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이 넘었지만 아직도 난 자라고 있어
나에게 놀림 받은 딸이 울고 있다. 아이의 우는 얼굴이 내 눈엔 그저 우는 천사로 보인다.
이미 울상인 아이를 보면서도 더 놀리고 싶어 내 입술은 들썩들썩. 울음이 짧아 금방 그친 아이는 내게 와서 요구한다.
“엄마 때문에 기분이 나빠. 엄마가 나에게 사과했으면 좋겠어.”
“아 그래? 어휴. 대애애애애애애단히 미안해서 어쩌지? 우헤헤. 사과주라고? 몇 개 줄까? 두 개? 백 개도 줄 수 있지. 사과나무로 줄까?”
‘눈 앞에서 애가 우는데 왜 내 혀는 이렇게 시덥잖은 농담을 뱉고 있는 걸까?’ 아이에게 건성건성 사과를 건네면서도 속으로는 애 엄마가 이렇게까지 철없을 일인가 싶어 스스로 부끄러운 참이었다.
울어서 코끝이 빨개진 딸이 가만히 나를 바라본다.
터지려는 웃음을 참느라 입술을 실룩대고 있는 내 노력이 하찮게 보였는지 짧게 숨을 고르더니 한마디 내놓는다.
“엄마, 내가 이해해 줄게. 엄마가 스트레스가 많아서 날 괴롭히고 싶었나 봐. 좀 쉬어” 순간 나는 아이가 나보다 더 어른이 된 것 같았다. 그저 내 철없음이 부끄러웠다. 아, 쥐구멍이 어딨더라? 내가 들어갈 정도로 큰 쥐구멍이면 좋겠다.
딸이 유치원 다닐 때도 나는 쥐구멍을 찾았던 경험이 있었다.
유치원 미끄럼틀 위에서 놀던 딸아이를 같이 놀던 친구가 확 밀었단다. 그 바람에 모래 위로 떨어진 딸의 얼굴과 손바닥에 긁힌 상처들이 생겼고, 옷은 모래와 흙으로 더럽혀진 채 하원했다.
가족을 보자마자 울음이 터진 모습에 아이 외할머니는 손녀딸을 꼬옥 안고 토닥이며 놀다 보면 그럴 수 있다하셨지만, 엄마인 나는 하나밖에 없는 소중한 아이의 얼굴에 상처가 생겼다는 것에 화가나 내 감정대로 길길이 날뛰고 있었다.
유치원 원장 수녀님은 내게 전화해서 사고 상황을 설명했다. 여럿이 어울려 노는 상황, 미끄럼틀 위에서 내려가기를 망설이던 딸을 장난꾸러기 남자아이가 확 밀어버리는 바람에 사고가 생겼단다. 선생님들의 중재와 훈계를 받은 남자아이는 사과했고, 딸은 그 사과를 받아들였다고 한다. 그 순간에도 나는 딸의 관대함에 감동하기보다 내 화를 앞세웠다.
부아가 났다.
그 아이로 인한 사고가 한두 번이 아님을 강조하며, 같은 상황을 만들어 우리 딸도 그 아이를 밀게 해달라고 요청했다. 머릿속으만 생각했던 것이 이미 내 입을 지나 수화기에 너머에 전달되었다. 그 말을 뱉는 그 순간 나 자신의 유치함과 어리석음이 창피했지만 이미 내 부끄러움보다 말이 빨랐다. 상대방에게 내 붉어진 얼굴이 보이지 않음에 그저 안도하며 전화기를 붙들고 있었다.
수녀님은 나의 요청을 듣고, 말씀하셨다.
“엄마가 아직 우리 아이를 잘 모르는 것 같은데…. 어쨌든 엄마 말대로 상황을 한 번 만들어보고 전화해 줄게요”
전화를 끊고 이날 나는 이불킥을 얼마나 해댔는지 모른다.
수녀님과 하느님은 이해심이 많은 분들이시니 나의 감정과 모자람을 이해해 주실 거라 믿으며 애써 부끄러움을 이겨냈다. 다만 “엄마가 아직 아이를 모르네….” 라는 말이 계속 마음에 남아 나 스스로를 자문하게 했다.
‘내가 내 아이의 뭘 모르고 있는 거지? 우리 아이는 늘 그 친구가 괴롭히는 경험이 쌓여 이게 당연하다고 생각할지도 몰라. 상대 아이도 우리 아이가 언제까지나 괴롭힘의 대상이 아니라는 걸 알아야 해.’ 나는 어리석게도 이 일로 다친 딸의 감정이나 상처를 들여다보기보다 내 유치함에 정당성을 부여하고 있었다.
다음 날 하원 시간에 원장 수녀님의 전화가 왔다.
“OO~(원장 수녀님은 학부모에게 아이의 이름을 부른다. 아이의 이름으로 불린 것이 날 더 부끄럽게 만들었다) 오늘 엄마 요청대로 OO과 그 장난꾸러기를 데리고 미끄럼틀에 갔었어요” 이제 막 그 한마디 들었을 뿐인데 내 얼굴은 다시 화끈거리기 시작했다.
‘아, 수녀님. 정말 친구를 밀게 만드셨어요?’ 정말 딸이 친구를 밀었을까 싶어 걱정스러운 내 목소리와 달리 수녀님의 목소리는 밝았다.
“어찌 되었나요?” 나는 조심스럽게 상황을 물었다.
“원장님, 친구가 아플까 봐 밀기 싫어요!! 왜 이런 걸 시키세요?”
딸은 자신이 미는 것도 싫고, 친구가 다치는 것도 싫다고 했단다.
“엄마가 딸을 너무 모른다~ 대부분의 아이는 어른보다 더 관대하고, 상대의 마음도 들여다보는 여유가 있어요. 다른 사람들의 감정을 잘 살펴보기 때문에요. 표현이 서툴러 그러지 아이들은 마음이 유연해서 사과가 쉽고, 사과를 받아들이는 것도 쉽지요.”
아. 그 순간은 정말 도망가고 싶었다. 원장 수녀님이 사실은 날 깨우치게 하려고 내 황당한 요청사항을 들어주신 건 아닐까? 내가 아이의 감정과 마음을 염려하기보다 그저 내 분노를 앞세운 어른이었다는 것이 못내 창피했다. 다른 사람의 상황과 감정을 들여다볼 줄 알았던 딸아이와 달리 난 이해보다는 분노라는 감정을 기어코 더 키운 탓에 보기 좋게 망신을 당하고야 말았다.
그날 집에 돌아온 아이는 내게 말했다.
“엄마, 내가 밀면 친구도 나처럼 다칠 거야. 그걸 아는데 친구를 밀 수는 없어”
7살 꼬맹이도 아는 사실을 어른인 나는 잊고 있었다.
아프고 나쁜 일을 ‘나만 겪을 순 없다’는 이기적 마음을 가진 ‘나이만먹은이’로 살고 있던 내게 딸은 제동을 걸어주었다.
내 삶의 많은 부분에서 나보다 더 나은 사람으로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아이를 보며 나의 부족함을 깨닫고 있다. 40대의 나는 오늘도 10살 OO에게 배우고 있다. 타인에게 웃으며 인사할 줄 알고, 정말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감사 표현, 상대방의 감정도 꼭 살펴 보려고 노력 하는 모습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