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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것의 언어, 숨길 수 없는 진심에 대하여

윤리 교사의 시선

by 오이랑

중·고등학교 아이들의 세계는 겉보기엔 거칠고 단순하다. 복도를 질주하고, 의미 없는 농담에 자지러지며, 급식 순서에 목숨을 건다. 그들은 좀처럼 자신의 속내를 언어로 표현하지 않는다. 괜찮지 않아도 "괜찮습니다"라고 말하고, 도움이 필요해도 "혼자 할 수 있습니다"라고 말하며, 다툼의 이유를 물으면 "그냥요"라는 세 글자로 벽을 친다. 하지만 이성으로 통제하는 그들의 말과 달리, 무심코 종이 위에 남기는 흔적들은 자신의 진심을 속이지 못한다.


나는 담임으로서 아이들과 상담할 때, 학생에게도 펜과 종이를 건넨다. 그리고 말한다. "우리 대화를 잊지 않도록, 중요한 건 같이 적으면서 이야기하자." 나는 나대로 상담일지를 쓰고, 아이는 아이대로 자신의 생각을 적는다. 상담 말미에 우리는 서로의 기록을 비교해 본다. 우리의 대화가 각자에게 어떻게 기록되었는지를.

진로 상담 시간, 장래 희망을 묻는 내 질문에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라고 무심하게 대답하던 아이가 있었다. 하지만 그가 무의식적으로 연습장에 그리고 있던 것은 정교한 자동차 설계도였다. 입으로는 방황을 말했지만, 그의 손은 누구보다 선명한 꿈을 그리고 있었다. 부모님의 기대와 자신의 꿈 사이에서 겪는 혼란을, 아이는 말 대신 그림으로 내게 보여준 것이다.


또 다른 아이는 상담 내내 거대한 소용돌이를 그렸다. 점에서 시작해 무한히 확장하는 소용돌이인지, 커다란 원에서 한 점으로 수렴되는 소용돌이인지는 알 수 없었다. "대학에 가고 싶지 않아요." 아이는 말했지만, 그 이유가 꿈이 없어서인지,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성적 때문인지 스스로도 갈팡질팡했다. 나는 말했다. "대학은 꿈을 확정한 사람들만 가는 곳은 아니야. 그곳에서 꿈을 찾거나, 만들어가기 위해 가는 사람도 있어." 아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중얼거렸다. "지금 하고 싶은 걸 뭐든 지원해 주시는 부모님께 고마운데, 그래서 더 죄송해요." 상담이 끝나고, 아이는 자신의 소용돌이와 내 상담일지를 번갈아 보더니, 내 노트를 사진으로 찍어 갔다. 기억하고 싶다면서.


중학교에 있을 때 마주한 날것의 언어들은 더 강렬했다. 수행평가 답안지에 친구를 향한 거친 욕설을 휘갈겨 쓴 아이. 그 이면에는 인정받고 싶지만 마음처럼 되지 않는 성적, 끓어오르는 경쟁심과 질투, 그리고 그 모든 것을 솔직하게 터놓을 곳 없는 외로움이 숨어 있었다.


또, 반성문이라며 제출한 종이에 반성은커녕 좋아하는 선생님에 대한 고백과 희롱의 경계를 넘나드는 글을 써낸 아이도 있었다. 그 미숙하고 뒤틀린 표현들은 분명 잘못된 것이지만, 동시에 학교와 가정 어디에서도 보살핌 받지 못한 아이들의 서툰 구조 요청이기도 했다.


연애 문제로 힘들어하던 아이의 글씨는 금방이라도 부서질 듯 가늘게 떨리고, 부모님과의 갈등이 깊어진 아이의 글씨는 종이를 찢을 듯 분노로 가득 차 있다. 말로는 숨길 수 있어도, 쓰는 행위에는 그 사람의 삶 전체-진로, 진학, 가정사, 친구 관계, 연애사-가 고스란히 묻어난다. 나는 그들의 글씨와 낙서에서, 말로는 차마 다 하지 못하는 수많은 이야기를 읽는다.


물론 그 흔적들을 통해 아이의 모든 것을 안다고 생각하는 것은 12화에서 경계했던 오만이다. 나는 그저 그들의 진심이 남긴 작은 파편들을 조심스럽게 주워 담을 뿐이다. 그리고 그 파편들을 통해 아이의 세계를 조금 더 깊이 이해하려 노력할 뿐이다.


어쩌면 이것은, 평소 주변인들로부터 다정한 사람은 아니라는 평을 듣는 내가 교사로서 구사할 수 있는 최선의 태도가 아닐까? 타고난 온기로 단번에 아이를 감싸 안기보다, 남겨진 흔적들을 단서 삼아 마음을 읽어내려는 '인지적 다정'.


그렇기에 나는 때로 "네 글씨가 많이 힘들어 보이는데, 무슨 일 있니?"라고 묻는 다정함보다, 한 걸음 물러서는 다정이 필요할 때도 있다고 믿는다. 어설픈 예상으로 아이의 전부를 안다고 착각하지 않으려는 노력, 내가 해결해 줄 수도, 온전한 위로가 되지도 못할 상처를 굳이 캐묻지 않으려는 노력. 아이가 스스로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언어로 꺼내놓을 준비가 될 때까지 묵묵히 기다려주는 것. 그것 또한 내가 만나는 아이들에게 꼭 필요한 최선의 태도일지 모른다. 중요한 것은, 말의 세계 너머에 있는 그들의 진짜 목소리에 귀 기울이려는 나의 자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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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 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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