으로 모든 것을 평가하는 사회는 '결과만 좋으면 된다'는 왜곡된 성공 신화를 주입한다. 입시 경쟁에서 한번 낙오하면 끝이라는 극심한 불안감은 아이들을 막다른 골목으로 내몰고, 그곳에서 아이들은 살아남기 위해 자신만의 방식으로 규칙을 비트는 것이다. 이런 환경 속에서 아이들에게 무조건적인 정직과 성실을 요구하는 것은 어쩌면 가장 폭력적인 위선일지 모른다.
한 명의 교사로서 이 거대한 시스템 안에서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다는 무력감에 빠질 때가 있다. 때로는 나조차 이 시스템의 부품이 되어, 복잡한 사유를 멈추고 매뉴얼 뒤에 숨어 나의 단기적 안위만을 챙기고 싶은 유혹에 시달린다. 하지만 나는 그런 교사가 되지 않기 위해, 'A는 B다'라고 쉽사리 단정하기보다 그 이면의 딜레마를 자꾸만 상기시키려 노력한다.
혹여 내 눈앞에서 부정행위가 일어난다면, 나는 결코 눈감지 않을 것이다. 규정에 따라 처리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 학생을 '부정행위자'라는 꼬리표로만 기억하고 싶지는 않다. 그의 행동 이면에 숨겨진 절박함과 우리 교육의 부끄러운 민낯을 함께 기억할 것이다. 종이 위에 남은 흔적은 아이들이 세상에 던지는 질문이다. 그 질문에 성급히 답하기보다, "왜 그렇게까지 하고 싶었니?"라고 더 나아가는 질문으로 되돌려주는 것. 정답 맞히는 기술을 넘어, 진짜 자신의 삶과 연결하는 질문을 던지는 법을 가르치는 것이야말로, 내가 아이들의 일탈을 통해 고통스럽게 배운 진짜 교육인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