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신이 준 빠꾸의 기회를 날려먹었다.
엉망진창 결혼식 대회 1등 !! 비결은요?
나는 쓸데없는 이야기 90%, 남 걱정 5%, 저녁 메뉴 고민 5%를 함께하는 모임 ‘입털이’의 주요 멤버다.
오늘 역시 신나게 영양가 없는 수다를 떨고 있는데 은주 언니가 18년 전 결혼사진을 보여줬다. 우리는 그 사진을 보고 언니를 놀려댔다. 사진 속 신부는 눈 부위가 얼룩덜룩해 마치 유령신부 같은 모습이었다. 부모님께 인사드리기 위해 눈을 돌리다 가족석에 있던 할아버지, 할머니의 모습을 보고 눈물을 펑펑 흘렸다고 한다. 마스카라가 흘러내린 그 순간 이후 찍힌 사진들은 모두 저렇게 눈 밑 까맣게 나오는 바람에 그동안 결혼식 사진을 보지 않고 살았다 한다.
입털이 멤버들은 자신들의 결혼식 관련 에피소드를 꺼내기 시작했다. 눈물과 웃음 가득한 사연들이 두서없이 쏟아져 나오자, 리더인 입털이 여왕이 오늘의 엉망진창 결혼식 1등을 뽑아 부상으로 그 집에 저녁 식사 배달을 보내준단다.
“내 결혼식은 말이야. 결혼식 날짜 빼고는 내 맘대로 된 것이 하나도 없었어.” 나는 묻어뒀던 소중한 에피소드를 풀었다. 사실 내가 웨딩 업체에 바랐던 것은 몇 개 없었다. 첫 결혼이니까 경험 많은 헬퍼 이모님, 추운 겨울날 어깨 없는 드레스 위에 입을 볼레로, 남편이 키 작은 요정님인 관계로, 내 키가 커 보이는 왕관 대신 머리에 딱 붙는 헤어 밴드, 마지막으로 굽 낮은 구두.
결혼식 당일 아침, 미용실에서 3~4시간에 걸쳐 헤어, 메이크업 마무리를 할 때쯤 헬퍼 이모님이 도착하셨다. 당황스럽게도 경험 많은 이모님 대신 아르바이트 대학생 헬퍼가 나를 찾았다. 그리고 멋지게 세팅된 머리 위에 왕관을 씌워 넣었다.
“저. 왕관 아니고 헤어 밴드 요청했는데요?”
“네? 아..이상하다! 어머나. 그러네요. 잘못 가져왔나 봐요. 일단 이 왕관 뺄게요”
순간 왕관을 따라 곱게 붙인 옆머리가 쭈욱 튀어나왔다.
“아….”
내가 뭐라고 하기도 전에 미용실 원장님이 신부 머리를 망쳤다고 헬퍼를 혼냈고, 나는 주눅 든 그녀가 안쓰러웠다. “괜찮아요. 제가 혹시 몰라 헤어밴드 가져온 거 있으니 이걸로 할게요” 결국 시간을 추가해 헤어를 다시 세팅했건만 결과물은 전혀 마음에 들지 않았다.
- 조금만 더 당길게요. 숨을 크게 들이 쉬어보세요
헬퍼의 말대로 호옵~ 숨을 들이켠 순간 ‘툭’!!! 드레스 코르셋의 왼쪽 고정 끈이 끊어지고 말았다.
소리를 듣고도 믿을 수 없었다.
- 아니, 지금 드레스 코르셋이 끊어진 거예요?
- 네......
내가 고른 웨딩드레스는 튜브톱(몸에 딱 달라붙는 원통형 윗옷으로 어깨를 드러내 우아한 여성미를 강조한 드레스) 이었다. 내 마음만큼 넓은 어깨와 복스럽게 통통한 팔뚝을 결혼식에 온 손님들께 보여주고자 선택한 소매 없는 디자인.
아침 식사도 걸러 화낼 힘도 없었을 뿐더러 좋은 날 망치기 싫은 마음에 이 일을 어떻게 수습할 수 있는지 먼저 물었다. 바느질 할 수도 없고, 드레스를 바꿀 수도 없다는 이 상황이 당황스러웠다. 결국 나는 왼쪽 팔뚝을 겨드랑이에 딱 붙여 내려가는 드레스를 다잡는 방법을 선택했다. 거울에 비친 나의 왼쪽 팔뚝은 토마호크 고기를 보는 듯 했지만 별다른 방법이 없었다.
- 헬퍼님, 이제 식장 가야 하니까 볼레로 주세요. 어깨가 추워요
- 네? 볼레로 없는데요….
- 그게 무슨…. 제가 따로 요청했는데요. 이동하는 동안 착용할 볼레로.
- .....죄송해요. 어떡하죠?
일그러져가던 내 얼굴을 본 친구는 헤어에 지체하느라 시간을 많이 썼으니 일단 차로 이동하자며 나를 달랬다.
그래, 어차피 차로 이동하니까 사실 볼레로는 그다지 필요 없다. 화를 참자. 애써 스스로를 다독이며 예정보다 조금 늦은 시간에 식장에 도착했다.
손님들과 정신없이 사진을 찍다 보니 어느새 입장할 시간. 드디어 공주님 등장 시간이 온 것이다.
아침부터 인내심을 시험당하는 기분이지만 나 누구보다 화사하게 웃으며 들어가리라.
- 헬퍼님, 구두 주실래요?
- 네, 여기 있어요.
- 이거 굽이….굽이... 10cm는 되어 보이는데요? 굽 낮은 걸로 부탁드렸는데요.
- 아, 어떡해...진짜 죄송해요. 슬리퍼라도 구해올게요.
후다닥 나가는 그녀의 뒷모습을 보며 당황스러움과 화가 범벅이 된 채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참자, 참아. 나와 다른 신부의 요청사항이 바뀐걸거야. 나 말고 지금 이 고생을 하는 신부가 또 하나 있을 거야. 나는 애써 화를 다스렸다.
잠시 후, 버진로드 위에 들어선 나.
음악 전공한 친구가 피아노 연주중인 것을 내 눈으로 보는데도 감미로운 신부 행진곡이 내 귀엔 전혀 들리지 않았다. 설레임에 두근대는 것이 아니라 화가 머리 끝까지 났음에도 조신하게 아버지의 팔을 잡고 서있어야 하는 이 순간이 믿을 수 없었다.
음악이 들리지 않으니 성질껏 뛰고 있는 내 심박수에 맞춰 ‘맨발로’ 씩씩하게 입장했다. 힘찬 발걸음에 흘러내리는 드레스를 눌러 잡느라 잔뜩 두꺼워진 팔뚝살을 동네방네 자랑하며.
그 순간 나는 애써 화를 지우고 웃음을 보이고자 내 감정과 싸우는 노력을 해야 했다.
훗날 앞에서 그 광경을 본 친구의 말로는 걸음걸이에 맞춰 드레스가 올라갈 때마다 보이는 발에 투명 구두를 신은 줄 알았다며 맨발의 신부라고 날 놀려댔다.
왼편에서 찍힌 내 모습? 커다란 토마호크가 부케를 들고 있는 모습처럼 보인다.
앞에서 찍힌 내 모습? 행진하며 드레스를 살짝 들은 순간 찍힌 사진에서는 먼지 묻은 발가락이 주인공처럼 유난히 돋보인다. 난 엉망진창 결혼식 사진 모두 파일 함에 쳐넣고 전혀 꺼내보지 않는다.
10여 년이 지난 요즈음
남편과 갈등을 빚을 때마다 ‘결혼식은 무슨~. 지금 이 자리에서 당장 도망가’ 어쩌면 신이 친절하게 보낸 4개의 시그널을 이해하지 못해 이 고생을 한다 생각하며 도를 닦는다. 라고 끝맺으며 내 결혼식 경험담을 끝냈다.
그날 저녁, 우리 집엔 맛있는 떡볶이 세트가 도착했고, 그걸 본 남편은 누가 보내준 왠 떡볶이냐며 배시시 웃으며 묻는다.
여보..나 결혼식 날보다 엉망진창 결혼식으로 1등한 오늘이 훨씬 더 기뻐. 맛있게 먹어.