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스턴, 봄을 달린다 04

보스턴마라톤 04. 엑스포는 실망스러웠지만 뭐 그래도 괜찮아

by 아이언파파

커다란 캐리어를 끌며 컨벤션센터 입구에 들어서니 큰 가방을 가진 사람들은 한쪽으로 따로 불러 검사를 진행한다. 캐리어를 열고 진행 요원이 내용물을 들춰가며 위험한 물건은 없는지 살펴보았다. 이럴 줄 알았으면 깔끔하게 보이도록 정리 잘할걸. 지저분한 살림을 갑작스러운 손님에게 보여주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

보스턴 마라톤 선수 등록과 배번, 기념품 수령을 위해서는 미리 이메일로 안내받고 다운로드했던 입장권 entrance pass을 제시하여야 한다. 또한 본인 확인을 위한 여권 등 신분증도 지참해야 한다. 재미있는 것은 여권을 가져가지 않은 일행 분이 우리나라 운전면허증을 보여줬는데 통과되기도 했다는 것이다. 진행하는 자원봉사자 분은 한글을 몰랐을 텐데. 입장권은 사전에 PDF 파일 또는 NFC 비접촉 방식의 티켓을 스마트폰에 저장해두어야 한다. 나의 경우 아이폰을 사용하기 때문에 애플 월렛에 패스를 저장해 두었고 간단하게 인증을 마칠 수 있었다

.

커다란 투명 기어백에 배번을 포함한 여러 물품들을 담아 주는데, 기어백은 대회 당일 피니쉬 라인 통과 후 나에게 필요한 물품(기어)을 보관해 두는 백이다. 경기를 마치고 보온을 위한 일상복, 슬리퍼 등 편안한 신발, 그 외 휴대폰 등 경기 중에 휴대하지 않지만 경기를 마친 후 필요한 물품들을 보관한다. 출발지인 홉킨튼에서는 별도 짐 이동 서비스가 없기 때문에 대회 당일 셔틀을 타기 전 꼭 물품 보관 장소에 미리 맡겨야 한다

.

큰 투명 기어백 안에는 작은 투명 비닐의 스타트 에리어 빌리지 백이 들어있다. 여기에는 홉킨튼으로 이동 후 대회 출발 전 나에게 필요한 물건들, 물, 에너지젤 등을 담아두는 백이다. 대회 당일 아침 셔틀 탑승 전 스타트 백의 내용물을 보여주며 보안 검색이 이루어진다. 출발 직전 필요한 물건은 선수 본인이 휴대하고 남은 스타트 백 빈 봉투는 버리고 출발한다. 기어백과 스타트 백 모두 내용물이 들여다보이는 투명 비닐이다. 몇 년 전 보스턴 마라톤 테러 이후 이런 보안 검색이 강하게 이루어지고 있다고 한다

.

대회 공식 후원사인 게토레이 제품들이 들어 있었다. 참가자 전원에게 나누어주는 기념 티셔츠는 공식 후원사인 아디다스의 긴팔 티셔츠였다. 보스턴 마라톤을 상징하는 하늘색과 노란색의 조합이다. 참가 신청 당시 내 신체 사이즈에 맞게 M사이즈를 신청했는데 실제 수령해 보니 나에게는 조금 큰 것 같았다. 그 외 공식 안내 책자, 스티커, 와펜 등 동봉되어 있다

.

배번 기념품을 수령하고 엑스포 장소로 이동하였다. 해외 메이저 마라톤에 참가했던 다른 분들 얘기를 들을 때마다 충동구매 욕구와 지름신(?)을 불러오는 화려하고 체계적이고 다양한 볼거리 가득한 엑스포장을 상상했는데 실망이었다. 사람들이 가장 많이 구입하는 윈드브레이커 재킷 등 공식 의류 부스는 진열대 간격이 좁게 설계되어 있어 많은 사람이 몰리며 아비규환 전쟁터 같았다. 시착해볼 수 있는 피팅룸 등도 있는지 없는지 일단 보이지가 않아 사람들 대부분 그 자리에서 겉옷을 벗어 착용해 보는 등 난리였다. 재킷 외 대부분 제품들이 주요 사이즈 품절 상태였다. 내 사이즈의 재킷만 집어 들고 서둘러 빠져나왔다. 얼마나 정신없는 장소였는지 일행 중 몇몇은 남자 재킷이 아닌 여자 재킷을 실수로 구입한 분들이 있었다. 다행히 사이즈는 맞았다

.

공식 의류 외 다른 제품 부스들은 생각했던 것보다 열악하고 대충 급조하여 준비한 듯한 인상이었다. 딱히 구경하고 둘러보고 싶은 마음조차 들지 않았고, 실제 구성품 또한 특별한 것이 없었다. 우리 중 몇몇은 평소 즐겨 먹는 에너지젤 브랜드인 스웨덴 몰텐 Maurten의 레이스 팩을 구입하였다. 그나마 내용물 구성이 가격에 비해 괜찮은 편이었다. 그래도 비쌌다. 다만 물통에 보스턴 로고가 찍혀 있어 그걸 기념으로 구입한 분들이 대부분이었다

.

러닝 브랜드들이 경쟁하듯 보스턴 마라톤 한정판 제품으로 참가자들의 눈과 마음을 즐겁게 만들어주는 그런 엑스포가 아니었기 때문에 실망스러웠다. 다른 메이저 마라톤 대회 엑스포는 더 좋을까. 보스턴 마라톤 공식 기념 의류인 아디다스 제품들은 꼭 대회 전 이메일로 안내받은 판매 사이트에서 사전 주문하여 한국에서 물품을 수령해 두는 것이 좋다

.

실망 가득했던 엑스포장을 도망치듯 빠져나왔다. 뭐 그래도 괜찮았다. 해외 메이저 마라톤은 처음이니까. 기대에 미치지 못했을 뿐 지금 이 순간 이 장소에 함께 있는 것만으로 충분히 즐겁다. 즐거운 마음과는 달리, 뉴욕에서 그리고 한국에서 이동 후 도착하여 커다란 캐리어를 끌고 다니다 보니 우리 일행들 모두 몸은 힘들었다. 이제는 숙소로 향하여 짐을 풀고 휴식과 정리가 필요한 시간이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